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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만남과 헤어짐

2023. 4. 9. by 현강

I.

지난 224, 내가 예전에 다녔던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입학 60주년을 맞아 5회 동기모임이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 1963년 봄에 50명이 입학해서 그동안 바삐 살다가, 10년 전에 입학 반세기, 50주년이라고 처음 한번 만나고, 훌쩍 10년을 넘겨 이번에 다시 만났다. 지난 번에 20명이 나왔던 기억인데, 이번에는 그 절반인 10명이 나왔다. 그동안 여러 친구들이 세상을 등졌고, 현재 병석에서 몸을 가누기 어려운 친구들도 여러 명이라고 했다. 대학원 입학 60주년 만남은 아마도 별로 유례가 없을 듯 한데, 어떻든 그 일이 성사되었다. 열 명의 노옹(老翁)들은 오랜 풍파에 지친 주름진 얼굴들을 마주보며 서로 반기며 손을 마주 잡았다.

 

II.

만나기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렜다. 분명 졸업 후 처음 볼 친구도 여러 명 있으리라는 생각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반 백년을 넘어 60년이라니! 그게 여느 세월인가. 마음은 곧장 입학 당시 풋풋했던 내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 꽤나 못살고 각박했던 그 시절, 대학 다니면서 두 역사적 격변, <4.19><5.16>을 두루 거치고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대학원에 입학했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나이, 출신대학, 전공 배경 등이 다양했다. 우선 신입생들 간에 나이 차이가 매우 커서 나처럼 대학을 갓 졸업한 친구도 꽤 되었지만 30세를 훌쩍 넘은 늙스레한 아저씨도 있었다. 법학, 정치학, 경제학 전공자가 주류였으나 물리학 등을 전공한 이공계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대학원 입학 시점이, 1962년 마지막(14) 고등고시 직후, 새로 행정고시가 시작되기 이전 과도기였기 때문에 고시 준비를 하던 친구들이 대거 입학했다. 더욱이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이 앞으로 고등고시를 대체한다는 그럴듯한 소문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공직에 뜻을 두었던 젊은 이들이 많이 모였고, 경쟁도 치열했다. 입학하고 보니, 제제다사(濟濟多士), 동료들이 하나같이 우수했고 야심찬 공부꾼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행정학이라른 신학문에 입문했다. 입학생들이 집중적으로 공통과목을 많이 수강했기 때문에, 매일 얼굴을 맞대며 가깝게 사귈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대학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었고, 그 때문에 적잖은 추억을 쌓았다.

대학원 다니면서, 서서히 공직으로 나갈 친구들과 학계로 나갈 친구들이 갈라졌다. 나는 일찍부터 공부길로 마음을 정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세상을 떠난 김광웅(서울대 행정대학원), 김동희(서울대 법대), 김안제(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들이 다 5기 동기들이다. 모두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는데, 안타깝게  몇발 앞서 미리 떠났다.

 

III.

오랜만에 만남이지만, 전혀 격의가 없었고 분위기는 더없이 화기애애했다. 대체로 80대 중반에 접어들었으니, 이미 노쇠하고 한마디로 너나없이 맛이 간 모습이었지난, 마음은 옛 그대로 젊고 약동했다. 마치 며칠 만에 만났던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담소하며 즐겼다.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의 이러 저러한 일화를 나누고, 더러는 자신의 인생유전을 털어놓는가 하면,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부담없이 나눴다. 격랑의 세월을 함께해서 그런지, 무슨 얘기를 해도 서로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갔다.

50, 60대까지만 해도 다른 동창모임에 가면 간혹 잘난 체하고 거드럭거리는 친구가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진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 간에 공유하는 넉넉한 상호이해와 공감대, 그리고 얼마간의 동병상련 같은 것이 강물처럼흐르고 있었다. 누구 하나 과도하게 설치는 친구도 없었지만, 설혹 누가 그랬어도 전혀 밉상으로 보이지 않고 웃으면서 받아들일 분위기였다.

나는 그런 마음가짐이 나이 탓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공자의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칠십에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공자 때 70이면, 요즘으로 말하면 적어도 우리 나이가 되었을 터이니, 이제 달관의 경지에 가까이 간게 아닐까. 아니 그 보다도 엄혹했던 시대를 함께 살아온 전우들 간에, 서로 간에 무엇이든 하고 싶은대로 하여도 그것을 웃으며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IV.

헤어지면서, 서로 웃으며 잘 가게”, “건강하게등으로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마치 몇일 후 다시 쉽게 만날 것 같은 밝고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얼마간의 아쉬움이나 연민, 그리고 한 조각 슬픔 같은 감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게 조금 신기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렇게 다시 만나자는 얘기는 없었다. 그게 그리 쉽지 않아서 였을까. 더욱이 서울서 멀리 떨어져 사는 나는, 이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을 남은 생애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갔지만, 물론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인생 황혼기에 치러야 할 중요한 숙제, 어쩌면 의례(儀禮) 하나를 치룬 듯한, 그래서 무언가 마음이 개운한 느낌을 가졌다. 그래도 이렇게 한번 만났으니, 혹 다시 못 보더라도 덜 서운할 것 같은 그럼 심경이었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v.

그런데 지난 3월 말, 청천벽력 같은 부음에 접했다. 지난 번 동기회 모임을 솔선해서 제안했고, 그날 비용까지 전담했던 동기생 임경호(전 경기도 지사)군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였다. 조금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그날 척이나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고 누구보다 더 크게 웃으며 유난히 즐거워 했던  그가 이렇게 속절없이 세상을 등지다니. 도시 믿어지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동기회 모임을 제안했을 때, 그는 이미 췌장암으로 병이 위중한 상태였고, 그날 모임에 참석한 것도 병원에 입원 중, 의사의 허락을 얻어 어렵게 잠시 병상에서 벗어난 것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온 것을 분명히 알면서, 친구들 과의 마지막 작별 모임을 정밀하게 기획했던 것이었다.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이 한 달 사이에 이렇게 교차했다. 그것은 정말 종이 한장의 차이였다.

 

무척이나 허망한 심경으로, 오랜 친구, 늘 씩씩하고 열정적이었던 임경호군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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