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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

EBS 수능과 관련하여 기억해야 될 이야기들

2013. 10. 16. by 현강

이 글은 2013년 10월 15일,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주최한 <교육복지 실현, EBS 수능강의의 성과와 발전방향>의 기조강연 내용입니다.

 

1. 지난 16년을 뒤돌아보며

 

는 1995년 12월부터 1997년 8월까지, 그리고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월까지 두 번에 걸쳐 약 2년 8개월 동안 교육부의 수장으로 봉직했습니다. 장관을 지내면서 저는 늘 이 자리는 '멍에이자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관으로 국정에 깊숙이 참여한다는 일은 막중한 책임과 각고의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른 엄청난 격무를 수반해야 하므로 무척이나 힘겹고 고달픈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 멍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장관직 수행은 국정에 참여하여 국리민복을 위해 온 몸을 바쳐 헌신할 수 있는 값지고 보람된 기회이므로 더 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 번 교육부 수장으로 일하면서 1997년 7월 EBS 위성교육방송의 출범과 2004년 EBS 인터넷 강의의 개통을 총 지휘하는 막중한 일을 수행했습니다. 국가가 <무상으로 최고의 과외를 하겠다>고 나서는 일도 인류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이거니와, 수능방송 인터넷 서비스를 통하여 e-러닝 시대를 열고,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했던 일 또한 미증유의 혁명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제게 그런 기회가, 그 것도 때맞춰 두 번이나 주어졌다는 것은 분명 하늘의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BS와 더불어 그 일을 수행하던 당시를 회상하면 아직도 가슴 벅찬 감동과 전율을 느낍니다. 저의 EBS와, 그리고 수능방송과의 인연은 이처럼 깊고 오래 되었습니다.

 

2004년 인터넷 서비스의 성과에 가려 점차 잊혀지고 있으나 저는 EBS 수능방송의 첫 발자국인 1997년 여름 위성교육방송의 출범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후 EBS 수능강의 전개의 원형(原形)이었고, 또 초심(初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EBS 수능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논의하면서 마땅히 그 때 그 <처음>을 기억하고 <초심>을 되새기는 일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일은 매우 중요하고 또 값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게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 주고, 제 소회의 일단을 말씀드릴 기회를 주신 EBS에 크게 감사를 드립니다.

 

2. 두 가지 목 표: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의 해소

 

1997년 EBS TV 위성교육방송이 처음 고고의 성을 울릴 때, 그 기본계획안의 이름은 <과열과외 완화 및 과외비 경감대책>이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인터넷 수능 서비스가 출범할 때, 그 단초는 <2.17 사교육비 경감대책>이었습니다. 이렇듯 EBS 수능은 두 번다 사교육비 경감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습니다. 격심한 입시경쟁에서 비롯되는 과도한 사교육 현상이 공교육을 무력화하고, 그 과도한 부담이 가계를 크게 압박하는가 하면, 때로는 가정해체의 위기로 까지 몰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무엇보다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번 다, 두 번째 목표로는 교육격차의 해소 내지 교육기회의 평등을 내 세웠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사교육비가 날로 늘어가면서 빈부격차에 따른 교육불평등과 학력의 세습화, 그리고 가난의 대물림이 사회쟁점화되고 있었기에, 이 또한 충분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농어촌이나 산간오지, 절해고도와 같은 교육소외지역의 주민이나 낮은 사회계층의 자녀들, 그리고 장애우에게 최고의 과외를 제공하고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지원대책을 마련함으로써 교육소외를 극복하고, 교육기회의 평등에 기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교육복지의 차원을 넘어 사회통합과 국민형성의 관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두 번의 EBS 수능 개혁에서 언제나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앞세웠으나, 실제로 제 마음을 더 크게 움직였던 것은 교육격차의 해소와 이를 통한 교육소외의 극복이라는 두 번째 관점이었습니다. 김영삼 문민정부의 1995년 <5. 31 교육개혁>은 주지하듯이 한국 교육사에서 실로 기념비적인 혁신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시된 개혁방안들은 세계화라는 시대적 격랑 속에서 마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교육의 수월성 내지 경쟁력 강화에 역점이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역사적 교육혁신사업이 더 찬연한 빛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형평성의 제고를 통해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1996년 말 <교육복지 종합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이제는 <교육복지>라는 개념이 일상화되었으나, 그것이 당시로는 교육부 정책 아젠다로 역사상 처음 등장한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제가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느껴 교육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대안학교를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즈음 입니다. 때가 때인지라 저는 TV 위성 수능방송이 함축하는 교육의 형평성 내지 교육복지의 관점은 제가 추구했던 정책적 지향과 크게 일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EBS TV 수능은 태생적으로 첫 단추부터 교육소외 극복과 교육에서의 형평성 제고라는 교육복지적 관점과 깊게, 그리고 유기적으로 연계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위성교육방송을 통해 36%에 이르던 전국의 난시청 지역 해소에 앞장섰던 일이나, 두 번째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소외지역 학생 및,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위성방송 수신기를 지원하고, 케이블 시청료 인하를 추진하며 PC 및 인터넷 통신비 지원을 했던 일, 그리고 EBS가 솔선해서 수능교재의 무상지원을 했던 일, 그리고 장애우를 위해 점자교재를 개발하고 무상지원을 하는 일들이 모두 교육복지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2004년 4월 1일, 인터넷 서비스의 출범에 때 맞춰 진대제 정통부 장관과 함께 발표한 <e-러닝 시대에 즈음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능력을 갖추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청소년이 큰 어려움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방도를 마련하는 데 앞장을 서고자 합니다”.....“.EBS 수능을 포함한 e-러닝은 농어촌 및 저소득층 자녀에게도 대도시 지역의 학생들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통합과 교육복지를 실현하는 획기적 기회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장애인들도 e-러닝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계속 강구해 나가겠습니다“.

 

저는 EBS 수능방송은 폭발적 잠재력을 가진 교육개혁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노이와 레빈의 분류에 따르면 <거시적, 기술적 교육개혁>의 사례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이 개혁사업은 ‘수능’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만, 실제로 한국의 전체 교육체제의 변화를 겨냥하면서 동시에 기술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습니다. EBS 인터넷 서비스를 예로 할 때, 그것은 우리나라의 세계 굴지의 IT 인프라 및 그 경쟁력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었습니다. 또 그것이 또한 한국의 e-러닝 시대를 촉발했다는 사실은 그런 맥락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이 사업은 <거시적, 기술적> 교육개혁 사업이므로 교육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지만, 큰 관심이 기술적 성패에 집중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업을 둘러 싼 여야나, 교직단체들 간에 첨예한 정치적, 가치론적 갈등은 별로 없었습니다. 한국의 주요 교육정책 아젠다 대부분이 보수와 진보세력 간의 이념적 갈등 때문에 이미 공론화 단계에서 좌초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을 감안하면, 그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인터넷 서비스의 도입을 예로 할 때, 야당도 명분상으로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의 해소를 겨냥하는 이 국가적 사업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그 성공을 빌어야 할 입장이었으므로, 모든 관심은 ‘인터넷 대란’ 여부에 모였습니다.

 

EBS가 앞으로도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교육소외 극복에 ,한 쪽의 치우침 없이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 모두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기를 빕니다.

 

3. 공교육과의 관계: 대 체제 아닌 보완제

 

EBS 수능을 이야기 할 때는 언제나 공교육과의 관계가 거론됩니다. 저는 늘 EBS 수능은 매우 유용한 정책수단임에 틀림없으나, 공교육정상화라는 큰 목표로 가는 길목이자, 보조수단이며, 따라서 그것이 공교육을 무력화하거나 파행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EBS 수능방송은 공교육 내실화와 함께 가야 된다는 점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근년에 고등학교 교육이 EBS 수능강의에 예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때면 무척 가슴이 아픕니다. 또 고교현장에서 EBS 교재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마음이 꽤나 불편합니다. 현장교사들이 EBS 수능강의 때문에 사기가 떨어지고 소외감을 느낀다면, 그것도 안 될 일입니다.

 

학교수업은 스스로 충실한 내용을 바탕으로 뚜벅 뚜벅 제 길을 가야하고, EBS 수능강의는 그것을 보완하고 필요한 부족분을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주객이 전도되어 EBS 수능강의가 학교 현장교육을 대체하거나, 주인으로 올라서게 된다면, 그것은 당초에 의도했던 일이 아니거니와,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자칫 공교육을 공동화(空洞化)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명심할 일은, EBS 수능은 학교교육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EBS는 겸허한 자세로 스스로의 역할을 성실한 도우미로 인식하고, 추호도 주인자리를 넘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주연이 아니라 명품 조연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권합니다. 공교육도 각고의 노력을 통해 스스로 수준 높은 양질의 교육을 창출함으로써 실추한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고교 현장교사들과 EBS 관계자들 간의 잦은 소통과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고교 현장교사들이 수능 강의 제작에 강사 또는 교재개발자로 적극 참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교육부도 이러한 양자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과 바른 역할인식을 위해 가운데서 성실한 조언자로, 또 슬기로운 중재자로서 자신의 몫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EBS와 수능시험의 연계입니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양자 간의 연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양자 간의 연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 자칫 학교의 현장교육이 설 자리가 협소해 질 수 밖에 없고, 자칫 공교육이 EBS 수능에 예속될 개연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저는 공교육과 EBS 수능 간의 연계에 더 큰 관심이 주어져야 하며,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공교육-EBS 수능방송-수능시험 3자간의 유기적 연계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제가 처음부터 마치 주문처럼 되뇌었던 말이,

“학교에서 성실히 공부하고, EBS 수능을 열심히 시청하면, 수능시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입니다.

 

4. 접근 방법: 기능적 접근과 본질적 접근

 

두 번 EBS 수능강의의 새로운 출범에 관여하다 보니, 이에 관계하는 사람들이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한 그룹은 기능적, 성과주의적 접근을 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그룹은 교육본질적, 장기적 접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능적 관점에 서는 사람들은 EBS 수능강의가 입시생들의 수능성적에 가능한 한 많이 반영되어, 사교육비 경감 효과가 빠른 시간 내에 극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수능강의의 기능성과 효과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교육본질적, 장기적 관점에 서는 사람들은, EBS 수능강의는 기본적으로 교육본질에 충실해야 하며, 따라서 단기성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설혹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적 목적에 충실하게, 또 학생들의 학력신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 두 가지 접근법은 어쩔 수 없이 자주 부딪히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대체로 기능주의자들은 수능강의와 수능시험 간의 연계성을 크게 강조하고, 유명 스타강사를 선호하고, 사교육 경감효과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반면 본질주의자들은 수능강의와 수능시험 간의 연계 못지않게 학교수업과 수능강의 간의 연계에 깊은 관심을 갖으며, 수능강사로 학원가의 스타강사들 보다는 학교 현장교사들을 선호합니다. 또 단기적 성과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질의 수능강의가 수험생들의 학력을 높여 자연스럽게 수능성적에 반영되는 편을 바람직하다고 여깁니다.

 

따지고 보면, 기능주의적 접근과 본질적 접근은 모두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절체절명의, 절박한 목표 앞에서 지나치게 교육본질을 따진다는 것은 EBS 수능방송의 본래의 정책적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질주의자들은, 실질적 학력신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수능교재만 달달 외어 수능성적이 몇 점 오른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전자는 현실주의자 내지 실용주의자들이라면, 후자는 보다 이상주의자 내지 근본주의자들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터놓고 이야기하면, 저는 교육본질주의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정책관리자로서 저는 기능주의자들의 입장을 상당 부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두 접근법은 어쩔 수 없이 조화되어야 하고, 변증법적으로 지양되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초기 단계에서는 기능주의적 접근에 적절한 비중이 주어질 것이나, EBS 수능강의가 좋은 성과를 거두며 연착륙 한 후에는, 교육본질적 접근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i) 수능강의와 수능시험 간의 연계는 강조해야 마땅하나, 몇 % 식의 수리적, 기능적 연계는 주장하지 말아야 하며, ii) 수능강사 충원에서 당연히 고교의 현장교사들이 다수를 차지해야 하나, 일정 비율로 스타강사들도 영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았습니다. 아울러 iii) EBS 수능은 시간과 더불어 초기 해열제 역할에서 점차 공교육의 보완이라는 본연의 역할로 서서히 옮겨져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학교현장과 e-러닝 연계, 그리고 수능강의의 질 관리를 통하여 수능시험에 반영률을 높이도록 애써야 한다고 마음으로 정리했습니다.

 

5. EBS 수능강의와 수능시험 간의 연계 문제

 

EBS 수능방송과 관련하여 가장 뜨거운 쟁점은 수능강의와 수능시험 간의 연계 문제입니다. 연계한다는데 얼마나, 어떻게 연계한다는 건지, 똑같이 나온다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유형, 혹은 변형인가. 또 변형이라면 어느 정도까지 변형한다는 것인가, 그 물음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수능방송 프로그램이 사교육비경감을 첫 번째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실효성이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수능시험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 때문에 저도 장관시절 “수능방송프로그램은 사전 기획단계부터 수능문제출제기관인 한국 교육과정평가원과 협조, 제작하므로 양자 간의 연계는 분명합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몇 퍼센트 연계된다고 공언하는 일은 극력 피했습니다.

교육과정평가원은 ‘연계’의 의미를 <EBS 교재나 강의에서 본 친숙한 지문이나 자료, 개념이나 원리, 문항 등을 이용해 출제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연계’의 기준이나 지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거의 똑같이’, ‘약간 변형해서’, ‘꽤 많이 변형해서’ 이처럼 연계 방식은 무수하기 때문에, 시험이 끝나면 연계의 체감온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때문에 늘 논란이 일게 됩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떻게 사회적 신뢰와 공적 책임의 상징인 일국의 장관이 반영률 몇 퍼센트를 거침없이 공언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지나친 기능주의적, 성과주의적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EBS 수능강의와 수능시험의 연계를 과도하게 강조하면,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수험생들이 EBS 수능강의를 시청하거나 <수능연계교재>에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교육소외지역이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다소 유리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우리 학생들을 획일적 학습으로 유도하기 쉽고, 지문이나 유형 익히기 식의 얕은 공부, 겉핥기 공부를 일상화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자칫 공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오늘 우리의 시대정신인 창의적, 자기주도적 공부와도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공교육-EBS 수능강의-수능시험 삼자 간의 상호 교류와 협조, 수능강의의 지속적 질적 제고, 그리고 학생들의 학력신장을 매개로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연계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 두 번의 성공: <재원>의 장벽과 <인터넷 대란>이라는 망령

을 넘어

 

1997년과 2004년 두 번의 EBS 수능개혁 사업은 실로 엄청난 시련과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두 번 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두 번의 경우를 간략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1997년 7월 위성교육방송이 출범할 즈음, 1996년 초에 닻을 올린 교육정보화의 사업이 한참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각급학교에 이미 TV가 보급되어 있었고, 한 학교 당 1 컴퓨터 교실을 확보했으나 통신회선의 부족, 교사의 IT 능력결여 등으로 전반적 교육정보화 수준은 아직 빈약했습니다. 교육부나 EBS의 입장에서는, 위성방송 수신설비를 구축하는 일이 당장 중요한 기술적 문제였으나, 보다 심각한 것은 이 대규모 TV수능방송을 위한 재원조달 문제였습니다. 당초 계획은 교육방송에 광고방송을 허가받아 이를 주재원으로 하고, 교재판매수입을 보조재원으로, 그리고 부족분은 국고로 지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공보처가 EBS에 광고방송 허가를 극력 반대했기 때문에 위성방송채널을 통한 TV수능강의 계획은 그 혁명적 발상에도 불구하고 거의 좌초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광고방송 허가의 물꼬를 터주는 바람에 철옹성처럼 느껴졌던 <재원>의 장벽을 넘어 설 수 있었습니다. 이미 EBS가 1989년 이래 지상파를 통해 <고교 가정학습>을 제작, 방송하고 있었고, 그 얼마 전 부터 일정 기간 위성시험방송을 실시했던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비교적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수능연계 문제, 강사충원 문제 등과 연관하여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고, 그 때 이들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했던 과정이 훗날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실시과정에서 박흥수 원장님의 열정과 돌파력이 돋보였습니다. 저는 위성교육방송이 출범하자마자 장관직을 떠났습니다.

 

그 후 7년 여가 지나, 2003년 말, 저는 교육부총리로 취임했습니다. 곧 이어 서둘러서 <2. 17 사교육비경감대책>을 발표하고, 그 핵심사업으로 <EBS 인터넷 서비스>를 내 세웠습니다. EBS 플러스 1 채널 하나를 수능강의 전문채널로 특화하여 24시간 전문방송을 하는 한편, e-러닝 시대의 총아인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초, 중, 고급의 수준별 교육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위성방송이 매체의 한계로 인해 획일적이고, 단방향적인 프로그램 밖에 제공할 수 없었는데 반해, 이제 e-러닝이라는 진전된 개념 아래 수준별 쌍방향 학습의 새 시대를 연다는 것은 더 할 수 없이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EBS와 의논하여 개통일자를 4월 1일로 잡았는데, 체제를 갖춰 본격적으로 일에 매달린 것은 실제로 3월 5일 부터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한 달 미만에 이 대형 사업을 성취한 다는 것은 실로 무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는데, 당시에 제반 상황이 그것을 강제했습니다.

 

단기간 내에 대규모 사용자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모험에 가까웠습니다. 무엇보다 초기 동시접속량이라는 미지수와 겨루는 일이 난제였습니다. 이 사업 자체가 사상 초유의 실험이기 때문에 시뮤레인션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전문가마다 예상 접속량이 달랐습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 중 가장 큰 사이트가 고작 동시 접속 2만명 정도의 사이트였는데, 우리는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EBS에 최대 10만명을 동시에 동영상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서버 (Server)를 구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서버를 구입, 장착하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실제로 장비 제작사인 미국의 CISCO가 공수한 마지막 장비가 천시만고 끝에 인천공항을 통과한 것이 3월 30일 새벽이었습니다. 이것을 시스템 구축 책임을 맡은 LG CNS가 하루 만에 세팅해서, 그 다음날 즉 4월 1일에 개통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 가닥 위안이 되었던 것은 1997년 위성방송 출범 당시 정부 측 주역들이 고건(총리)-안

병영(장관)-서삼영(국장)-박경재(과장)이었는데, 7년 후인 이번에도 그 팀, 즉 고건(총리)-안병영(장관)-서삼영(전산원장) -박경재(국장)가 다시 모여 이 역사적인 사업을 함께 도모하게 된 것입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큰 우연이었습니다. EBS 측의 주역은 고석만 사장님이었는데 열정과 헌신, 그리고 전문성에 있어 발군이었습니다. EBS의 배종대 뉴 미디어 국장과 교육부의 배성근 과장도 유능성과 적극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일꾼들이었습니다. 이 구성이면 한번 해 볼만하다고 느꼈고 그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어렵사리 서버는 구축되었지만, 인터넷 대란’의 악몽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KT나 하나로 통신을 비롯한 주요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들이 수능강의 실시 발표 후 인터넷 백본망 증설, 기간망 증설, 부하분산, 가입자망 점검 등의 작업을 서둘러 진행해 인터넛 대란에 대비했으나, 특정시간대에 수능강의의 접속이 폭주했을 때, 해당 서버와 회선에 무리가 갈 위험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서비스의 교육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서둘러서 모든 고등학교에 위성방송 수신기 및 안테나를 설치하고, 각 학교의 인터넷 통신속도 및 학내망 속도를 증속하는 일, 저성능 PC의 교체 또는 업그레이드 하는 작업 등 끝이 없었습니다. 아울러 산간, 오지 및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EBS 서비스를 고르게 제공하기 위해 이들에게 위성방송 수신기를 지원하고, 케이블 TV 시청료 인하를 추진하며, PC 및 인터넷 통신비 지원을 추진하는 등 교육복지 차원의 제반조치에도 소홀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던 것의 하나는, 그 해 4월 15일에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있어, 4월 1일 EBS 개통의 성패는 총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불문가지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교육인적자원부와 EBS와 더불어 유관기관간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는데 큰 힘을 쏟았습니다. EBS, 정보통신부, 전산원, KT, 하나로, 두루넷 등 유관기관 전문가들(13명)로 구성된 T/F 팀을 구성(3월 11일)해서, EBS에 구축되는 인터넷 시스템의 설계 및 구축을 점검, 지원하고, 국가망, 상용망, 등 통신 네트워크 차원에서 예상되는 제반 문제점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아울러 동시 접속자 폭증을 막기 위해, 각 학교에 가능한 한 위성방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인터넷 강의는 미리 ‘다운로드’ 받은 후 학내망을 통해 활용하며, 개별 접속을 자제해 줄 것을 권고했습니다.

 

마지막 15일은 남기고는 교육부는 장관실을 비롯한 모든 방에 <D-15>라는 상황판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날짜가 줄어들면서, 일은 폭주하고 긴장은 고조되었습니다. 장관을 비롯해 많은 직원들이 ‘올인’에 돌입했습니다. 전국 2,100여개 고등학교별 추진상황 모니터링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며, 홍보를 위해 언론사별 전담요원이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EBS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점검에 나섰습니다. 언론은 개통 초기 동시 접속자 폭증으로 인한 서버다운, 끊김현상, 접속지연 등 다양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인터넷 대란’이 마치 필지의 사실인양 보도하기 까지 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우군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청와대도 우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극도의 소외감에 몸서리가 칠 정도였습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다가 새벽에 잠을 깨면 온 몸이 흠뻑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정작 언론을 비롯한 모든 외부의 회의적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교육인적자원부와 EBS 양측은 성공에 대한 확신 속에서 굳게 결속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개통 사흘 전에 기자회견을 자청했습니다. 아직 서버의 구축이 완결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프로그램과 콘텐츠와 네트워크의 품질, 그리고 유관기관의 대응 등을 총 점검한 결과 얼마간의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인터넷 대란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자신있게 발표했습니다. 기자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3월 31일 저는 진대체 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e-러닝 시대 개막에 즈음하여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하의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늘에 맡기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4월 1일 새벽 2시 개통에 앞서 저는 EBS 상황실에서 진대제 장관과 고석만 EBS 사장과 더불어 마치 야전사령관처럼 e-러닝 연창륙을 진두지휘하였습니다. 그날 아침 날이 밝으면서 모든 언론은 EBS 수능강의, 인터넷 서비스가 성공했음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그날 이후 교육부는 이 여세를 몰아 e-러닝 체제 구축방안의 일환으로 이른바 사이버가정학습 지원체제 구축에 다시 ‘올인’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개통 100일 이 되는 날, 7월 9일 오후 4시 EBSi는 드디어 회원가입 100만을 돌파했습니다. 완벽한 성공이었습니다.

 

7. 인터넷 수능 서비스: 성공적 정책사례의 예

 

2004년 4월 1일 고고의 성을 울린 <EBS 수능방송, 인터넷 서비스>은 보기 드문 성공적 정책사례입니다. 실제로 그 해 8월 국무조정실은 이 정책사례를 2004년 참여정부의 대표적 정책 성공사례로 뽑았습니다.

이 사업은 동시접속 수용인원이 10만명 이상을 겨냥한 세계에서 유례없는 교육정보화 사업으로, 최단기간 내에 ‘인테넷 대란’에 대한 많은 이의 우려를 떨치고 기적과 같은 성공을 일궈낸 정책사례 입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IT 산업의 새로운 흐름인 방송, 통신, 인터넷을 융합하는 ‘디지털 컴버전스’를 선도하여 IT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아울러 첨단산업분야의 국가적 경쟁력을 향상시켰다는 점에서 국제적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범적 정책사례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한국의 세계최고의 정보통신 인프라와 학교의 e-러닝 준비도가 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열쇠였습니다. 2004년 인터넷 서비스의 성공은 바로 이러한 IT 경쟁력의 기반 위에서 가능했고, 동시에 그것은 한국이 IT 강국으로 또 한번 도약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두 번째, EBS의 콘텐츠 개발능력, 경륜과 기술수준이 성공의 주요한 발판이었습니다. 사업당사자로서 EBS는 모든 주요한 결정에 참여하여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했고, 사업 전체를 조감하면서 협력체계의 주요한 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막판에는 자체적으로 별도의 비상대책반을 가동해 수능방송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세 번째, 정부(교육부, 정통부)와 민간부문(EBS, LG CNS, KT 등 통신사업자) 간의 긴밀한 연대와 효과적인 협력이 사업성공에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교육부와 EBS, 그리고 정통부의 협력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또 교육부는 민간부문의 협조를 최대한으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3월부터 13개 민간 유관기관의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시스템 전문가 T/F 팀을 구성하여 그들의 자발적 협력과 전문성 및 노하우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이들은 또한 학교정보화 인프라를 점검하고, 수능강의 시스템과 통신망에 대한 기술적 검토를 통해 통신망을 고려한 서버의 최적 배치, 동시접속 수요분산 대책 등 현안으로 제기된 제반 문제들을 전문적으로 진단하고 치밀하게 보완함으로써 인터넷 대란을 사전에 봉쇄했습니다. 저는 이들의 치밀한 준비과정을 지켜보면서, 물샐 틈 없는 <완벽한 준비>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 민간 IT업체들은 EBS 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장비증설에도 수 십억원을 투자하는 놀라운 열의를 보였습니다. 3월 29일 이들 민관 기관들이 모두 함께 참여한 <합동상황실>은 중앙사령탑으로서 서비스 개시 전에 시스템 운영 준비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유사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네 번째로 모든 관계자들의 사심 없는 헌신과 열정이 이 큰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정보통신부는 처음에는 교육부와 EBS의 무모한(?) 모험을 말리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넘었다는 것을 직감하자, 진대제 장관은 두말없이 이 흔들리는 배에 동선, 저와 함께 조타석에 앉아,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가 옆에 앉았다는 사실 자체가 제게는 더할 수 없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97년에 교육정보화 국장으로, 또 2004년에 한국전산원 원장으로 이 국책사업의 성공을 위해 혼신을 다 했던 고(故) 서삼영 원장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정작 이 사업의 주인공으로 열과 성을 다해 이 기념비적인 사업을 구체적 성공으로 이끈 EBS의 임직원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8. EBS 수능강의의 성과

 

EBS 수능강의의 사교육비 경감효과에 대해서는 조사마다, 그리고 시기마다, 그리고 지역이나 대상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집약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 및 조사는 매우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2012년 7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EBS 덕분에 지난해 약 9000억원의 사교륙비가 줄어들고, 고등학생 자녀 한 명당 사교육비가 월 평균 30만원이 감소했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조사에서 사교육비 감소효과는 서울의 경우 강남보다 강북에서, 서울보다 지방에서 큰 것으로, 그리고 대도시 지역에 비해 군지역에서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유한 가정에서 보다 서민층에서 사교육비 절감효과가 더 큽니다. 이렇게 볼 때, EBS 수능의 사교육비 절감효과는 특히 교육소외지역 및 저소득층에서 더 두드러지게 부각되었습니다. 말하자면 EBS 수능이 당초부터 겨냥했던 두 가지 목표, 즉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 해소가 서로 엇물려서 플러스 방향으로 상승적으로 작용했다고 불 수 있습니다.

 

EBS 수능 인터넷 서비스는 세계 최초로 국가차원의 e-이러닝 서비스입니다. 더욱이 e-러닝은 지식기반사회, 평생학습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인적자원개발 수단입니다. 그런데 그 새 시대가 바로 EBS 수능에 의해 개막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당시 교육부 그 여세를 몰아, 전국 16개 교육청에서 전국적 규모의 ‘사이버 가정학습 서비스’가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학생들이 e-러닝을 활용하여 교수-학습 과정에 적극적,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교육혁신과 공교육의 경쟁력 강화에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사들도 e-러닝을 매개로 교사들 상호 간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다양한 교수방법을 공유하고 지식의 폭을 넓혔습니다. EBS 수능강의가 가져다 준 간접효과도 상당합니다. 우선 학교 현장의 정보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무엇보다 정보의 소통로, 즉 ‘도로정비’를 말끔히 정리 했습니다.

 

저는 인터넷 서비스가 성공한 2004년 4월의 마지막 날,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교육장관회의에 참석하여, ‘ E-learning Korea'라는 제목으로 ’정보통신교육분야‘의 주제연설을 하였습니다. 이후 세계 여러나라의 정부와 교육관계자들은 한국의 e-러닝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 e-러닝 현장을 견학하려는 각국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그해 7월, ’2004 정부혁신 국제박람회‘에서 EBS 수능강의가 교육인적자원부의 대국민 서비스 혁신사례로 선정되었습니다.

 

수능방송의 경제적 효과도 만만치 않습니다. 처음 위성교육방송이 출범할 때나 두 번째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할 때 모두 컴퓨터나 TV 등 수능방송관련 제품의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1997년 지상파 교육이 위성교육으로 확대되었을 때에 부도위기에 몰려있던 a 가전회사 급증한 수상기 수요로 중단됐던 생산라인이 재가동했던 것은 유명한 얘기입니다. 2004년 수능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할 때도 비교적 단기간에 1조를 훨씬 넘는 IT 및 전자산업의 경기부양 효과를 몰고 온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EBS 수능으로 촉발된 e-러닝의 활성화는 관련 산업군의 확장과 더불어 복합적이고 연쇄적인 산업, 경제 확장성을 시현했습니다. 컴퓨터 산업(PC, 메모리, 하드디스크), 가전산업(TV, VTR, DVD 등)의 확대를 비롯하여 , 인터넷 통신산업 활성화도 괄목할 만 했습니다. 아울러 차세대 PC, 디지털 TV 및 홈 네트워킹 산업과의 융합 등 파생시장이 창출되었습니다. 아울러 동영상 관련 처리기술(저장, 전송, 압축, 검색기술) 발달을 촉진하고 기술표준화로 글로벌 마켓에 진입하는 소득을 얻었습니다. 아울러 교육 및 정보통신분야에 상당한 고용증대 효과도 가져 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EBS 수능강의와 e-러닝 활성화를 소외계층의 복지증진과 연계하는 데 세심한 정책적 배려를 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EBS 수능강의 인터넷 서비스의 시행과정에서 소외지역 및 소외계층에 대해 각종 통신편의를 제공하고 수능 교재를 지원함으로써, 이들에게 고른 교육기회를 제공하는데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다른 부처들도 이들 소외계층에게 양질의 학습기회를 제공하는데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행자부의 정보화 마을(103개), 문광부의 문화의 집(141개), 보건복지부의 공부방(600여개)가 그것이었습니다. 교육부도 방과후 학교를 개발하여 수능방송 공부방으로 활용하도록 주선을 하였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EBS 수능강의가 이 땅의 많은 소외계층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이라는 점을 크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EBS 수능의 도움으로 불가능하다고만 여겼던 자신의 꿈을 실현한 많은 산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이 순간에도 이 땅에는 EBS 수능방송에 의지해서 자신의 꿈을 가꾸고 있는 수많은 불우 청년들이 있습니다.

 

9. 남아있는 문제들

 

어느 사업이나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EBS 수능강의도 여기서 예외가 아닙니다. 아직도 EBS 수능강의에 대한 사회일반,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교육계, 교육학계의 비판과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또 학생들의 만족도와 활용도도 천차만별입니다.

 

아예 ‘수능방송은 범죄다’라고 까지 극언을 하는 유명 시인도 있습니다. EBS와 교육부는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 겸손한 심경으로 경청을 해야 될 것입니다.

교재와 연관되어 계속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수가 너무 많아 교재구입비가 가계에 부담을 준다는 얘기입니다. 교재 판매액 수익금의 환원문제도 자주 등장하는 쟁점입니다. 그런가 하면, EBS 수익금이 계속 증가하니, 이제 교육부의 특별교부금을 중단하거나, 크게 줄여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옵니다. 이 밖에 수능강의를 하는 강사 및 강의의 질도 가끔 도마위에 오르고, EBS의 관료적 분위기도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저는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학원 뺨치는 중학 EBS 인강, 과목당 12만원”이라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내용인 즉, ‘프리미움 강좌’라는 이름으로 중학생을 위한 내신 대비용 강의를 개설했는데, 모두 유료라는 것입니다. 이유인 즉, 중학교 과정은 정부지원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이 모든 쟁점에 대해 제가 하나 하나 따져 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EBS는 수능강의가 당초에 무상으로 제공되는 공공재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수능 프로그램에는 교육복지적 측면이 크게 담겨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수능강의를 비롯한 EBS의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들은 우리 사회에 건전한 humanware 양성의 책무가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humanware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의하겠습니다.

 

교육부에게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BS 수능강의는 국가가 주도한 사업 중에서 드물게 보는 장수 프로그램입니다. 또 그것은 비교적 성공적인 프로그램입니다. EBS는 공공기관으로서 자신의 공적 책임에 입각해서, 공공재로서의 구실과 교육복지에 대한 책무를 다하고, 아울러 건강하고 유익한 humanware의 양성에 힘써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자면, EBS는 사적 시장의 온라인 교육매체들과 달리 적지 않은 인적, 물적 부담을 짊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교육부는 이 점을 명심하고, 앞으로도 EBS와의 지속적 유대를 유지하면서, 따듯한 관심과 큰 폭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양자의 이러한 동반자 관계만이 EBS의 수능강의 프로그램이 이제껏 그러했듯이 미래에도 그 역사적 책무를 다하며 제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 사람이 미래다: 휴멘웨어 (humanware), 기술윤리, 그리고 정체성 자본

 

한국이 IT 강국이라는데는 누구도 별로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정보통신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EBS 수능강의 인터넷 서비스>의 성공도 이러한 바탕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이 진정으로 정보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hardware, software, 그리고 humanware의 세 가지 요소가 다 제 몫을 해야 합니다. hardware는 통신망과 컴퓨터기기와 같은 정보화의 하부구조입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부분입니다. software는 정보의 ‘콘텐츠’입니다. 그 나라의 정보화의 수준은 건 바로 이 정보의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음 humanware는 정보를 만들어 내는 정보사업자와 정보를 이용하는 정보이용자를 말합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정보사업자가 건전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이용자가 깨끗한 정보를 사용하면, 그 나라야 말로 정보강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보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대부분이 게임과 노름만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컴퓨터로 좋은 정보를 많이 이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IT 강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초.중등 교육 콘텐츠 개발에 있어서도, 비단 교과교육에 대한 교수-학습자료 뿐만 아니라, 인성교육 및 창의성 교육, 그리고 정보윤리에 대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EBS는 앞으로 전체 프로그램의 구성 및 개발에서 이러한 맥락에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능강의의 단기적 성과를 넘어, 최상의 humanware 양성을 위한 배전의 노력을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하나의 특징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무척 빠르나, 기술윤리 technology ethic가 이를 따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양질의 humanware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네티즌들이 건전하고 유익한 정보에 접근하고, 불건전 정보를 멀리하고 혐오하는 건강한 정신과 윤리의식을 내면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렇게 볼 때, 정보강국은 정보화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문화강국이 될 때, 비로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정보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정보인권체제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EBS가 이러한 노력에 중심에 설 것을 청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경제적 관점에서 사람의 가치를 바라 볼 때에 많이 쓰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유능성과 생산성이 강조됩니다. 한편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개념은 신뢰성에 역점을 둔 개념입니다. 가정과 사회조직, 그리고 큰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내에 신뢰가 형성되는 일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쌓여질 때 사회적 자본이 축적됩니다. 여기 덧붙여서 최근에는 문화적 자본(cultural capital)이라는 개념이 크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개인의 예술적, 문화적 경험과 학습을 통하여 체화된 문화적 산물을 말합니다. 즉 인간의 사고나 행동양식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향기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과거에는 국가나 개인의 발전에서 인적 자본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었지만, 근래에는 사회적 통합과 높은 수주의 발전을 위해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매우 v필요하다는 점이 두루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적, 사회적, 문화적 자본의 통합된 총제를 ‘정체성 자본(identity capital)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정체성 자본의 개념은 말하자면 유능성과 인격성의 총화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유능성과 인격성이 높은 수준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의 정체성은 가장 찬연히 빛납니다.

 

이상의 논의에서 EBS가 앞으로 나갈 길이 분명히 보입니다. humanware의 개발, 기술윤리, 정보윤리의 강화, 그리고 정체성 자본의 추구가 그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방송국이 있고 수많은 채널이 있지만 이러한 도덕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방속국은 별로 눈에 띠지 않습니다. 그러나 EBS는 그것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BS는 최근 다큐 프라임과 같이 격조 높고 문화적 향기가 드높은 양질의 프로그램을 통하여 국민으로부터 사회적 신뢰를 얻고, 아울러 정체성 자본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EBS 수능강의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서도 EBS가 이러한 관점을 폭넓게 수용하기 바랍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른바 스타강사의 현란한 말솜씨와 감성적 자극을 매개로 한 기능적 명강의 보다 진정성과 교육적 관점, 그리고 얼마간 영혼이 곁들인 현장교사의 소박한 강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EBS는 한시라도 자신의 공공성, 교육복지적 관점, humanware적 접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사적 시장의 온라인 매체들과의 차별성도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에필로그

EBS는 이제 공교육의 보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재인식하고, 철저한 질 관리를 통하여 미래세대들의 정체성 자본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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