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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기차길옆 작은 집

2023. 7. 6. by 현강

 I.

작년 10월 강원도 춘천과 속초를 연결하는 동서고속화철도 공사가 첫 삽을 떴다. 오는 2027년 공사를 마치고 개통하면 서울에서 속초까지 환승없이 1시간 39분 만에 도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곳 속초/고성 사람들은 그들의 오랜 숙원이 풀렸다고 모두 좋아했다. 우리 부부의 첫 반응은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남아 그 혜택을 볼까?”였다. 그래도 좋은 소식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 철도 노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려질지 다소 궁금했지만, 더 깊게 알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작년 말경 내 처가 병원 약속 때문에 서울에 간 사이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웬 사람이 우리 뒤뜰 근처에서 측량기를 가지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서 그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느냐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고속 철도가 바로 우리 뒷산을 관통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우리 집 뒤 약 50M 지점이어서, 정밀 측량을 위해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 집 뒷산은 나지막하지만 원래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 생기 넘치는 힘찬 기운과 아름다움에 반해서 이곳에 집터를 정했다. 그런데 그 소나무 숲이 4년 전 고성 큰 불로 내 집과 함께 모두 소진되었고, 이제 그 산 가운데로 고속철도가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바로 밑에 우리 집과 뒤뜰이 여지없이 바깥세상에 휑하니 노정(露呈)될 게 아닌가. 나는 아연실색했다.

우리 집 뒤뜨락은 산 아래에 살포시 숨겨져 있어 내가 비원(祕苑)’이라 부르며, 감춰진 보물처럼 아끼는 우리 집 제1의 명소다. 불나기 전, 나는 그 고요와 한적함 속에서 사색과 독서를 즐겼고, 내 처는 그곳에 온갖 정성을 다해 갖가지 꽃을 심고 가꿨던 곳이다. 얼마 전 불탄 자리에 어렵사리 새 집을 지은 후, 우리 부부는 이 뒤뜰을 어떻게 멋지게 꾸밀까 한창 즐거운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장(秘藏)의 행복 명소가 만천하에 드러나 그 빛을 잃게 되나니,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바로 집 뒤에 기차길이 생기니, 우리집 배후 조망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집 주변 아늑한 자연의 품속에서 누렸던 갖가지 소소한 일상의 삶의 기쁨들도 전보다 훨씬 줄어들게 뻔했다. 지인들은 집값, 땅값의 폭락도 우려했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그런 것보다 훨씬 더 크게 걱정한 것은, 마침 병원 약속 때문에 서울에 가고 없는, 최근에 건강이 크게 악화된 내 처가 받을 심리적 충격이었다. 가뜩이나 2019년 고성산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두어 해 고심 끝에 불탄 자리에 작은 규모의 새집을 짓고, 이제 막 새 출발을 시작했는데 또 이런 악재가 닥치니. 병약한 그녀의 상심(傷心)이 오죽할까 그게 제일 마음에 쓰였다.

               

                            II.

다음 날, 내 처가 서울서 돌아오자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여보, 좋지 않은 소식인데 놀라지 마라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고, 간략하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 처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고 차분했다. 낯빛에 한 올의 변화도 없이, “할 수 없지, 괜찮아.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가 전부였다.

나는 천만다행이라는 심경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녀의 짤막한 한마디 멘트가 그간의 내 우려를 단번에 날려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나와 함께한 반세기가 넘는 파란만장한 세월 동안 오죽 많은 격랑과 고비를 넘겼으면 이 정도의 충격은 그냥 무덤덤하게 넘기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얼마간 처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내 처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느닷없이 여보, 이제 당신 꿈이 이루어져 좋겠네?”라며 장난스레, 조금은 짓궂게 웃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내 꿈이 이루어졌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내 처는 시치미 떼지 마, ‘기차길 옆 작은 집이 당신의 오랜 꿈이잖아, 그게 성취되었으니 오죽 좋아라고 답했다.

, 그 얘기!” 내 기억의 열차는 까마득한 그 옛날, 50여 년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우리가 결혼하기 직전으로 달려갔다.

 

                                        III.

나는 내 처와 결혼하기에 앞서, 그녀에게 한 가지 다짐할 얘기가 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내 처는 다소 긴장한 낯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던 기억이다. 그날 내가 말한 요지는 대체로 아래와 같았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돈과는 비교적 무관한 사람이다. 돈을 벌 욕심도 없고, 남처럼 번듯하게 잘 살 자신도 없다. 그러니 세속적으로 부유한 삶은 전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걸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내 처는 내 말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장난스런 낯빛으로 그러면, 대체로 어느 정도를 살 생각이야. 그래도 내가 시집하기에 앞서 얼마간 예상을 해야 할 게 아니야?”라고 물었다.

그때, 내가, “글세, ‘기차길 옆 작은 양기와집정도, 굶기진 않을게라고 답했던 기억이다. 내 처는 곧장, “그래도 기차길 옆, 오막살이는 아니네, 됐네, 세상에 누가 당신에게 돈 벌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어. 걱정 마!”라며, 한술 더 떠서 내가 개성 상인의 딸인데, 여차직하면 내가 나설 게라고 말했던 기억이다.

그때, 나는 그녀의 말에, 속으로 이렇게 미리 다짐을 받았으니, 나중에 딴소리는 않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한결 놓였던 기억이다.

 

이후, 우리는 언젠가 한 번 기차길 옆, 작은 집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 처가 내게 그때, 당신이 기차길 옆 양기와집이라고 얘기할 때, 혹시 구체적으로 어디를 연상했었어?”라고 물었다. 나는 신촌 기찻길 옆에 나지막하게 내려앉은 작은 양기와집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내 처도 그때 내 말을 들으면서, 옛날 이대에 다닐 때, 자주 보던 신촌 기찻길 옆 양기와 집을 연상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우리 부부는 그 신기한 일치에 조금 놀란 적이 있었다.

그 후, “기차길 옆 작은 집의 개념은 오래 잠류하다 이번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상징적 이미지가 그간 우리 부부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잠재해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사고와 삶에 영향을 미쳐 온 게 아닐까.

 

IV.

여하튼, 이제 남은 숙제는 2007년 춘천-속초 고속화 철도가 완성되어 힘차게 달리는 열차 소리를 귓전에 들을 때까지, 그간 내가 꿈꿨던(?) “기차길 옆 작은 집에서 얼마간 건강하게, 또 행복하게 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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