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육부 수장을 두번이나 역임했다. 이 자리를 두 번 거쳐간 사람은 초대 안호상 장관부터 현재의 김신일 부총리(50대)에 이르기까지 박정희 정부 시절 권오병 전 장관과 안 전부총리 두 명 뿐이다. 장관 재직기간은 30개월에 이른다.

YS 정부 이후 임명된 장관들 가운데 가장 장수한 인물이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EBS 수능 강의,학교 민주화를 위한 학교운영위원회, 교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 교원평가제,교육 소외자들을 위한 대안학교 정책 등이 그의 재직시절 수립됐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2008 입시안’도 안 전부총리 재직시절인 2004년에 마련된 것이다.

그가 수립한 정책들을 보면 두드러진 특징이 한 가지 있다. 자유주의적 흐름인 ‘경쟁’이나 ‘자율’의 개념이 강한 정책과 ‘형평’에 무게가 있는 정책이 반반씩이라는 점이다.중도개혁주의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중도개혁주의자 안병영’은 현 정부에서 설 자리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요즘 장관 재직시절을 빼곤 거의 평생 몸 담았던 연세대를 정년퇴임 한 뒤 낙향(落鄕)한 상태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강원도 속초시의 33평짜리 아파트에서 부인과 단 둘이 설악산과 영랑호를 벗삼아 산행과 산책,집필을 하고 있다.절반은 은둔 생활이다.

자연에 귀의해 지내면 마음과 몸이 편할 듯 하지만 요즘 벌어지고 있는 교육주체들간의 갈등을 바라보면 마음이 무겁다.무엇보다 성공할 수도 있었던 2008 입시안이 추진과정에서의 준비소홀로 기우뚱거리고 있는 탓이 크다.안 전부총리는 처음에는 중앙 SUNDAY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교육부나 대학,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순 없다”는 이유였다.사실 요즘 ‘뒤돌아서면 바로 남이 되서 공격하는’ 염량세태(炎凉世態)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는 중앙 SUNDAY의 간곡한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교육이 위기’라는 절박함이 더 컸던 듯 하다.

인터뷰는 지난달 21일 안 전부총리의 속초 자택에서 이뤄졌다.노무현 대통령이 대학 총장들을 불러 오찬을 하기 5일전이다.

그는 이날 중앙 SUNDAY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에 입시안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로 ‘교육발전협의회’와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을 제시했으나 퇴임후 교육발전 협의회는 식물화 과정을 밟았고 입학사정관제도 불발이었다”며 “퇴임전 20명으로 구성된 교육발전 협의회를 출범시켰는데 이 협의회가 2년이상 꾸준히 활동을 했다면 올해 쯤 2008 입시개혁이 꽤 쓸모있는 준거틀로 정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 협의체를 전혀 가동하지 않았다”고 안 전부총리는 안타까워 했다.
교육 발전협의회는 2008입시안’에 관한 주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고교와 대학,학부모, 시민사회, 언론, 그리고 정부 인사가 참여하는 협의체다.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이 전문가를 채용해 학생의 성적, 개인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판단케 하는 제도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사안인 만큼 이런 중도통합 기구에서 갈등을 ‘용광로’처럼 녹여 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8 입시개혁안이 전제했던 두가지 방안중 지금 어느 하나도 제도화된 것이 없다”는 게 안 전부총리의 지적이다.

그러면서 안 전부총리는 “교육부는 이제 위계적 압력이나 제재라는 방식을 통해 대학을 강제할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라며 “교육부는 지시자가 아니라 조정자,주재자가 아닌 조력자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안 전부총리가 대학의 손을 번쩍 들어준 것은 아니다.

안 전부총리는 “주요 대학들은 양질의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하기 보다 나라가 순위를 정해주면 손쉽게 이들을 걷어갈 생각만 해왔다”며 “고교교육정상화에도 배전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안 전부총리와의 일문일답.

-드물게 두번이나 교육수장이 됐는데,그 과정과 재직시 있었던 일을 먼저 들려주시죠.

“제가 처음 교육부장관에 임명된 것은 1995년말 문민정부 때였고 두번째는 2003년말 참여정부때였습니다.

첫번째 발탁은 전혀 의외의 일이었습니다.그해 12월20일 개각발표 예정시간인 11시보다 한시간 여 앞서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장관직을 청했습니다.‘해라, 못하겠다’ 한동안 승강이를 거쳐 장관직을 수락한 것은 10시 넘어서였어요.
당시 TV화면에 11시 가까이 까지 교육부장관 예정자로 이명현 교수 이름이 뜨다가 발표직전에 내 이름이 올랐어요.

훗날 들으니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이수성 신임총리가 교육부장관 경질문제와 관련해 이견이 있었던 듯 해요.이수성 총리는 강력하게 경질을 요구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유임을 주장하다가 마지막에 총리 뜻을 수용했다는 것이죠.경질로 결판나자 김대통령이 제가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이총리가 좋다고 대답했다는 거예요.

때문에 당시 나는 전혀 준비된 장관이 아니었어요.따라서 내가 수행할 미션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나 의지도 마련되지 않았죠.그러나 어렴풋이 그해 5월31일 교육개혁위원회가 발표한 1차교육개혁방안을 착실하게 프로그램화하는 일이 내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서 취임 기자회견때도 그렇게 대답했지요.

임명되자마자 나는 마치 입시준비하는 학생처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그러면서 세계화 민주화의 시대정신을 담은 교육개혁방안이 기존 교육제도 관행과 비교할 때 패러다임적 변화를 추구하는 일대 혁신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엄청난 개혁전도사가 되어야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1차교육개혁안에 이어 임기중 2,3,4차 교육개혁안이 발표됐고 그 과정에서 교육부는 더 바빠졌어요.이들 교육개혁방안은 당시 풍미했던 세계화와 민주화라는 두 사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그러나 다른 한편 나는 청와대가 주도하는 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흐름과 별도로 제도권 교육의 그늘진 곳을 치유하기 위해 교육복지 프로그램을 개발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것이 96년 12월 교육복지 종합대책으로 문서화 됐죠.이렇게 마련된 교육복지 종합대책은 당시 교육부에서 장관프로젝트라고 불려졌고 이후 교육복지라는 개념이 점차 보편화됐습니다.
나는 청와대 주연 교욱부 조연의 1~4차 교육개혁 사업을 정책화하는 일과 이른바 ‘장관프로젝트’인 교육복지 사업을 실천하는 일을 핵심미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003년 상황은 많이 달라요.11월 하순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청와대 오찬에 초청했습니다.직접 대면해 말씀을 나눈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오찬내내 그분은 나에게 교육에 관해서 많은 것을 물었고 나는 나대로 내 생각을 전했어요.약 한달후 neis문제로 교육부가 온통 혼란에 빠져들게 되자 개각과정에서 다시 교육부 수장으로 발탁됐습니다.아마 11월 오찬모임과 그날의 대화가 발탁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밖에 있는 몸이었으나 한국교육의 흐름과 정책의 변화를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어 내가 수행해야할 미션을 처음처럼 생소하게 느끼진 않았습니다.취임하자마자 이미 준비중이던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정밀하게 다듬고 그 핵심과제의 하나인 EBS 수능강의, 인터넷서비스의 출범을 준비했어요.여기서 강조해야할 것은 지난 10년에 동안 정권이 바뀌었으나 이 나라 교육정책의 골격은 아직도 문민정부의 5ㆍ31교육개혁안에 준거하고 있었으며 정권 고위층들도 그 점을 스스럼없이 인정해왔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동안 너무 자주 장관이 바뀌는 과정에서 교육개혁 사업은 전체적 틀속에서 유기적으로 전개되기 보다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단기적 대증적으로 추진됐어요.아마 노대통령이 나를 발탁한 것도 1년 8개월동안 5ㆍ31교육개혁안의 초기제도화 과정에 주역이었던 내가 이 일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청와대 ‘실패’우려 속 EBS 수능강의 인터넷 서비스 성공시켜
교사자질 향상 위한 ‘교원평가제’ 드라이브 걸기전 장관서 물러나


-현 정부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 했던 일은 뭔가요.

“내가 가장 핵심적 미션으로 생각했던 것은 하나는 이러닝(e-learning)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원개혁이었어요.

2003년말 교육부총리로 취임하자마자 서둘러서 사교육비경감대책을 마련했는데 핵심사업은 EBS 수능강의 및 인터넷 서비스였습니다.나는 2004년초 올해는 이러닝의 해라고 선포했어요.2004년 4월1일,세계적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와 이러닝 준비도를 갖춘 우리나라는 10만명 이상이 동여상에 동시접속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대규모 교육정보화 사업인 EBS 수능강의 및 인터넷 서비스에 성공했습니다.이로써 이러닝 대중화가 촉발됐죠.이후 이러닝 대중화는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측면에서 다양한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켰어요.

사실 EBS 인터넷 강의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그리고 총리실의 관심은 지대한 편이었는데 대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우려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3월2일 교육부 종합대책을 통해 정식으로 보고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인터넷 대란 대비책을 철저하게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대통령은 실제로 그 전날 3월1일 이미 민정비서실로부터 시스템구축에 소요되는 기간(통상 2개월)을 감안할 때 4월1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는 불가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바 있었기에 회의가 더 컸을 거예요.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부조차도 4월1일 개통에 매우 회의적이었어요.이러한 분위기는 총리실도 마찬가지였죠.고건총리는 비상합동상황실의 가동과 3개월간의 시험기간 설정을 권고했어요.교육부가 당초 예상되는 동영상 최대 동시접속자수를 5만명으로 산정했다가 10만명으로 늘린 것도 이러한 주위의 분위기와 권고에 따른 것이에요.

이 사업은 관심이 기술적 성패에 집중되었죠.따라서 여야나 교직단체들간 첨예한 정치적 가치론적 갈등은 별로 없었어요.모든 관심은 이른바 인터넷 대란에 모였죠.EBS인터넷 서비스가 개통되던 시점에 대통령은 탄핵으로 직무정지 상태에 있었습니다.성공직후 대통령의 대응은 접할수 없었는데,고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치하의 말씀을 했습니다.

이 인터넷 강의는 우리나라 이러닝의 출발점이 아닌가 합니다.이러닝 활성화는 관련 산업군의 확장과 더불어 복합적이고 연쇄적인 산업 경제확장성을 내포하고 있었어요.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이러닝이 이 수준에 오른 것은 10년에 걸친 IT교육에 대한 지속적 투자의 결과였습니다.

나는 2004년초엔 그간 금기시돼왔던 교원평가 문제를 들고 나왔어요.적잖은 저항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한국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그래서 교원평가와 더불어 교원양성체제와 교원연수체제를 한몫에 함께 개혁할 채비를 했습니다.2004년 내내 정책연구를 계속했죠.세 가지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며 가능한 함께 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내 계획으로는 2005년 1월 어느 때쯤 그해를 교원개혁의 해라고 선포할 예정이었습니다.그러나 그에 앞서 부총리직을 물러나게 됐습니다.이러닝 발전과 교원평가는 우리 교육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절호의 인프라 구축사업이에요.이념적 편향성이 없는 두 사업은 한국교육 백년대계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학력 세습화는 곧 가난 대물림, 사회통합 심각히 저해할수 있어

-지금 한국 교육현실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 교육은 국내에선 온갖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지만 신기한 것은 외국에 나가면 상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점입니다.외국인들은 한국 교육이 지난 수십년간 성취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크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육의 두드러진 성과는 초중등학생들의 뛰어난 학업성취도에서도 나타납니다.특히 중교교생들의 학업성취능력은 OECD기준으로 최상급랭킹입니다.외국이 부러워하는 한국교육의 또다른 강점은 세계최정상의 교육정보화 기반입니다.한국은 명실공히 세계의 이러닝(e-learning) 선도국가입니다. 이밖에도 우리 사회에는 전통적으로 교육과 학습을 중요시하는 사회문화적 뿌리가 깊습니다.다른 나라에 비해 우수한 교원들이 교육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육은 이러한 빛과 더불어 오히려 그를 압도하는 그림자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직면하는 교육의 문제점은 과열 입시경쟁과 이와 연관된 엄청난 사교육비의 무게입니다.이것이 주체하기 어려운 가계 압박,증가일로의 조기유학대열,심지어는 저출산의 주요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인성교육과 창의성 교육을 뒷전으로 몰아내며 학생들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듭니다.우리 교육현장은 점차 청소년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옭죄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되고 있습니다.한국교육의 어두운 단면은 이외에도 적지 않지요. 그중 심각한 것이 학력의 세습화와 가난의 대물림입니다.계층간 지역간 교육격차는 이미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학벌주의,학력주의와 맞물려 사회통합을 심각하게 저해합니다.

아울러 크게 걱정되는 부문이 고등교육입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국제경쟁력은 대체로 그리 높게 평가되지 못합니다.그간 양적성장에만 힘을 쏟고 적절한 투자와 질관리에 소홀했던 것이 주원인입니다.무엇보다 산업계 현장의 수요를 대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자못 높습니다.이러한 인적 자원수급의 불일치로 인해 대졸자는 과잉배출되는 가운데, 정작 쓸만한 고급핵심인력은 크게 부족한 이른바 풍요속의 빈곤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적자원정책이 풀어야 할 중차대한 과제가 아닐수 없죠.

대체로 우리는 우리 교육에 대해 자기비하적 내지는 자학적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러나 한국교육에는 한국의 미래를 담보할 엄청난 발전잠재력이 내재해 있다고 봅니다.문제는 우리교육의 빛과 그림자를 바르게 가려 그 밝은 면은 열심히 키우고 가꾸고, 어두운 면은 그 뿌리를 찾아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입니다.”

극단적 신자유주의자,시대착오전 민중주의자 사이에서 절대고독 반추

-말씀하신 대로 우리 교육에서 뿌리를 찾아 내야할 가장 어두운 면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국민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전지구적으로 유례가 없죠.전설적인 한국인의 교육열은 우리나라의 교육발전 원동력인 동시에 자칫 감당하기 어려운 큰 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많은 한구인들이 교육과 연관해서 얼마간 한이 맺혀있다는 것입니다.사실 많은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유교적 입신양명에 젖어 못배운 한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그러다보니 전 국민이 일류대학병에 감염이 됐고 아울러 심각한 학벌주의의 노예가 됐습니다.이런 사회적 환경은 교육문제 해결에 큰 장애가 되고 있어요.

또하나, 교육당국이 교육정책의 형성과 관리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의 큰 원천은 우리사회에 뿌리하고 있는 이념적 갈등이에요.

얼핏 보기에 교육문제는 탈이데올로기의 영역인 듯 하나 실은 거기에 이념적 갈등이 첨예하게 도사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부분의 교육쟁점의 경우 여론이 반반씩 갈리는 경우가 많고 그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닙니다.

이념의 여울에 빠지게 되면 만사를 정(正)과 사(邪)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죠.문제해결에 나서면 나설수록 사회적 갈등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기 일쑤입니다.

현재 우리사회도 시장과 경쟁을 우상시하는 극단적 신자유주의자와 평등에 목을 매는 시대착오적 민중주의자간의 대결양상이 두드러집니다.2004년 국회 교육위원회이는 약 반수의 386전사들과 또다른 반수의 신자유주의 기수들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중도주의자인 나는 그 가운데서 절대고독을 반추할 때가 많았어요.그런 가운데 중도개혁을 지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언론도 크게 둘로 갈려져 있지 않은가요?

현재 쟁점화되고 있는 이른바 3불이나 고교평준화 사립학교법 등도 다 그런 예들이죠.

교육의 경우 수월성과 보편성, 경쟁력과 사회적 형평이 충돌할 때가 많습니다.그러나 많은 경우 양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과 조화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두 가지 가치는 함께 존중해야 하며 문제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양자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자주 쟁점화하는 평준화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평준화는 고수되어야 한다’라던가 ‘평준화는 절대로 해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이념적 집착이에요.

바른 입장은 ‘평준화는 보완,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준화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함으로써 내적 역동성과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입장이 그것입니다.

수준별 이동수업, 선지원 후추첨, 학교별 프로그램의 다양화, 특목고 운영개선, 영재교육 프로그램의 활성화 등이 주요한 보완책이죠.

말하자면 대중교육의 견실한 보편구조위에 수월성 구조를 효과적으로 접목하자는 접근입니다.

다시말해, 가능한한 사회통합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에요.
내 기본적 입장은 교육에 있어서도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을 실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나친 신자유주의 편향이나 과도한 평등주의적 접근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양자의 균형과 조합이 필요합니다.교육문제 해결은 사회적 파트너십과 사회협약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평준화는 고수되어야’ ‘평준화는 절대로 해제되어야’ 모두 이념적 집착
‘평준화는 보완,개선되어야’가 정답


-개별 교육현안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3불과 내신비중,수능변별력,논술,특목고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결론 부터 말하면 이른바 3불은 현 단계로서는 고교교육정상화와 우리사회의 사회통합적 가치실현을 위해 그 기본틀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적지 않은 이들이 3불은 거의 모든 대학들이 다 원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으나 실제로 따져보면 상황은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기여입학제를 진정으로 갈망하는 학교들이 있다면 아마 몇몇 일류사립대일 것입니다.그 외에 적지 않은 다른 사립대학들은 기여입학제가 가져올 부익부 빈익빈 때문에 내심으로는 오히려 반대하는 입장일게 분명해요.사회통합적 관점에서 볼때 앞으로 혹시 우파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기여입학제를 명시적으로 제도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봐요.
대학별 본고사를 실시하고자 하는 대학 내지 이를 실시할 수 있는 대학 또한 손꼽을 정도고 거의 대부분의 대학은 이에 크게 집착하지 않고 있어요.또 실제 일본을 제외하면 OECD국가중 대학별 고사를 치르는 나라는 없구요.

OECD 모든 나라가 학생 선발때 참고하는 학생평가는 고교성적이에요.과거의 두차례 경험을 바탕으로 평가할 때 우리의 경우 본고사는 사교육비 증가,양극화 심화를 가져올 개연성이 무척 크고 고교교육정상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거예요.

고교등급제의 경우 우리처럼 학교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차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자기모순이기도 합니다.

또 오늘과 같이 입시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고교등급제가 용인되는 경우 고교서열화가 촉진돼 우수고교로의 진학경쟁이 과열되고 사교육열풍이 더욱 무섭게 불어닥칠 것입니다.실제로 고교간 평균적 학력격차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격차를 개인의 학력격차로 환원한다는 것은, 더욱이 그것도 선배의 성적이 후배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죠.
더욱이 우리의 경우 학교간의 학력격차를 엄정하게 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요?
많은 이들은 3불은 시대에 맞지 않는 평등주의적 발상이라고 폄하합니다.그러나 그 보다는 현단계에서 우리 사회가 아직은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토양이 아니라는 대답이 오히려 바른 대답일 거예요.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때 상황변화에 따라 3불정책이 보다 유연하게 운영될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예컨데 특별전형제도가 보다 확대되면 그 연장선속에서 기여입학제가 좀 뒤지는 대학의 문을 통해 보다 그럴 듯한 외관을 갖추고 슬며시 자리잡을 수 있을지 몰라요.
고교등급제의 경우도 주요 대학들이 앞에 말한 입학사정관제를 장기간 정착시킨 뒤에 일정고교의 특정교육과정과 입학생들의 입학후의 성적 등의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도출하고 이에 근거해 고교간 차별화를 시도하는 경우 제한적으로 유사 고교등급제의 도입가능성은 있으리라고 봅니다.”

2008 입시안 전제는 ‘교육발전 협의회’와 ‘입학사정관제’
그러나 장관 퇴임후 협의회는 식물화되고 사정관제는 불발


-요즘 내신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어떻게 보십니까.

“요즘 논란이 되고 이는 2008 입시개혁안은 2004년 10월 내가 장관으로 있을 때 마련된 것입니다.그 기본취지는 고교교육의 중심축을 사교육시장에서 학교안으로 옮겨보자는 것이었어요. 이를 위해 수능비중을 상대적으로 줄이고 대신 내신비중을 높여보려는 것이었죠.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으나 당시 언론은 대체로 그 취지를 받아들이는 입장이었습니다.

나는 입시안을 발표하면서 이것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로서 두가지 제도의 도입을 제시했습니다.

그 하나는 ‘교육발전협의회’이고 또하나는 ‘입학사정관제’입니다.전자는 고교와 대학을 주축으로 학부모, 시민사회,언론, 그리고 교육부 인사가 참여하는 협의체로서 입시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대입시험이나 고교 교육과정과 연관해 양당사자인 대학과 고교가 서로 협의하는 기회가 전혀 없어요.그러다보니 자칫 공익을 외면하고 자신의 눈앞에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고교와 대학간에 대화의 통로가 없으면 우수학생의 선발에 일차적 관심이 큰 대학과 그 보다는 고교교육의 정상화에 집착하는 고교들 간에 이해관계가 어긋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고교 대학 학부모 등이 함께 모여 입시개혁안의 근본정신을 바탕으로 내신 수능 논술 등의 적정 비중이나 내신의 신뢰도 강화방안,논술의 출제수위,고교 교육과정의 정상화 등을 함꼐 고민하고 심도 있게 협의해 합리적인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어요.
여기서 아예 3불정책도 논의할 수 있겠죠.

말하자면 다수 당사자간의 사회적 협약을 통해서 공익에 걸맞는 합의안을 마련하고 개별 당사자의 일탈을 방지하자는 것이었습니다.또 이과정에서 교육인적자원부는 성의있는 조정자, 사회적 합의의 도출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 2004년말 20명으로 구성되는 교육발전 협의회를 출범시키고 구체적인 운영방안도 제시했습니다.내 생각으로는 이 협의회가 출범이후 2년이상 꾸준히 활동을 하면, 2007년도에 진입할 시점이면 2008입시개혁이 꽤 쓸모있는 준거틀로 정착할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장관직으로 물러난 후 교육발전 협의회는 이른바 식물화 과정을 밟았습니다.지난 2년간 교육부는 이협의체를 가동하지 않았습니다.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전 논술파동을 볼 때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입학사전관제도 불발이었어요.오늘 대부분의 대학은 양질의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스스로 연구하고 집중적이고 상시적인 노력을 경주하기 보다는 나라가 순위를 정해주면 관료적 절차를 거쳐 손쉽게 이들을 걷어갈 생각만 해왔어요.

적어도 우리나라의 주요대학은 이제 입학과정의 내실화와 고교 교육과정의 정상화를 위해 학생충원문제를 전업으로 연구하는 직제를 갖춰야 합니다.그런데 그 노력을 하기 보다는 편법만을 쫓아요.이처럼 2008입시개혁안이 전제했던 두가지 방안중 어느 것도 제도화되지 못했어요.

이제 교육인적자원부는 위계적 압력이나 제재라는 방식을 통해 대학을 강제할 생각을 버려야해요. 계속적 대화와 협의,그리고 여러 당사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협약을 통해 제도개혁의 결실을 추구해야할 것입니다.

사회적 파트너십의 형성과 사회협약의 체결은 실제로 중도개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중도통합 전략의 하나예요.노사정위원회도 그런 거죠.”

-특목고 문제도 쟁점 현안중의 하나인데요.

“우리사회의 다양한 교육욕구를 생각할 때 전체교육을 평준화의 틀로 묶어둘수는 없다고 봅니다.건강한 특목고 자사고는 당연히 필요하죠.그러나 현재 우리의 경우 외고 등 특목고나 자사고가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고 입시명문고로 기능하고 있고 이 학교 졸업생들이 대학측의 편법으로 다양하게 우대되고 있는 현실, 그리고 학부모들이 경쟁우위 유지를 위한 사교육비를 집중할 효과적인 투자경로로 이들 학교들을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오늘의 모습은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연관해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이들 학교의 적정비중,수와 학생수 등과 이들 학교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제도적 개혁방안 등에 관해 보다 치열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제목; 청와대,갈등 현장에 모습 드러내지 말아야

-요즘 대학과 교육부,청와대의 갈등이 불거져 있는데요.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있고 그것 자체가 보다 본질적인 문제해결의 단초가 된다면 유용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오늘 드러나는 이들간의 갈등은 앞서 말한 교육발전협의회가 일찍부터 제 구실을 했다면 얼마간 미리 예방할수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실존하는 제도를 활용하지 않은 것도 문제거니와 지나치게 잦은 장관교체,정책일관성의 결여 등도 갈등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교육인적자원부는 이제 지시자, 주재자가 아닌 조정자 조력자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야합니다.대학들도 눈앞의 이기심을 발동하기 보다는 공익과 한국교육의 미래에 대해 성찰해야합니다.

주요한 정책결정과정에서 부처는 청와대와 직간접적으로 협의를 하게 됩니다.그러나 청와대는 갈등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정치적 슬기를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트 중심교육이냐… 뒤진 계급에 대한 교육기회 제고냐…
어렵지만 둘 다 하는 게 옳아


-교육정책에 대한 제언을 하신다면.

“교육개혁을 위한 접근은 대체로 세 가지가 두드러집니다.본질주의적 접근이 있고 경제주의적 접근이 있습니다. 마지막이 평등주의적 접근입니다.

본질주의적 접근은 교육의 본령, 즉 그 본연의 목적을 강조하는 입장이죠.지적능력이나 학력신장 보다 오히려 인성 함양, 인격적 성숙이 더 강조되죠. 경제주의적 접근은 시장주의 관점에서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고 엘리트 교육에 역점을 두는 입장이에요.평등주의적 입장은 보다 대중적 관점에서 교육기회의 평등과 뒤진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그리고 교육을 통한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관점이고요.

많은 이들은 심정적으로는 본질주의적 접근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합니다.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수사적 차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정작 논란이 빚어지면 이념적으로 치우쳐 경제주의와 평등주의로 갈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나는 교육에 대한 세가지 관점 모두 중요한 사회적 가치며 그 어느것도 폄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교육개혁이 균형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다면 해답은 이들 세가지 가치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간의 적절한 조화와 조합의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교육단계마다 이들 세가치의 우선순위를 다르게 배열해 전체적으로 최상의 교육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 슬기로운 접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아 및 초등학교의 경우 본질주의적 접근을 우선으로,중고등학교 교육에서는 평등주의와 경제주의를 조화롭게 배합하는데 역점을 두고 대학교육에 와서는 경제주의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자는 것이죠.

중등과정를 예로 할때 아직도 자주 쟁점화되고 있는 고전적 주제가 이른바 고교평준화 문제예요.

경제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평준화 이후 우리 중등교육이 하향평준화됐다는 실증적 논거가 그리 뚜렷하지 않아요.평준화 해체라는 혁명적인 꿈은 일단 접는 것이 현명해요.그렇다면 평준화틀과 내용을 그대로 갖고 갈 것이냐.그렇진 않아요.

2004년 4월 출범한 EBS 수능방송 인터넷 서비스도 실제 경쟁력과 평등성을 함께 추구하는 프로그램입니다.그것은 나라가 앞장서서 수준별로 최고급의 수능과외를 실시함으로써 고교생들의 전반적 학력신장과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하려는 목적과 함께 교육소외지역의 학생들에게 서울 강남에 못지않은 교육기회를 제공하려는 교육격차 해소의 뜻이 함께 담겨 있어요.거듭 강조하지만 중등교육과정을 경제주의나 평등주의, 어느 한가지 접근법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따라서 양자의 장점을 보완할수 있는 실용주의적 방도를 강구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경제주의자는 엘리트 중심교육을 주창하고 평등주의자들은 뒤진계급의 교육기회 제고에 온 정성을 쏟습니다.그러면서 상대방의 입장은 반대하죠.그런데 답은 한가지입니다.어렵지만 두 가지 다 해야한다는 것이죠.영재도 세계적인 재목으로 키우고 조금 능력이 뒤지는 친구도 그 수준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정성껏 키워야 합니다.그렇게 되면 경쟁력도 키우고 사회통합도 달성할 수 있습니다.크게 멀리 보면 사회통합은 국가경쟁력의 가장 큰 원천이죠.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모든 학습자의 발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이것을 제일 잘하는 나라가 핀란드예요.이 나라는 영재교육도 열심히 하고 학습부진아 대책도 세계에서 가장 철저해요.추호의 인력유실을 허용하지 않죠.500만 조금 넘는 인구를 가진 아니라의 교육관은 나라 안에 모든 인력이 사회에서 제몫을 최대한으로 발휘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그러다보니 아니라의 교육성과는 실로 괄목할 정도예요.OECD의 국제교육 비교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교 1년생의 학업성취수준이 세계 1위죠.이 나라의 대표적 글로벌 기업인 노키아가 세계에서 가장 큰 디지털 휴대전화 제조회사로 성장한 이유도 바로 이나라 교육에서 찾을수 있을 것입니다.”

일 하면서 외로울 때 많았다
장관때 생각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


-2008입시안을 놓고 청와대와 갈등이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꽤 고집을 부리셨던 것 같습니다. 그간 장관을 하시면서 정책환경속에 있는 다른 엑터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조정, 관리하셨습니까. 학자이시기 때문에 쉽지 않으셨을 듯 한데요.

“정책형성과정에서 대통령의 신임과 정책적 지원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대통령의 인격적 연장인 청와대 스탭진의 지원도 무척 중요한게 사실입니다.나는 명색이 정치학자이고 세상돌아가는데 둔감하지 않아 정치적 감수성은 별로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역동적으로 변하는 정책환경이나 정책과정에 대한 인지능력이나 대통령, 청와대, 국회 언론 등 다양한 정치적 액터들에게 어떻게 접근해 어떤 식으로 설득하느게 효율적인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도 제법 할줄안다고 자부합니다.그러나 정책성공을 위해 전통적 스타일의 정치관리기술을 구사하는데는 능숙하지 못해요.특히 지연 학연과 같은 다양한 연고나 인연을 동원한다든가 골프모임이나 술자리 등을 해 친숙한 관계를 형성하는 전통적 정치기술은 낙제점에 속합니다. 인적 정서적 접근은 삼가는 편이었는데,그 때문에 일하면서 외로울 때가 많았죠.장관직은 저에게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게 할 정도로 힘겨운 멍애였습니다.그 때 생각하면 요즈음 저는 천국을 거닐고 있지요.”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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