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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김수환 추기경님 인터뷰

2024. 2. 18. by 현강

내가 2003년 8월 27일, 중도를 표방하며 새로 출범한 인터넷 신문 <업코리아> 창간호(아래 인터뷰/기사/카툰 참조)를 위해 김수환 추기경님께  조심스레 인터뷰를 청했더니, 어른께서 흔쾌히 수락하셨다. 당시 추기경님께서는 오래동안 바깥 세상과 멀리 하시며 장기간 신문 인터뷰를 전혀 않하셨던 시기라, "그럼 해야지요"라는 말씀에  순간 마음이 뜨겁게 북받쳤다. 인터뷰는 물흐르듯 이어졌다. 담담한 어조셨지만, 강조하실 대목에서는 힘주어 말씀하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신앙에 관해 한참 말씀을 나눴다. 돌이켜 보면 더없이 귀하고 소중한 추억이다. 이 인터뷰에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시국관이 고스라니 담겨있다.

아래  <업코리아> 창간호에 내가 쓴 인터뷰 기사를 그대로 옮긴다.   

 

김수환 추기경 창간 인터뷰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써,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고비 고비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는데 큰 몫을 해 왔다. 그 동안 그는 한결같이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신념을 바탕으로, 나라와 나라 간에, 남과 북의 우리 민족 간에, 그리고 이 땅의 사회구성원 간의 화해와 협력을 강조해 왔다. 이 시대의 참 원로, 김수환 추기경은 upkorea 창간을 크게 반기며, upkorea의 안병영 대표를 만나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주요 쟁점에 대해 폭넓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시종 그의 말씀에는 절실한 인간사랑, 나라사랑과 구도자의 심오한 사색과 고뇌가 담겨 있었다.

 

(문)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바른 공론을 세우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upkorea.net이 창간되었습니다. 저희들에게 한마디 격려의 말씀을 주십시오.

-새 인터넷 신문 upkorea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념적 양극화와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 등으로 온통 핵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여러분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친 것은 실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사회에 대한 upkorea의 자정(自淨) 역할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저는 앞장을 선 여러분의 면면을 보면서, 이 분들은 이 나라, 이 겨레가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유의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같이 고매한 애국, 애족심, 자유와 평화정신에 감사하며 하느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하느님이 당신 빛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문)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국론의 분열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이 바로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가장 치열하게 표출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시는 지요.

-남북의 긴장대치 내지 적대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변경시켜 한반도의 평화의 기틀을 놓겠다는 취지로 이해할 때, 원론적으로 그것을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햇볕정책으로 남북 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우리 모두 이 시점에서 심각하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자세와 체제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북한은 이를 계기로 민족공조를 앞세우며, 남한에 친북, 반북의 분열, 즉 ‘남남’분열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문제점입니다.

분명 우리는 남북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 화해와 협력의 길을 계속 모색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 이념과 국민적 공감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통일지상주의를 경계하며, ‘어떤 통일’인가를 묻지 않는 ‘몰(沒)체제적’ 통일론은 분명하게 반대합니다.

남북화해의 가장 큰 열쇠는 신뢰형성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쪽에서도 북을 믿을 수 있도록 진실성을 보여야 합니다. 따라서 남북의 만남의 마당을 북의 선전장, 북의 입지 강화의 자리로 삼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진실이 바탕이 될 때, 상호간의 신뢰가 구축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 세계화를 둘러 싼 논쟁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계화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또 세계화와 민족적 정체성이 어떻게 조화를 해야 할까요.

-세계화는 우리 시대의 불가항력적 물결입니다. 우리는 이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를 거스른다는 것은 다시금 우리 자신이 나라를 조선조 말에 쇄국주의에 빠뜨렸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쇄국적 의미의 민족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북핵문제를 두고 이른바 민족공조를 지나치게 앞세우는 데도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개방사회요, 개방사회는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 자신들 모두가 세계 속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닦고, 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존엄성 존중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민족, 인종, 색깔 등의 차별을 넘어 모든 인간을 인간으로서 소중이 여길 줄 알아야 하며, 이웃 나라들과 친분을 맺고 교류. 협력하며, 세계 어느 나라와도 넓고 트인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는 이 땅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외국 노동자들을 우리 형제처럼 사랑하고 보살펴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세계화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더 발견하고 더 빛낼 수 있을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더욱 힘차게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계화는 빛과 더불어 그림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화, 특히 경제적 세계화는 자칫 세계를 무한경쟁의 싸움터로 만들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화의 성과가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질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아울러 세계화 과정에서 뒤쳐진 사람들에게 국제적으로, 국가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보다 따듯한 도움과 보살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문) 추기경님께서는 다음 세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특히 깊은 관심을 가져 오셨습니다. 항상 이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셨고, 때로는 우려를 하셨고, 그리고 때로는 준열하게 꾸짖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와 그들이 연출하는 세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젊은이들은 연령적으로 그들이 내일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요,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인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의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리의 인간, 정의의 인간, 사랑의 인간이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넓고 민족과 국가를 위할 줄 알로 온 세계를 품을 줄 알기를 빕니다.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자유와 의무에 대한 책임의식이 희박하고 쾌락주의에 빠져있지 않나 염려됩니다. 인터넷 게임이나 음란물에 중독 된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 걱정이 됩니다. 특히 소수라고 믿으나 배타적 민족주의에서인지, 일부 젊은이들이 극단적으로 반미, 친북 경향을 보이는 것은 저의 마음을 아주 어둡게 만듭니다. 특히 몇 일전 한총련 일부 학생들이 미군 사격훈련장 기습진입한 것은 크게 잘못한 일입니다. 정부도 이들에게 유화책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분명한 선을 그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문) 노무현정부가 출범한기 다섯 달이 넘었습니다. 실제로 노무현정부가 처음 출범할 때, 우리는 기대 반(半), 우려 반(半)이었데 게 사실입니다. 요즈음 추기경님께서는 노무현정부에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 한다고 보십니까? 그냥 안도하시는 심경이십니까? 아니면 우려가 더 느셨습니까?

-노무현 정부에 대하여 저는 아직도 불안한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는데 그 기대가 자꾸만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대통령 자신 그 특유의 소신이 확고하고 자기가 옳다고 믿고- 바로 그런 확신에서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차차 더 느끼게 되어서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개선의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그의 소신이 이 나라와 민족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 가지 않기를 빌고 있습니다. 그분이 세례를 받았는데 성당에 다니지 않는다고 제게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분이 대통령이란 막중한 짐, 나라의 운명을 지고 있는 그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분 자신도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빕니다.

(문) 얼마 전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척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우리 주변에는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꽤 늘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들에게 한마디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남북경협에 투신하여 햇볕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너무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줍니다. 제가 햇볕정책을 성찰적 입장에서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도 그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가족도 있고 형제도 많고 친지들도 적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의 마음 답답함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없었는지.... 마지막 순간에 그분이 얼마나 외롭고 참담했을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정회장 죽음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길을 택하고 있어 정말 마음 아픕니다. 이 모든 이에게 이 사회는 너무나 각박하고 어디도 하소연할 곳이 없을 만큼 모두가 핵분열 속에 자신만 생각하고 남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세상이 되었나 봅니다. 우리 자신 종교인들 역시 그들에게 의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이런 죽음이 결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부터 여기에 책임이 없는지를 깊이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진실로 이웃을 생각할 줄 알고 이웃과 근심걱정까지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어남은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문) 추기경님의 요즘 근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무척 궁금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추기경님의 삶의 주제가 무엇인지, 또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인지 감히 여쭤보고 싶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삶의 주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요즈음 저 사신 이미 구세대에 속한 존재임을 하루하루 절감합니다. 이웃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내 마음으로는 무언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다가 가고 싶은데 말입니다. 저는 이제 참으로 기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존재와 삶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빛을 받아 그분과 일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만 참된 인간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함께 소외감을 날로 더 느rl는 노장세대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살며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우리 이웃, 우리 사회, 우리 민족, 우리 나라, 세상 모든 이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자신도 삶의 기쁨을 얻어 밝아지며 우리 사회와 나라도 새롭게 활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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