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단상

세상에 이런 일이

2014. 7. 8. by 현강

                        I.

   필자는 8년 째 이곳 속초/고성에서 살면서 무엇보다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과 교감하며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다는데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지척에 천하의 명산 설악산을 비롯하여, 동해바다, 영랑호가 손짓하고 있고, 내 집, 현강재도 싱그럽고, 청정하기 이를 대 없는 바닷바람을 머금은 명품 소나무숲을 등지고 있으니, 세상에 어디 이보다 더한 홍복이 있을까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고성지역 곳곳의 산림 및 환경훼손 등 자연파괴가 자심해 지면서 아름다운 주변 환경이 앞으로도 그대로 보존될 수 있을까에 대해 깊은 우려가 움트기 시작했다. 특히 소나무 굴취가 극심해서 처음에는 별로 눈에 띠지 않는 산 뒤편의 소나무들을 조심스레 베더니, 근년에는 아예 큰 길에서 빤히 보이는 전경(前景)에 자리한 명품 송림도 거침없이 훼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가까이 큰 길에는 서울로 반출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실은 큰 트럭들이 일년내내 줄을 잇고 있어, 이를 목도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고성의 최고의 가랑거리이자, 최대의 미래자원인 명품 소나무들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터 인데 하는 의구심이 날마다 엄습한다.

 

  그러던 중, 지나 달 초 속초의 지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문을 들었다. 토석채취를 구실삼아 바로 우리 집에서 100m 거리도 안 되는 인근의 명품 소나무숲 산을 밑동만 남겨두고 통째로 허물게 됐다는 얘기였다. 알아보니 우리 이장님도 금시초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장님이 급히 군청에 문의하니, 이미 개발행위 허가가 나서, 즉시라도 산을 허물 수 있는 형편이라는 것이었다. 국도변에 자리하고 있고 천혜의 방풍림인 명품 송림 야산을 주민에게 한마디 귀띔도 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허문다니, 이게 어디 대명천지에 있을 법한 일인가. 실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일이다.

 

                            II.

  고성군 당국은 이 원암리 소나무 산에서 채취된 토석은 고속도로 및 인근 농경지 성토용으로 쓰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허가를 신청한 측은 경기도 부천에 주소를 둔 외지업체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토석채취를 위해 왜 꼭 이 명품 소나무산을 허물어야 하나. 군 당국은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삼척동자도 이 산을 허무는 첫째 이유는 토석채취에 앞서 소나무 굴취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산을 허물면 우선 천정부지의 고가(高價) 소나무를 대량 굴취, 외지로 반출해서 큰돈을 벌 수 있다. 울창한 소나무숲이니 어마어마한 금액일 것이다. 아울러 거기서 채취한 엄청난 량의 토석을 팔아 넘기면, 그것도 만만찮은 돈벌이가 될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산을 허물어 소나무와 토석을 제거하고 나면, 거기에 번듯한 대지가 남게 되니 그 또한 큰돈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3중의 장사 목적이 산을 허물려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군은  공익과 민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이 음습한 장사판에 끼어들어 도장을 찍은 것이다. 이러한 암묵적 제휴의 그늘아래서 환경과 생태계는 파괴되고 자연경관은 여지없이 망가지고, 주민의 시민정신과 복지는 처참하게 땅에 떨어지는 것이다. 군 당국은 언필칭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자연파괴에 앞장서고 있으니, 이 배리와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III..

   필자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대한민국의 동쪽 끝 강원도 고성군을 찾아 온 가장 큰 이유는 이 지역의 빼어난 자연환경 때문이었다. 고성의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이곳까지 불러들인 것이다. 내가 많은 지인들에게 하도 속초/고성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이곳으로의 귀촌을 권유했더니, 그들이 나에게 속초/고성 홍보대사라고 별칭까지 붙여주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턴가 이 명예로운 홍보대사의 역할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주변의 자연환경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니, 어느 누가 이곳의 예측 불가능한 내일을 보장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근자에 고성군 당국이 가장 고심하는 것은 인구감소이다. 그런데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은, 정착 그들은 고성에 귀촌인구를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묘약이 다름 아닌 자연보호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제는 그들이 고성의 아름다운 환경에 매혹되어 제 발로 찾아 온 나 같은 사람도 되돌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다.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래 글은 내가 사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주민 일동이 신임 고성군수님에게 보낸 ‘두 번째 진정서’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께  무소불위의 고성군 당국에 맞서, ‘최소한’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작은 힘을 모으고 있는  원암리 주민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강원도 고성군 윤승근 군수님 귀하

                     

               주민들의 두 번째 진정서

 

1. 고성군청은 2014년 6월 2일자로 주민동의를 생략한 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 33일대 2만 7,533 평방 미터(8,300평)의 소나무숲 산지를 일부 밑동만 남겨두고 통째로 허무는 토석채취 허가를 했습니다. 이에 원암리 주민은 6월 12일자로 주민 134명의 명의로 고성군수를 상대로 허가취소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논거를 적시하며 허가취소를 강력히 요구하고, 아울러 고성군의 자연보호 정책의 일대 쇄신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에 고성군청은 6월 19일자로 진정내용에 대해 성실하고 적절한 해명 없이, 간략한 회신을 통해 “취소할 수 없음”을 통고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무책임하고, 고압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2. 허가취소를 요구하는 원암리 주민의 주장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1. 지난 몇 년 동안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고성군 일대의 우량 소나무들이 끊임없이 남벌(濫伐)되어 고성군의 가장 소중한 미래자원인 소나무숲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환경 및 산림자원보호, 그리고 자연경관보존의 차원에서 소나무숲의 보존은 고성군이 당면한 가장 중차대하며, 심각한 정책쟁점입니다.

 

2.1. 원암리 산 33 산지는 수령 41년이 넘는 명품 소나무가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울창한 명품 소나무 숲 산지이며, 산지 곳곳에 아름다운 암석이 자리하고 있어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야산입니다. 이 산지가 바로 국도변 대로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산은 바로 산줄기에 위치하고 있는 원암리의 소중한 방풍림입니다. 따라서 산줄기 훼손의 개발행위는 전면 금지되고 있는 산림자원 보호의 근본정신에 입각할 때, 이 산은 당연히 보호, 보존되어야 마땅합니다. 원암리 주민들은 바로 이 산 33 산지가 원암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 흐름에서 풍수지리상 말머리에 해당하고 있는 요충이라고 믿어 왔고, 그 때문에 이 산지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2.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산 33 산지 일대는 그간 여러 차례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인해 산림자원이 크게 훼손되었고, 몇 년 전 소나무 남벌 이후 오랫동안 방치하여 일부는 황폐화되었습니다. 이후 얼마간 개선되었으나 곳에 따라 아직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벌거벗은 모습이 국도변에서 그대로 목도되고 있습니다. 산 33 산지의 10년전, 5년전, 그리고 최근의 산 33 산지 일대의 고공사진을 공개하는 경우, 이 소중한 자연자원이 그 동안 어떻게 무분별하게 훼손되었는지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2.4. 무엇보다 통탄할 일은 이 엄청난 자연훼손 시도가 그간 주민들 모르게 밀실에서 진행되어 허가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그간 개발행위 허가와 연관하여 직접 이해 당사자인 인근 주민 누구와도 상의를 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면장님, 이장남도 모르는 가운데 관주도적으로 일방적으로 허가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정과정에서 주민들은 철저하게 소외 되었습니다. 산지가 준보전지역이라도 개발행위를 위해서는 전용허가, 환경성검토, 개발허가를 모두 받아야 하는데, 세 가지 절차에서 모두 주민의 동의를 득해야 하고 주민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한 때는 전용허가는 물론 개발허가도 날 수 없다는 것이 기본원칙입니다. 비록 소규모 개발행위라도 환경성 검토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아무런 고지조차 없었다는 것은 엄연한 행정절차 위반입니다. 그런데 군청의 진정회신에서 이 점에 대해 일언반구에 해명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주민을 경시한 반민주적, 관료적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2.4. 토석채취를 위해 반백년 수령의 명품 소나무숲을 초토화하자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삼림 및 자연보호, 경관보존, 주민의 생존권, 그 어떤 관점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시도의 숨은 이유가 토사채취에 앞서 소나무 굴취(掘取)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기에 군의 이러한 반(反)공익적 처사를 접하는 주민들의 심경은 실로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3. 원암리 주민은 이러한 무분별한 일이 군수 궐위(闕位) 중 과도기에 자행되었다는 점에 깊은 관심을 표명합니다. 새로 취임한 신임 군수님은 허가취소를 염원하는 주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군정의 공공성을 선양하고 그간 미망(迷妄)속에 헤매던 고성군의 자연보호 정책을 일대 쇄신하는 획기적 전기(轉機)를 마련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4. 이러한 원암리 주민의 간곡한 충정을 무시하고, 산 33 산지에 대한 개발행위가 자행되는 경우, 원암리 주민은 앞으로 이 사안을 군 내외에 널리 알림은 물론, 가능한 모든 합법적 수단을 강구하여 이에 투쟁할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주민 일동

 

 

 

'삶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황 프란치스코 1세/ 윤효  (0) 2014.08.23
세상에 이런 일이 (2)  (2) 2014.07.20
아름다운 청년이군!  (13) 2014.06.09
다시 계절을 느끼며  (2) 2014.04.29
세상 모든 게 공부거리인 것을  (2) 2014.03.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