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사색

삶의 단상 2010. 4. 3. 17:24 |


성숙의 불꽃  2008.1.18

정권변동을 앞두고 변화의 물살이 매우 거칠고 세차다. 시장, 경쟁, 자율이 시대정신으로 대두되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역사가 통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그와 연관된 주요 사회가치들이 크게 폄하되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좌편향의 역사가 그랬듯이, 새로운 역사의 반전(反轉)도 급격히, 또 다분히 이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인수위의 조직개편 작업에서 특히 큰 변화가 예고되는 부문이 교육이다. 처음에는 아예 교육부 해체론까지 등장했었다. 지금도 교육부의 ‘교육’ 기능은 대폭 축소하고, 초중등 교육은 시도 교육청에, 대학교육은 대교협 등 자율기관에 이양 또는 위임하겠다는 기조는 그대로 이어갈듯 하다. 이러한 엄청난 변화가 모두 자율과 분권의 명분아래 진행되고 있다.

  자율은 실로 아름다운 말이고 시민민주주의의 기본철학이다. 그러나 그것은 ‘빛과 그림자’를 함께 함축한다. 문제는 자율이 아무런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될 때 자칫 엄청난 혼란과 파국을 동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예를 들어 보자.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크게 외치면서 무분별한 경제자유화와 금융규제완화를 단행했고, 이는 금융위기를 유도, 마침내 치욕적인 IMF 구제금융시대를 열었다.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는 자율적이며 합리적인 시장의 작동기제가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랫동안 경제를 감독하고 규제해 오던 <발전국가>의 역할을 급격히 무장해제 시켜 버린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릇 자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제도적 하부구조가 마련되고 권한을 위양 받는 자의 능력과 책임의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가 성립되지 않고 결행되는 급격한 역사의 반전은 실패를 자초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자율과 분권의 이름으로 새로이 부상하는 시도 교육청과 대교협이 교육이라는 전국민적, 역사적 과제를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의식을 갖추고, 공공성과 사회적 형평을 고르게 고려하기에 손색이 없는 존재인가, 또 현재 그들이 제대로 기능할 만한 제반 사회경제적, 제도적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가, 깊이 고민하고 진지하게 따져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자율화의 기수가 될 시도교육청이 입시교육 경쟁에 <올인>하고, 대교협이 대학(그것도 몇몇 상위권 대학)의 이기적 욕구를 채우는데 급급하게 되면, 사교육비, 양극화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공교육 정상화의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게다가 교육부마저 무력화 된다면 공교육에 대한 국가적 책무는 어디서 구할 것인가.    
      
  변혁의 시대일수록 생각을 가다듬어 시대정신이라는 신기루에 현혹되기 보다는 역사의 현장의 살아있는 실제를 직시하고, 긴 호흡으로 먼 역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환기에 깊은 사색과 고뇌를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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