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평등, 그리고 행정 : 한국행정 연구를 위한 이론적ㆍ경험적 함의를 찾아서
『한국행정학보』(한국행정학회, 제 41권 제3호, 2007 가을) 1-40면 수록
안병영, 정무권
I. 머리말
산업화 40년, 민주화 20년, 최근 여러 학계에서는 그동안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적 공과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자신의 영역의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영역으로서 관료제와 행정의 역할이 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관료제와 행정의 역할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와 심층적인 연구는 매우 부족했다. 그런데 최근 신자유주의의 무차별 수용과정에서 시장을 과도하게 찬양하며 관료제와 행정을 모든 문제의 원인인양 비난의 대상으로 돌리면서, 행정학의 위상과 정체성을 흔들어 놓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행정학계는 기술관리적 수준의 미시적 연구주제에 천착하면서, 거시적, 철학적, 이론적 논의에는 등한히 해왔다. 때문에 최근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에 있으면서도 관료제와 행정의 역할에 대한 행정학계의 비젼제시가 크게 부족한 형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행정연구에서 민주주의, 평등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가치와 관료제와 행정이 상호 어떻게 연계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역으로 관료제와 행정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을 재해석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의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본 논문은 일종의 문제제기의 수준에서 민주주의, 평등, 행정의 상호관계를 역사적, 비교론적으로 검토하고, 이어 이에 대한 주요 이론적 이슈를 정리한 후, 한국행정의 역사적 맥락에서 그 의미를 재해석해본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행정 연구에서 다루어져야할 주요 연구과제들을 제기해본다.
II. 민주주의, 평등, 행정: 상호작용의 역사적 전개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이념과 연관하여 관료제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려면 근대국가의 뿌리인 절대국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현대국가의 발전과정은 크게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체제의 발전과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발전의 상호작용으로서 마침내 오늘의 복지국가의 단계로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관료제는 현대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를 관리하는 중추적 조직체로 성장하게 된다. 이 절에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역사적 단계를 구별한 후, 민주주의와 평등의 맥락에서 관료제의 성장과 각 단계에서의 기능들을 정리해 본다.
1. 국민국가의 형성
대체로 서구 관료제는 중앙집권적 절대국가의 등장과 함께 급속히 발전하였다. 중상주의 정책을 표방했던 절대국가는 국가형성, 국민형성의 주역으로서 경제발전의 초석을 쌓는다. 그러나 절대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관료제화 경향은 반전(反轉)되지 않는다. 관료제는 베버가 설명했듯이, 자본주의 발전과 민주주의 성장에 따라 복잡해지는 현대사회를 관리하는 핵심적 조직체로서 그 기능을 의연히 수행하기 때문이다(Weber, 1958).
절대주의 관료제는 18세기 초 프러시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하는데, 공직과 연관되는 각종 법규의 제정, 임용시험체계, 전문성의 신장 등이 이 때 이루어진다. 나폴레온에 의한 <法典化>(codification)도 관료제 발전에 기여했다. 이러한 현상은 베버가 말하는 합리화과정의 진전으로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장기간 새로운 실적주의와 낡은 정실주의가 공존한다.
토크빌의 지적대로, 정부형태는 봉건주의에서 절대주의로,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로 전개하였으나, 관료제는 계속 발전을 거듭하며, 국민들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 관여하게 된다(Etzioni-Halevy, 1983: 109). 대부분의 서구 국가의 경우, 관료제와 민주주의는 거의 동시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관료제가 보다 강력해 짐에 따라 민주주의 제도도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게 통설이다. 19세기 서구를 풍미한 자유방임주의 사조는 국가관료제의 시장개입에 제한을 가했지만, 이 시기에도 관료제의 확산은 멈추지 않았다. 자코비는 이를 ‘역사의 아이러니’라 칭한다(Jacobi, 1973: 55). 경제발전과 조세제도, 민족국가의 대두, 그리고 민주주의의 성장은 대체로 관료제의 빠른 확산에 기여한다(Etzioni-Halevy, 1983 116-127).
2. 민주주의의 성장
19세기 중반이후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민주화와 산업화가 크게 진전된다. 의회제도의 성숙, 참정권의 확대, 대중정당의 대두 등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일찍이 의회민주주의의 꽃을 핀 영국은 입법국가화를 통해, 전형적인 3권분립 체제인 미국의 경우에는 ‘잭손니안 민주주의’의 인사엽관제를 통해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시도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부장적, 관료국가 전통이 강한 독일 등 유럽 대륙국가들은 대체로 법치국가 내지 법치행정을 통해 관료제에 대한 통제를 가하나, 관료제의 제한적 특권성은 그대로 유지된다(박동서, 1999: 16-20).
서구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발전은 복잡한 상호관계를 함축한다. 양자는 때로는 상보적인 관계를, 때로는 갈등관계를 시현하였다. 그러나 주요 국가의 경우, 국가관료제는 시간과 더불어 민주주의의 진전 속에서 합법적, 합리적인 베버리안 관료제의 특성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밟는다. 19세기 후반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이 부각됨에 따라, 노사 및 계급갈등, 빈부격차 등 사회. 경제문제가 크게 부각된다. 이에 정부관료제는 자원과 계급이익의 재배분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이러한 정부관료제의 역할 변화는 정치체제의 민주화, 그리고 이에 따른 시민들의 정치참여의 증진과 평등관의 확산에 따라 가속화된다.
3. 복지국가의 전개
20세기에 진입한 이후 국가관료제의 확대와 성장은 국가의 경제개입의 증대에서 비롯된 바 크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와 복지관련 공공서비스의 확대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관료제의 발전은 복지국가화 과정과 밀접히 연관된다. 1930년대의 극심한 경제공황과 대량실업, 민주주의의 붕괴와 파시즘의 대두, 그리고 처절한 제2차 세계대전 등 암울한 시기에도 복지국가로의 역사적 도정은 계속되었다.
전후 서구세계는 케인지안 정치경제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복지국가의 황금기’(1950년대-1970년대 초반)를 구가하며 이른바 ‘복지자본주의’(welfare capitalism)를 제도화한다. 관료제는 크게 팽창하고 국가예산은 급증한다. 이 시기동안 유럽의 주요국가에서는 중도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내지 노동당)이 크게 부상하여 많은 나라에서 국정의 주도적 책임을 지면서 폭 넒은 사회복지 정책을 시행한다. 복지국가의 진전은 사회권의 확립, 노-사-정 간의 사회협약체제인 조합주의(corporatism)의 제도화를 가져 왔고, 사회계급 간 간격을 줄여 불평등의 감소와 계급갈등의 완화, 계급 간 연대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마샬(T.H. Marshall)은 영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300년간에 걸친 근대화 과정을 시민권의 확장으로 이해한다(Mashall, 1950). 그에 따르면, 서구사회는 18세기에 공민권, 19세기의 정치권, 그리고 20세기의 사회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복지국가는 바로 이러한 3세기에 걸쳐 ‘누적적’으로 진척된 시민권의 확장의 산물인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서구 여러 나라들은 평균적으로 GDP의 약 1/4을 공공사회복지에 지출했다. 전후 복지자본주의는 바야흐로 공고화ㆍ성숙화의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복지지출로 인해 조세부담이 급증하는 가운데 국가재정은 만성적인 적자의 늪에 빠진다. 특히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오일쇼크가 찾아들면서 서구 복지국가는 재정적 위기 국면에 몰린다. 재정 및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복지국가의 위기는 정치적, 이념적 위기를 겪었고, 특히 1980년대 이후 세계화의 격류와 후기산업주의의 진전, 그리고 저출산ㆍ고령화 등 인구론적 요인과 맞물리면서 더욱 가속화된다.
기존의 케인지안 정치경제 패러다임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이후 서구경제의 저성장과 고실업의 원인을 과도한 복지국가화와 이로 인한 공공부문의 확대에서 찾는다. 따라서 그 해법으로 민영화, 정부규제와 완화, 그리고 복지재정의 삭감을 요구한다. 그런가 하면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국가수준의 거버넌스는 약화되고, 그 대신 국제수준 및 지방수준의 거버넌스가 강화되고 있다. 또한 이들 흐름과 궤를 같이 하여 ‘신공공관리론’(NPM)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이는 공공관료제에 대한 철저한 회의에서 출발하여 효율과 경쟁, 기업주의와 고객정향 등을 강조하며, 공적 영역의 지속적 감소와 공적 기능의 사적 영역으로의 이관을 주장한다. 신공공관리론은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관료제 개혁의 지배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제반 흐름 속에서 기존의 사회권, 국민적 연대, 사회적 평등의 이념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그러나 이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복지국가 위기에 대한 대응과 재편과정을 살펴보면, 복지국가가 축소지향적으로 수렴하기 보다는 다원적 경로를 취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대륙국가, 특히 개인이나 집단의 자유보다 집합적 이익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적 전통(republican tradition)을 가진 나라들은 공익의 관점에서 복지관료제의 감축에 대해 유보적이다(Suleiman, 2003: Ch.7).
1990년대 중반 이후 서구 복지국가의 재편 패러다임으로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영국의 토니 불레어 노동당 정부의 ‘제 3의 길’ 노선이 천명된 이후 서구 세계에 넓게 확산된 새 사회정책 사조로서, 탈규제 위주의 신자유주의와 평등 추구의 전후 복지국가(舊 사민주의) 간의 ‘제 3의 길’로 이해된다. 사회투자국가 개념은 사회지출을 낭비와 의존의 원천이 아니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인적자본에의 투자로 인식하고,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선순환구조를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관료제의 감축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국가재편과는 맥을 달리 한다.
4. 한국적 맥락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서구세계를 예로 할 때, 국가관료제는 국가형성 및 국민형성, 산업화, 민주화, 복지화의 주역으로서 체제 발전을 견인했다. 민주주의와 평등의 맥락에서 볼 때, 관료제는 18, 19세기까지는 주로 민주주의와,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평등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었다. 이렇게 볼 때, 서구 관료제는 민주화의 동력을 바탕으로 복지국가의 도정을 밟았고, 최근 그 조정과정에 처해 있다 하겠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그간의 오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서구 관료제는 민주주의를 일정 정도 이상 내면화했고, 그런 의미에서 이들 나라들은 확립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나라의 경우, 정치적 민주주의와 행정민주주의간의 수위 격차가 적다. 그러한 점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추구의 고단한 역사 없이 베버리안 관료제를 구축한 동북아의 발전국가와 차이가 난다.
반면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후발 산업화 국가는 산업화, 민주화, 복지화의 맥락에서 볼 때 모든 측면에서 후발국가들이다. 이들 후발 산업화 국가들은 산업화, 민주화, 복지화가 장기적,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서구화 달리 시간적으로 매우 압축적, 역동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은 단계적으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하나하나 내면화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 서구 선진국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경험했던 제반 문제들을 한꺼번에 대면하고 동시에 해결해야 했다. 때문에 발전의 단계도 압축적, 중첩적으로 전개되었고, 가치의 내면화, 제도화 수준도 낮거나 미완(未完)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구 선진국과는 발전의 시간(timing)과 경로(pathway)에서 다른 맥락을 가졌다.
일본은 서구보다는 늦었지만, 동아시아 국가 제2차 세계대전이후 국가관료제를 주축으로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이후 일본의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유형을 본받은 한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 NICs 국가들은 국가관료제와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주의 간에 새로운 유형을 창출했다. 이들 나라들, 특히 한국의 경우를 보면, 사회적 이해관계와 압력으로부터 차단된 유능하고 자율적인 경제관료제를 주축으로 금융부문의 엄격한 통제, 산업화과정의 전략적 기획과 조정 등을 통하여 급속한 산업화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한국형 베버리안 관료제의 성공의 배후에는 그것을 비호하고 강력히 지원했던 고도로 권위주의적인 유신체제가 있었다. 그 결과 권위주의적 지배체제, 국가-기업 유착, 부패 및 반노동. 반분배 이데올로기, 시민사회의 약화 등은 이후 한국 발전국가의 제도적 유산으로 남는다. 한국형 발전관료제는 경이적 경제발전으로 신화를 남겼으나, 민주화, 평등화의 맥락에서는 치유하기 어려운 엄청난 결손을 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국가형성 및 산업화과정에서 형성된 강력하고 유능한 베버리안 관료제는 훗날 안정된 민주화의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Suleiman, 2003: 316). 이후 한국의 발전국가는 민주주의로의 이행과정 속에서 반노동, 반분배 이데올로기를 점진적으로 수정하면서, 뒤늦게 복지국가의 길로 다가선다. 이러한 압축적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제반 문제들의 정확한 이해와 바른 인식이 오늘날 급격한 환경변화에따른 대응양식을 선택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복지국가 위기에 대한 서구 여러 나라의 제도적, 정책적 대응 방식은 나라마다 사회문화적 유산, 정치제도의 특징, 복지제도 전개의 경로 등에 따라 비교적 다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민주화 후발국으로 뒤늦게 복지화의 길로 들어섰다가, 세계화, 후기산업화의 태풍을 맞은 한국 등 발전국가에 비해 형편은 훨씬 낳은 쪽이다. 서구의 경우도 많은 나라가 오늘날 시대정신 인양 엄습하는 신자유주의 ‘신공공관리론’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보편적 혁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체로 유럽의 선진국가들은 성숙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평등의 이념을 체제내적 가치로 내면화한 이후에 신자유주의의 태풍을 맞았기 때문에, 대체로 NPM을 선별적,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여유가 있고, 시장의 역동성을 중시하나 사회정의와 평등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 나라는 복지관료제를 해체, 감축하기 보다는 얼마간의 재편 내지 재조정 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서구와 같은 점진적 역사적 과정이 없었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격류 속에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동시에 이룩해야 하는 한국의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시대적 과제가 된다.
III. 이론적 검토
1. 지적 기원으로서의 베버와 마르크스
민주주의, 평등, 그리고 국가관료제와 연관하여 이론적으로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는 베버와 마르크스이다. 두 사람은 다 같이 근대산업사회의 태동과 그 전개과정을 목도했고, 관료제의 전개와 연관하여 미래사회에 대한 통찰력 있는 조망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해 대조적인 관점과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현대지성사 속에 두개의 가장 괄목할 만한 물줄기를 형성한 학자들이다.
베버는 이념적으로 자유주의적, 엘리트주의적 관점에 서 있던 학자이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주지되듯이 체제변혁을 추구했던 프로레타리안 사회주의적 입장의 사상가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념적 관점의 차이는 관료제에 대한 이들의 이해와 관심, 그리고 그 극복과 연관되는 모든 사유과정을 관통한다 하겠다. 이 글의 주제와 연관할 때, 베버는 보다 민주주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데 비해, 마르크스는 평등의 문제에 천착했다.
대체로 베버는 <근대화>라는 역사적, 거시적 과정 속에서 관료제를 조망한데 비해, 마르크스는 <계급지배>와 <계급갈등>이라는 폭넓은 이론의 틀과 세계사적 전개과정 속에서 관료제를 설명하고 있다(안병영, 1994: 8). 이들은 비록 관점은 다를지언정 관료제를 역사적ㆍ거시적 과정 속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을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관료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베버는 다분히 정치사회학적 접근과 조직사회학적 접근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마르크스는 다분히 정치경제학적 접근으로 일관하고 있다(Beetham, 1987: 57-87).
주지되듯이 베버는 관료제 이론의 초석을 마련한 학자이다. 그는 관료제의 <합리성>에 크게 천착했으나, 그에 못지않게 관료권의 팽대와 여기서 비롯되는 <관료제의 자율성>(autonomy of bureaucracy)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의 관료제의 이념형은 이후 적지 않은 논쟁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러한 논박과정에서 다양한 모습의 현대적 탈관료제이론의 생성ㆍ발전한다. 따라서 다소 역설적이기는 하나, 베버 이후 관료제 내지 탈관료제 이론의 대부분은 지적으로 베버의 극복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사실이다(안병영, 1994: 9).
한편 마르크스가 관료제를 분석하는 관점은 한마디로 노동계급의 관점이며, 그의 주된 관심은 자본주의적 생산체계 내에서의 노동계급의 종속의 관점이다. 이 종속은 일차적으로 자본자체에 대한 종속이며, 이차적으로 국가관료제 또는 기업의 특정 행정구조에 대한 종속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마르크스는 관료제의 극복을 후(後)계급사회에서 행정구조를 재구조화하는데서 찾는다.
베버가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는 단연 자유이다. 이와 더불어 그는 사회적으로 창조적 역할을 하는 걸출한 예외적 개인의 활동영역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유민주주의 맥락에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자이며 엘리트주의자이다. 그는 보통선거의 확대와 정당정치의 출현은 합리적 관료제의 성장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근대 관료제의 성장과 관료권의 팽대로 인해 이들 귀중한 가치들이 위협당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에 대한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딜레마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관료제는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버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의 문제가 자유민주주의와 관료제 통제만으로 해결되기 어렵고 경제민주화도 필요하다는 것을 경시하였다.
베버가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자라면, 마르크스는 궁극적으로 <계급 없는 사회>를 표방함으로써 평등을 중심가치로 앞세웠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평등의 실현이 인간자유의 궁극적 조건으로 보았다. 그는 자유주의적 정치교리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자유’시장만을 옹호함으로써 자유를 소수자에게 효과적으로 한정시키고 있다고 비난하며, “평등에 중심을 두는 자유개념만이, 모든 사람의 평등한 자유를 구상하는 자유개념만이, 자기 역사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힘을 인간에게 회복시켜 줄 수 있다”(Held, 1996: 122)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에 있어 자유는 궁극적으로 평등사회의 구현, 즉 사회계급의 붕괴와 이에 따른 모든 형태의 계급권력의 페기에 의해 확립될 수 있는 사회가치이다. 그는 산업사회에서의 <소외>의 연원을 사적 소유, 분업화 및 인간노동의 상품화 등에서 찾았으므로 결국 이 쟁점은 자본주의체제의 극복이라는 본질적 문제로 환원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베버가 강조한 관료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간과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였다.
두 사람의 민주주의관을 살펴보자. 흔히 “절망에 빠진 자유주의자”(Mommsen, 1970: 95ff)로 지칭되는 베버는 개인적 자유의 수호를 보장하는 정치체제를 추구하였고, 그 모습은 의회제 정부와 경쟁적 정당체제, 그리고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이다. 현대 민주주의이론 중, 경쟁적 엘리트주의(competitive elitism)와 다원주의(pluralism) 사조 속에 베버의 사상이 가장 깊숙이 스며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마르크스는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내세우는 자유는 자본주의적 생산체계 속에서 소수자만이 향유하는 자유이며, 참된 자유는 사회계급의 붕괴,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형태의 계급권력의 폐기와 더불어서만 확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정치의 종언> 내지 <국가폐기>에 언급할 때, 1871년 <파리콤뮨>의 직접민주주의 모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천착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 된다. 마르크스의 생산양식 및 사회구성체에 관한 기본이론과 국가관은 훗날 네오 마르크시스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마르크스의 소외론과 직접민주주의론 등은 참여민주주의 이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다음의 <표 1>은 베버와 마르크스 사상 및 이론의 핵심들을 정리ㆍ비교해 본다.
<표 1> 베버와 마르크스의 사상 및 이론의 비교
관 점 |
자유주의적/엘리트주의적 |
프로레타리안 사회주의적 |
접근방법 |
역사사회학 정치사회학+조직사회학 |
역사사회학 정치경제학 |
중시하는 가치 |
개인적 자유/예외적 개인의 창의성 제고 |
평등/소외의 극복 |
민주주의관 |
경쟁적 엘리트민주주의 및 다원적 민주주의에 큰 영향 |
직접민주주의적 성격 네오마르크시즘의 원류/ 참여민주주의에 큰 영향 |
관료제 |
관료제 이념형 제시 |
이차적 관심-국가개념에 집착 |
관료제화 요인 |
多요인 모형 거시적 요인+조직내적 요인 |
자본주의적 생산체계 |
관료제의 자율성 |
관료의 조직성과 조직적 능력(위임자로부터 유리) |
관료제의 계급수단적 성격 (위임자로부터 유리) |
관료제화 방식 |
상쇄권력의 형성/정치적 리더십에 기대 |
혁명적 체제변혁/직접 민주주의/생산력의 증강 |
사회주의관 |
관료독재창출/사회주의 환상 엄중경고 |
탈관료제화의 기본조건 |
안병영. 1994. “현대행정조직의 탈관료제화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논집』25권, p.14.
2. 주요 개념과 이론의 정리
민주주의와 평등만큼 그 개념과 이론을 한 몫에 명쾌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것도 드믈 것이다. 이 두 개념은 인간사회의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 이론가들에 의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념과 이론들이 새롭게 정의되고 상호 논쟁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평등의 개념과 이론들은 역사성을 가지면서 몇 가지 중요한 흐름으로 개념화, 유형화, 이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여기서는 민주주의와 평등에 관한 주요 개념들과 이론들을 정리해 봄으로써 한국에서의 행정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 본다.
1) 민주주의의 개념과 유형
(1) 보호민주주의와 발전민주주의
그리스 아테네 도시국가에서 인류의 민주주의가 싹튼 후 민주주의 역사는 인류문명의 역사와 함께한다. 도시국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거대 로마를 통치하기 위한 공화정으로 진화한다. 비록 황제의 시대를 거쳐 중세 기독교의 암흑시대를 맞이하지만, 민주주의는 르네상스와 함께 다시 부활한다. 그 후 민주주의는 절대국가라는 국민국가형성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다양한 모델을 형성하면서 오늘날 까지 발전해 왔다.
민주주의는 그 역사적 진화과정에서 몇 가지 흐름으로 계보를 가지고 발전한다. 일단의 민주주의 이론가들(MacPherson, 1977;Held, 1996)은 근대국가 이후의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보호민주주의’(protective democracy)와 ‘발전민주주의’(developmental democracy)로 나누어 설명한다. 록크 등 초기 자유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보호민주주의 개념에 따르면, 정부활동의 기본원칙은 권력의 남용으로부터 시민적 권리와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와 경제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하면서 국가의 경제개입의 최소화와 재산권 및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평등보다는 자유를 우선으로 하는 소극적 자유민주의의 모형이 되었다. 보호민주주의의 지적 전통은 밀(James Mll), 공리주의적 지적 전통을 거쳐 베버에 이어지고 이후 엘리트 민주주의와 최근의 신자유주의의 지적 연원이 된다.
반면에 발전민주주의는 그 기원이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서 시작하여, 근대에 와서는 룻소와 밀(John Stuart Mill)에 지적 기반을 두는데,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시민의 기본권 보호수준에서 더 나아가 개개 시민의 정치생활에의 참여를 강조함으로써 실질적인 정치적 평등이 보장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민주주의 모형은 이후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강조하는 참여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개념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후 자유주의에서는 공동체적 참여를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개량주의인 사회민주주의와 결합하면서 유럽의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민주적 전통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해서 다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며, 국가별로 민주주의 발전의 지적 기원과 진화과정에 따라 민주주의의 이념과 운영방식, 그리고 추구하는 목적은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2)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참여, 사회) 민주주의
현대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우선 최근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눈다. 또 어떤 이들은 전자를 정치적 민주주의, 후자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지칭하기도 한다. 저마다 의미내용에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형식적, 정치적 민주주의(혹은 민주화)는 시민적 자유가 보장되는 가운데 다원적, 경쟁적 정치구도가 제도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실질적 또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참여와 분배라는 관점에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계층이나, 집단에게 실질적 몫이 돌아가는 변화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다(Schmitter, et al. 1986, 안병영, 1994 b: 54-55, Przeworski et al., 1996: 50).
가. 형식적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제도적 조건, 즉 보통선거권의 확보, 정기적 선거의 실시, 복수정당의 존재로 인한 상호 경쟁, 권력분립, 언론 및 집회결사의 자유 등의 제도들이 정착되어 시민들의 정치적 시민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수준을 의미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보호민주주의 시각에서의 민주주의 제도화를 의미하며, 엘리트 민주주의, 다원주의 시각에서 주장하는 기본적 민주주의 수준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절차적 차원에서의 개인의 권리보호와 기회의 균등, 그리고 합리성을 강조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갖는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형식과 절차가 공정하면, 결과에 관계없이 기본적 개인의 권리가 보호되는 것이고 선택의 자유가 극대화 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작동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나.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
참여민주주의는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루소의 민주주의론을 기원으로 자기발전을 위한 평등한 권리를 강조하며, 작업장과 지역공동체를 포함하는 사회의 핵심제도를 규제하는데 시민이 직접 참여할 것을 주창한다(Held, 1997). 참여는 일상의 바탕위에서 실행되며, 여러 양태로, 즉 정책의지지 혹은 반대를 통해 혹은, 다양한 조직을 통해, 한때 중앙정부의 배타적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기능과 역할에 관여, 점유하면서 실천된다.
참여민주주의는 선거철 민주주의가 아닌 ‘상시민주주의(full-time democracy)', 또는 생활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조직내 민주주의와 탈관료제화에 많은 관심을 표명한다. 참여민주주의를 주창하는 패트맨(Pateman, 1970), 바하라하(Bachrach, 1970), 아브라함손(Abrahamsson, 1977) 등은 흔히 자유주의 전통 내에서 급진 민주주의 이론가로 분류된다(안병영, 1994b: 23-24).
따라서 참여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위임된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통치되는 엘리트 민주주의와 대비된다. 슘페터, 헌팅톤, 알몬드/버바 등 보호민주주의의 맥을 잇는 주류 정치학자들은 민주정치과정에서 직접민주주의는 일반 대중의 우민화와 파시즘을 우려하면서 ’참여의 환상‘을 강력히 경고했다.
다. 사회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적 참여의 결과 시민들에게 정치적 실질적인 정치적 참여를 보장한 결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수준 또는 단계를 의미한다. 즉 민주주의가 정치적 차원의 기본권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보편적 사회적 위험들을 보장하고, 일정 수준의 평등이 보장됨으로서, 더욱 보편적으로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복지국가가 지향하는 이념이 되고 있다. 이와 연관하여 경제민주주의는 경제적 소유권의 분산 및 공유, 또는 경제활동 즉 기업의 운영 및 투자결정에 있어서도 구성원들이 참여와 민주주의 원칙이 이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3) 글로벌 시대와 민주주의
가. 글로벌 민주주의
지금까지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논의는 국민국가 틀 안에서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제도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민주주의 원칙과 제도화가 글로벌 수준으로 옮아가기 시작한다. 헬드에 따르면, 오늘의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경제로부터 정치에 이르는 상호 연계된 모든 권력체계의 책임성이 보장될 때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하며, 이를 위하여 “국민국가와 초국적 기관 및 조직 등을 두루 포함하는 확대된 민주적 제도와 절차의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Held, 1995). 따라서 민주화를 위한 노력은 글로벌 차원-지역공동체차원-국가차원-시민사회차원-지방차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앞의 글로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글로벌 수준으로의 확산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글로벌 시대에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나? 글로벌 민주주의가 글로벌 시대의 국가단위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면,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시대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서 민주주의의 축소를 의미한다. 신자유주의는 헬드의 민주주의 모형에 따르면, 개인의 재산권 및 민주적 권리의 기본적 보장을 통해 시장의 영역의 확대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보호적 민주주의와 친화성을 갖는다. 그동안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이룩해 논 참여민주주의나 사회적 민주주의 보다는 시장의 효율성을 위해 공적 영역이 축소되고 민주성, 형평성이 폄화되며, 참여를 통한 시민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대신에 시장의 실패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역할을 강조하며,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강조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서구 선진민주복지국가들의 복지국가 위기와 경제의 글로벌화가 심화되면서 세계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경제 사조로서 등장한다.
다. 참여와 분권화
민주주의의 핵심개념으로 흔히 논의되는 것이 참여(participation)와 분권화(decentralization)이다. 대체로 자유는 참여를 유발하고, 참여는 평등의 계기를 만든다. 따라서 참여를 중심으로 형식적ㆍ정치적 민주주의와 실질적ㆍ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만나며, 참여를 매개로 민주주의와 평등도 가능하다.
패트맨은 참여의 개념을 ‘완전참여’(full participation), ‘부분참여’(partial participation), 그리고 ‘의사참여’(擬似, pseudo-participation)로 나눈다. 완전참여는 평등한 의사결정권자로 구성되는 집단에 의해 집단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이러한 형태의 의사결정의 경우는 사실상 모두가 관리자의 구실을 하기 때문에 관리자와 피용자간의 구별이 없어진다. 부분참여는 관리층이 최종적인 결정권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반 성원들에게 조직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의 행사를 허용하는 경우이다. 이에 비해 의사참여는 기존의 권한구조를 실질적으로 변화하지 않고 참여감만 부여하는 다양한 형태의 관리기법을 말한다. 대체로 관리층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을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상징적, 조작적 관리기법이 이에 해당된다.
분권화(decentalization)는 의사결정권한이 하위 단위에, 그리고 가능한 한 서비스 현장에 가깝게 위양되는 과정을 말한다. 분권화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와 연관되는 것으로 인식되나, 선진 민주주의 국가 중에는 프랑스처럼 나폴레옹이 다져 놓은 중앙집권적 관료체제가 이후 왕정복귀, 제3제국 시기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 까지 연면히 이어지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서구의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서서히,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상이한 정도로 분권화를 제도화하였다. 분권화는 지방자치의 맥락에서 볼 때, 지방정부가 실질적 차원에서 얼마나 정치적 권한과 재정적 자율성의 확보했느냐가 중요하다. 한편 조직내적 맥락에서 볼 때, 분권적 조직은 계층수가 줄어들고, 통솔범위가 넓어지며, 상향적 의사소통 통로가 열리는 조직론적 특징을 가진다.
2) 평등의 개념과 종류
민주주의와 더불어 인류에게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어 왔던 평등은 오랜 세월동안 고민되어왔던 대상이었다. 평등에 대한 개념화와 논의는 민주주의 개념과 같이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에서부터 시작 된다. 그는 분배적 정의와 연관하여 수량적 평등(numerical equality)과 비례적 평등(proportional equality)으로 나눴다. 전자는 모든 이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 즉 모두에게 같은 몫을 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후자는 비슷한 사람들을 같이 취급하는 것, 즉 개인의 장점에 따라 대우하는 것이다. 편의상 전자를 평등으로, 후자를 형평으로 개념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평등 내지 불평등의 본질적 의미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리고 평등은 철학적인 개념이면서도 정치적 원칙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Callinicos, 2000). 따라서 평등의 개념은 무엇이 정의(justice)인가와 긴밀하게 연계되는 것이다. 결국 “무엇에 대한 평등이냐(equality of what)”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많은 철학가, 이론가, 정치가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Sen, 1992).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평등보다는 자유를 더욱 강조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가 정치적 참여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에 배치되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평등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앞에서 논의한 루소에 의해 발전된 민주주의에서 평등의 강조화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평등을 강조하는 시각들이 나오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평등의 개념을 ‘결과의 평등(equality of results)’과 ‘과정의 평등(equality of process)’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급진적 좌파이론들은 평등의 개념을 결과의 평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반해, 자유주의 이론들은 평등의 개념을 기회의 균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전자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억압적 체제 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추구하기 어렵고, 후자는 실질적 평등화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형식적 제도화에 그치기 때문에 미흡하다. 복지국가가 지향하는 평등은 적어도 기회균등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평등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정치문화에 따라 또 다르게 인식된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의 경우, 그것은 대체로 개인적 능력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가난한자는 흔히 ‘실패자(the loser)’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집합주의적 성향이 강한 유럽인들은 이를 계급적 맥락에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며, 따라서 자원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배분되었는지에 관심을 표명한다.
어쨌든 평등은 대체로 모든 사람이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똑같이 지니고 있다는 신념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으로 경제적 영역에서 요구되는 평등은 사회적 계급의 분화를 야기시키는 심대한 소득격차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니는 평등의 개념을 단순한 계급논의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평등은 정당한 인간관계의 길을 인도한다. 평등은 동료애의 기반을 형성한다.”는 입장이 그것이다(Tawney, 1970: 15). 이러한 격차의 해소, 연대(solidarity)를 강조하면서 자유를 극대화 하는 것이 현대 복지국가의 평등의 개념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에스핑-안데르센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압력 속에서 복지국가의 딜레마를 설명하면서 “오늘날 복지국가는 다수의 평등주의적 긴장에 직면하고 있다. 그 하나 측면은 평등과 형평 간에 균형을 잡는 일이다. 다른 측면인 즉, 평등주의와 완전고용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의 문제다. 오늘날 자본주의 현실에 있어서 두 경우 다 둘 중에 하나는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어떤 종류의 평등을 희생해야 할지 아무런 지침도 신화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Esping-Andersen 1999: 10-11).
오늘 날 우리에게 두 가지 경쟁적인 선택지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 하나는 ‘파레토’ 원칙(Paretian principle)이고 다른 하나는 ‘롤스’ 원칙(Rawlsian principle)이다. 여기서 파레토 원칙은 어떤 이가 현상유지(status quo) 상황의 어떤 변화로부터 이득을 얻는다면, 그로부터 어떤 이도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롤스의 원칙은 현상유지의 어떤 변화는 마땅히 가장 형편이 나쁜 사람에게 최대의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파레토 원칙은 ‘형평’에 가깝고, 롤스의 원칙은 ‘평등’에 더 가깝다. 전자는 자유주의적이고, 후자는 사민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극빈자가 계속해서 굶주린 가운데 백만장자가 몇 배를 더 벌어도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따라서 그 방식으로는 후기산업사회의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에 대처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윈-윈’ 전략은 당연히 롤스의 원칙 쪽으로 기울어진다 하겠다(Esping-Andersen, 1999: 168)
세계화, 후기산업화, 그리고 인구론적 변화가 빚어내는 위험구조 속에서, 어느 나라에나 저숙련노동자, 청년, 노인, 그리고 홀부모 가족 등 고위험 집단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사회적 배재 내지 열패자 범주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하층계급 혹은 사회내의 이른바 ‘B 팀’으로 전락한 이들은 자칫 그 함정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투자국가론자들은 복지국가 미래에 새로운 지평을 선보이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사회투자는 급여와 권리에 초점을 둔 재분배적이고 소비적인 사회복지를 넘어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 인간의 참여능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전이를 꾀한다.” 따라서 사회투자론은 결과의 평등 내지 소득의 재분배로부터 기회의 평등 내지 생애기회의 평등으로의 전이를 추구하며, 따라서 ‘기회’와 ‘능력’의 분배 및 재분배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강조하는 능력은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위험들, 예컨대 저숙련이나 저지식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며, 바로 이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사회복지국가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유형의 안전(security)라는 것이다. 사회투자국가는 이념적으로 사민주의적 성향을 지니나, 이른바 ‘정치적 자유주의자’인 롤스의 사회정의론의 핵심원리인 ‘최소극대화’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사회적 최약자의 복지 내지 사회적 배재의 방지에 우선권이 주어지는 입장이다. 그런가 하면, 고전적 복지국가에서 시민들의 배타적 권리로 인식되었던 복지권이 재해석되어 권리 못지않게 시민들의 의무를 강조하게 되었다.
3. 관료제(행정)와 민주주의
1) 관료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제 이론들
관료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적 논쟁을 신우파, 다원주의, 기술관료학파, 참여민주주의자, 마르크스주의의 순으로 간략히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가. 공공선택학파
인간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정치 및 관료제의 행태를 설명하는 공공선택론학파들(Downs, Niskanen, Ostrom, Dunlevy)은 관료제를 ‘비영리 독점 공급자’(non-profitmaking monopoly)로 정의하고 그것은 마땅히 축소되어야 하며, 민영화가 필요하고, 서비스 공급에 있어 독점적 지위에 있는 거대관료제는 분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우파라고 불리우기도 한다(안병영, 1994 b: 19-20). 이들은 민주주의도 시장의 논리와 같이 개인의 합리성을 극대화 하는 과정에서 작동을 하고, 관료제의 성장은 민주주의의 효과적인 작동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역으로 민주주의와 참여의 확대가 관료제의 과대성장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신우파와 맥을 같이 하는 ‘신공공관리학파’는 시장주의와 관리주의에 크게 경도되어, 특히 시민의 지위를 고객 내지 소비자의 지위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적지 않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능률추구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규범적이며,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가지며, 큰 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헌신을 약화시킨다고 우려한다.
나. 다원주의
다원주의자들은 정치권력이 사적 개인과 이익집단들, 그리고 국가 사이에 나누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달(Dahl), 린드블롬(Lindblom) 등은 다두제(Polyarchy) 개념을 통하여 서구, 특히 미국의 정치과정을 정당화하였다(Dahl, 1971, 1985). 전통적 다원주의의 입장은 상충하는 압력집단의 요구는 타협 내지 욕구의 최적만족을 유도한다고 본다. 린드블롬은 정부관료제의 문제점은 계속적인 행정개혁과 재구조화를 통하여, 그리고 다양한 정부차원들 간의 협조적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Lindblom, 1977). 한편, 이에 대비되는 입장이 조합주의이다. 조합주의는, 한마디로 소수의 비경쟁적이며 위계적 구조를 지닌 노, 사의 주요 이익집단들이 국가의 허가를 받아 국가의 주요 정책에 영향을 주된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입장은 서구의 사회협약 내지 정책협의제의 입장으로 극단적으로는 ‘관료제 없는 국가통제체제’라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 기술관료 학파
번햄(Burnham)에서 비롯되는 기술관료학파의 입장은, 기술관료들의 권력이 선출된 정치적 기구들을 대신하여 성장했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보았다(Burnham, 1942). “문자 그대로 현대의 정치체제는 본질적으로 ‘관료적’, 즉 ‘관료의 지배’이다. 관료제의 확장은 선출된 엘리트가 아닌, 즉 선거민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피임명자들의 손에 권력이 들어간다는 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어두운 위협이 된다(Etzioni-Halevy, 1983: 54-62). 더구나 관료제의 충원과정은 관료들이 다른 관료들을 임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료제는 단순히 임명된 엘리트 체제가 아니라 ‘자기임명적(self-appointed)' 엘리트 체제가 된다. 관료제의 우월적 지위는 정책형성의 비밀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큰 위협이며, 이는 민주주의의 반테제이다.
라. 참여민주주의자
룻소, 밀, 콜 등 고전적 민주주의 이론가들과 이들의 지적 전통을 이어받은 패트만( Pateman), 바하라하(Bachrach), 아브라함손(Abrahamsson) 등 참여민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선거라는 형식을 취하는 일정한 제도적 장치 내지 정치적 방법으로 이해사고,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사회체제를 위해 순기능을 수행한다는 민주적 엘리티즘의 관점에 대해 거부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Pateman, 1970; Bachrach, 1969; Abrahamsson, 1977). 이들은 본질적으로 ‘시간제 민주주의’(part-time democracy) 내지 ‘선거철 민주주의’를 ‘상시 민주주의’(full-time democracy)로, 형식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질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탈관료제화 내지 관료제개혁을 통하여 민주주의와 평등이 만나야 된다는 입장이다.
유럽형 참여주의자인 아브라함손(Abrahamsson)에 따르면, 관료제는 그들이 마땅히 봉사해야 할 제 이익들, 즉 조직의 위임자(mandator)의 이익으로부터 이탈하려는 경향, 즉 대의성(代議性)을 상실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고, 이를 엄중히 경고한다. 그는 관료제는 한낮 수단에 불과하므로, 그 스스로가 주인(위임자)로 행세하는 ‘자기탐익적 행정’(self-indulgent administration)은 정의상 비능률적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대의적 능률’(representative efficiency)은 집행결과가 위임자의 이익과 서로 부합되는 정도에 따라 가늠되며, 따라서 경제적 모티브와 민주적 모티브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무엇보다 ‘의사결정에의 영향력의 평등성’ (Arahamsson, 1977: 224) 내지 ‘권력의 효과적 평등화’(Bachrach, 1969: 100)를 추구하며, 탈관료제화는 비단 국가관료제 뿐만 아니라 지방공동체와 산업체에서의 폭넓게 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좌파류의 참여주의자들은 참여와 탈관료제화를 매개로 민주주의와 평등은 함께 이루어 져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다. 따라서 이들은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급진적 참여메커니즘을 선호한다.
공동체주의(comminitarianism), 시민공화주의(civic republicanism)류의 미국형 참여민주주의자들은 대체로 정책과정에의 시민참여의 강화, 공동체의식의 창출 등을 통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형성에 큰 관심을 표명한다(Putnam, Neonardi, and Raffaella, 1993).
마. 마르크스주의자
마르크스에 따르면, 국가와 관료제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계급적 도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계급은 국가속에 각인된다’. 그에 있어 자본주의체제의 붕괴와 사회주의혁명의 성공은 탈관료제화의 기본조건이다. 그러나 <루이 보나빠르뜨의 霧月 18일)에서 이른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제기하여, 네오 마르크시즘의 전개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Poulantzas, 1978). 그는 탈관료제화의 방식으로 조건적 위임에 의한 대표체계, 대표자의 직접소환 등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제시했다(Beetham, 1987).
2) 관료제와 민주주의: 딜레마와 필요조건
관료제의 이론과 관료제와 민주주의 간의 관계에 대해 가장 고전적인 논의는 베버에서 출발한다. 베버에 있어서 관료제는 ‘합리화 과정’의 사회적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전체적 관료제화’ 경향은 근대화의 가장 분명한 표현이다. 그에 있어 개신교, 자본주의, 과학 및 관료제는 발전의 한 덩어리(one cluster of development), 즉 합리화과정을 구성하는 부분들이다(Weber, 1958).
그에 따르면 관료제는 민주주의와 동시에 발전하였으며,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전통적인 귀족지배에 대항하는 투쟁과정에서 관료제의 발전을 촉진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한 많은 대중정당들은 그들 스스로 관료제적으로 조직되었다고 강조했다.
베버는 ‘관료제의 합리성’ 그리고 ‘합리적ㆍ 합법적 관료제’의 이상형을 부각시키는데 연구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그는 관료제는 전문지식과 그 조직적 능력에 의해 위임자로부터 유리되는 관료계급으로 군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료권의 팽대와 ‘관료제의 자율성’ (autonomy of bureaucracy), 그리고 이에 따른 민주주의에 대한 관료제의 위협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였다(Albrow, 1977; Beetham, 1987).
그는 아울러 자본주의적 생산질서를 관료적 조직이 등장하는데 주요한 동인으로 보았다. “비록 역사적 연원은 다르지만, 근대적 발전단계에서 자본주의는 관료제를 필요로 한다. 반면에 자본주의는 관료제적 행정의 가장 합리적인 경제적 기초이며, 관료제로 하여금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발전하도록 유도한다”(Weber, 1958). 그러나 베버는 관료제의 대두가 자본주의, 대중민주주의 등 사회의 물질적, 정치적 발전뿐만 아니라, 조직규모의 확대와 같은 ‘내적 논리’ (inner logic)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아울러 밝히고 있다(Abrahamsson, 1977). 주지되듯이 베버는 자본주의가 폐지되어도 관료제는 살아남을 수 있는 독립적인 실체로 보았다.
베버는 관료제에 대한 통제장치로서 의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회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본산으로 정당정치와 선거과정과 연계하여 관료제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는 아울러 ‘합법적 권위와 카리스마적 권위가 결합하는’(Momssen, 1970), ‘국민투표적 지도자민주주의’(plebiscitary leader-democracy)에도 관심을 표명하였다.
베버의 입장을 가장 현대에 맞게 전수한 에찌오니-할레비(Etzioni-Halevy)는 민주주의의 딜레마로서의 관료제와 관료제에 대한 딜레마로서의 민주주의를 대비하여 설명하고, 이러한 디렘마는 정치의 장(場)에 긴장과 권력투쟁을 야기시킨다고 설명한다. 그녀에 따르면, “관료제는 민주주의를 위해 불가피한 존재이면서, 아울러 위협적인 존재이다.” “관료제는 선출된 정치인들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하며, 그러한 통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정책형성에 참여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는 관료제가 정치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Etzioni-Halevy, 1983).
관료제의 성장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랫동안 정치가는 더 이상 공공정책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믿어졌다. 어떤 이는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고, 다른 이는 이를 정책결정이 보다 합리적 기반위에서 이루어지는 새 시대의 출발로 보았다. 립셋은 이러한 상황을 ‘민주주의와 관료제간에 대투쟁’이라고 정의했다(Lipset, 1996). 그러나 최근 서구 여러나라에서 급속히 대두되고 있는 ‘탈전문화와 정치화’ (deprofessionalization and politicization) 과정은 정치중립적이며, 유능성과 전문성에 바탕을 둔 베버리안 관료제의 전통에 강력히 도전하고 있다(Suleiman, 2003).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현대 정치이론가들은 대체로 관료제는 입헌적 민주주의를 위해 불가결한 요소이자, 전제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슘페터도 국가가 전문적 관료적 수단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민주적 질서는 성취될 수 없다고 보았다. 린쯔(Linz), 스테판(Stepan)도 민주주의로의 전이과정에서 전문적 관료제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Stepan: "No state, no democracy")(Stepan and Linz, 1986: 18). 적어도 공고화된 민주주의는 그 중심기능들, 즉 시민의 보호, 조세추출, 서비스전달 등을 질서 있게, 예견가능하게, 그리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국가 및 관료제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민주적 공고화의 주요요소가 비정의적(impersonal) 방식으로 법규와 규정에 따라 일하고, 관료들이 자신의 정치적, 사적 이익과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관청을 분리할 수 있는 관료제의 존재이다(Stepan and Linz, 1986).
현대 민주주의와 관료제간의 관계에 대하여 술레이만의 입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베버리안적 입장에서 민주주의 건설에서 관료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에 따르면, 유능하고, 전문적이며, 정치중립적 공복관(公僕觀)이 투철한 베버리안 관료제의 존립은 민주주의의 초기단계 및 공고화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을 지킨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최근에 크게 대두되는 정부재창조 내지 신공공관리론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Suleiman, 2003).
그에 따르면 NPM의 핵심개념은 ‘관리주의’(managerialism)이다. 그것은 또한 구조적 유연성, 과정과 성과, 경쟁과 능률, 고객정향 등을 강조해서 일견 가치중립적이고 기술관리적 느낌을 선사한다. 그러나 모든 정부개혁이 그렇듯이 NPM은 강하게 정치를 포함하며, 철학적, 규범적 함의를 지닌다. 그에 따르면, NPM은 공익을 추구하는 집합적 규범을 시장의 규범으로 대체하고, 공적 영역의 지속적 감축과 공적 기능의 사적 영역으로의 이관을 추구하며, 시민의 고객화, 원자화를 지향한다. NPM이 집요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베버리안 관료제에 대해 맹공을 가하는 것도 이러한 ‘관료제 부수기’(dismantling bureaucracy)을 위한 것이며, 이는 자칫 ‘민주국가 부수기’(dismantling democratic states)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Suleiman, 2003). 그는 NPM이 최근 서구 여러 나라에서 대두되고 있는 관료제 최상위층의 ‘탈전문화 및 정치화’ 현상과 맞물릴 때 자칫 민주국가의 필수 조건인 전문적 관료제 및 국가능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그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NPM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나라마다 절실한 개혁필요성에 의한 것 이라기보다는, 이데로올기적 수준의 <아이디아>의 확산효과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술레이만은 강력하고, 공고화된, 말하자면 확립된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관료제의 쇄신을 위해 얼마간의 시장이론이나 관리이론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수용한다. 또 시민참여의 확산을 통한 대중민주주의와 정부개혁의 연계에 대해서도 비교적 긍정적이다. 그러나 국가가 민주적 권위를 키기며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국정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유능하고, 전문적이며, 비정의적(非情誼的) 관료제의 존재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3) 정치적 민주주의와 행정적 민주주의
위에서 우리는 주로 정치적 민주주의 내지 제도적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관계를 논의하였다. 그러나 정작 관료제를 대상으로 민주주의를 논의할 때, 상위 민주주의와 관료제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와 별도로 관료제의 조직내적 내지 조직 연관적 민주주의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편의상 ‘행정적 민주주의’라고 칭해 본다. 그러나 실제로 행정적 민주주의 내지 행정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아직 학문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이론적 논의나 합의수준이 낮다(임성한, 1994).
크게 보아 조직민주주의(organizational democracy) 및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 이론이 이 논의에 기여했고, 행정학에서는 주로 대표관료제, 시민참여와 분권화 논의, 그리고 행정통제론이 이와 깊이 연관된다. 행정절차법이나 공공윤리 등에서도 논의가 있었다. 따라서 행정적 민주주의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관료제를 논의하는 경우, 무엇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거의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이와 연관하여 우리는 몇 가지 논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최근 최근에 크게 대두되고 있는 거버넌스와 네트워크 개념이다. 둘째로, 하나는 최상위 행정계층의 탈전문화와 정치화 현상이다. 셋째로, 부처 및 부서 간, 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지방정부 간의 협력과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바꾸어 말하면, 최근 우리 관료제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부처이기주의와 연관된다. 넷째로, 조직민주주의 시각에서의 부처내 또는 부서내의 상하계층간의 관계이다.
이러한 네 가지 문제들은 민주주의 정부에서 관료제의 정책결정에 대한 영향력과 능력의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연관하여 관료제의 연관구조 내지 외연(外延)과 연관하여 부각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며, 행정적 민주주의와 깊이 연루되므로 얼마간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많은 이들은 국정관리양식 또는 거버넌스의 양식이 기존의 계층적인 정부 패러다임에서 협력적 또는 네트워크 거버넌스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전통적인 계층적 정부 패러다임은 국민국가 중심의 통치체제를 전제로 한 국가관료제, 특히 중앙정부의 중심의 위계적 질서이다. 그러나 협력적 또는 네트워크 중심의 거버넌스 패러다임은 한편으로는 국가를 넘어 보다 상위의 지역공동체와 글로벌 차원, 그리고 하위의 지방차원 등을 포함하는 다계층적 통치구조를 상정한다(정무권, 2000).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정부관료제 내지 공공부문은 시장과 시민사회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때로는 이들과 경쟁하고, 때로는 이들과 협력하면서 국정운영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거버넌스는 네트워크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네트워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호호혜와 신뢰가 필수적이며, 당사자간의 파트너십, 그리고 ‘윈-윈’ 관계를 중시한다. 따라서 거버넌스 패러다임에 의할 때 관료제의 외연은 크게 확대된다.
다음으로 관료제의 탈전문화와 정치화 논점이다. 주지되듯이 영국과 미국 등은 19세기 후반 실적주의가 제도화되면서, 전문성과 능률성을 바탕으로 하는 베버리안 관료제가 정착하였다. 이후 관료권은 계속 선출된 정치적 기구들을 대신하여 성장 하였다. 여기서 관료의 비당파성, 공정성,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요구는 관료권의 팽대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영국을 예로 할 때, 관료들의 헌법적 지위는 ‘자문’하는 것이고, 정치인인 장관은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관료제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79-1997년간의 보수당 정부 하에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명백한 정책 아젠다를 가지고 출발한 영국 보수당정부는 정책과정에 깊숙이 관여하였고, 그 결과 관료제의 정치화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특히 대처 수상은 부처의 세세한 정책까지 관여하였고, “관료들은 점차 그들의 역할을 정책분석가로부터 집행자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을 비롯한 많은 유럽국가로 확산되었고, 전문관료제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주지되듯이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인사는 수상(대통령)/비서실, 장관, 그리고 고위관료로 구성되는 핵심집행부(core executive)이며, 이들 간의 역학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정책)와 행정을 가르는 분할선은 결코 명확하지 않으며, 행정의 정점에서 이들은 서로 만난다. 내각책임제의 경우, 대체로 장관은 의회의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들은 당연히 정치인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대통령책임제의 경우, 정치인 출신이 아닌 전문인 출신 장관들이 흔하며 이들은 오히려 행정의 정점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도 장관과 고위관료 간에는 공생관계를 바탕으로 얼마간의 갈등과 긴장이 수반된다.
관료제의 탈전문화와 정치화는 일응 국민이 위임한 정치기구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관료제의 지나친 정치화는 관료제가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성 내지는 잠재능력을 약화시킨다는 면에서 우려되는 바도 크다. 그러나 엽관주의와 실적주의의 역사를 두루 거치고, 관료의 정치적 중립성과 ‘중립으로부터의 해방’의 시대롤 고르게 호홉한 서구에 경우 시대에 따른 얼마간의 편향을 있을지라도 정상관료제의 정치화가 체제위협으로 까지 발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랫동안 권위주의정권의 절대권력 하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 뿌리가 아직 취약한 후발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관료제의 정치화는 자칫 행정의 민주화에 앞서 행정의 권력예속으로 유도할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하다.
행정적 민주화의 논의에서, 중요한 대목은 정치와 행정의 만나는 접점이다. 내각책임제의 경우 당연히 장관과 고위관료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제의 경우, 나라에 따라 사정이 다를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와 행정이 만나는 지점은 대통령/비서실과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의 인격적 연장인 청와대 비서실의 정치적 입장과 전문관료들의 보좌를 받는 장관의 전문성이 여기서 조정과정을 밟는다. 최악의 경우는 대통령/비서실이 공익을 무시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념적 편향성에 입각해서 공익적, 전문적 관점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을 밀어 붙이는 경우이다. 여기서 대통령에 의해 임용된 장관은 상대적 권력관계에서 결정적 열세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에 저항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장관이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에 결정적으로 밀리면, 행정조직 내부의 민주화는 실제로 지난(至難)해 진다. 그렇게 되는 경우, 정부관료제는 일부 중범위, 그리고 미시정책차원이나 정책집행과정에 관여할 뿐, 주요한 거시정책 결정에서는 소외되기 쉽고, 따라서 부처내의 창의적 동력을 크게 떨어지게 된다. 전문적 관료제의 창의성과 역동력이 떨어지게 되면, 그 사회는 문제해결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경우 정치인들이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몰두하게 되면, 그 사회는 안정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된다. 따라서 정치인의 이념적 선도성과 관료제의 전문성과 안정성이 상호 절묘하게 결합되어야 민주주의는 발전하게 된다.
이와 연관하여 우리 한국적 맥락에서 중요한 이슈는 민주주의와 행정개혁과의 상호 관계이다. 이번 특집 세션에서 임도빈 교수가 제기하였듯이, 한국의 관료제는 그동안 한편으로는 발전국가의 성립으로 베버리안 관료제를 완성하는 한편,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 마다 행정 쇄신 및 행정개혁이 정치적 지배엘리트에 의해 관료제를 통제하기 위해 단골메뉴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행정개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신자유주의적 행정개혁은 오히려 관료들의 권한과 책임의 문제를 계속 혼돈 속으로 몰아넣음으로서 관료제의 합리적 자율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앞에서 제기되었던, 정치적 민주주의와 행정적 민주주의의 접점인 정치적 관료와 실적주의 관료의 관계가 서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포함해서 행정적 민주화를 논의하는 경우, 행정적 민주화는 주로 참여와 분권화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분석 대상은 크게 행정관료제의 조직내부와 외연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행정조직 내부가 매우 중요하나, 그 외연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보겠다. 행정관료제의 외연을 따져 보면, 대통령/비서실과 장관, 조직간(부처간), 관료제(이른바 street level bureaucracy)와 시민간, 중앙과 지방간, 그리고 정부와 시민사회 및 시장 간으로 나누어 것이 전체 그림을 조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참여와 분권화 분석을 위해서는 권한위양의 수준, 참여의 정도와 그 실질 영향력, 정책협의제의 제도화 수준, 조직내부의 상향적 의사소통 통로 등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의 관료제에서 증가하고 있는 부처이기주의, 더 나아가서 지방정부간의 이기주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복잡한 사회가 되어 갈수록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기능적으로 분화된 부처 간의 긴밀한 의사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서 및 팀 등 조직내부에 있어서도 구성원간의 민주적 의사소통은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혁신적 조직의 조건으로서 학습조직화(learning organization)에 중요한 조건이다(정무권, 배득종, 한상일, 2006). 왜냐하면,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해결의 혁신들은 반드시 소수의 상위 엘리트 층만에서 나오는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과 대면을 하고 실제로 집행을 하는 조직의 하위층 및 중간층에서 그들의 현장경험에서 나오는 혁신이 매우 효과적이다. 때문에 관료제의 다양한 수준과 영역에서의 행정적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과 이론적, 경험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4. 평등과 관료제(행정)
이데올로기와 규범적 이론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평등 내지 불평등이라는 사회문제는 무대 전면에 등장하지만, 이른바 탈이데올로기 시대에는 무대에 뒷전으로 물러가기도 한다. 전후 서구에서 혼합경제와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고,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종언’(Bell, 1960)이 찾아들었을 때는 유럽에는 ‘풍요한 노동자’가 넘쳤고, 미국사회는 ‘중산층화’ 되었다. 당시 복지자본주의의 개념적 틀 안에서 개인주의와 집합주의, 자유주의와 사민주의가 제휴했다. 립셋이 복지국가로의 완성을 위한 새로운 정치구도를 ‘민주적 계급투쟁’(democratic class struggle)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Lipset, 1966).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복지국가의 위기가 도래하고,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면서 이념투쟁은 되살아나고 사회적 불평등 내지 사회적 배재(social exclusion) 문제는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체로 사회적 가치논의에서 평등의 개념은 자유의 개념과 대비되어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자유를 앞세우고 평등을 폄하하는데 비해, 마르크스주의는 그 반대의 가치정향을 표방한다. 그런가 하면, 중도적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 양자를 다 중시한다. 다만 케인즈나 베버리지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자유주의는 얼마간 자유의 가치를, 그리고 전통적 사회민주주의는 평등의 가치에 더 강조점을 둔다. 주지되듯이 사회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공히 복지국가를 강력하게 지원하는 이념적 세력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관료제 내지 공공부문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평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복지국가 내지 복지자본주의의 성장과 그 역사적 궤를 같이한다. 그리고 관료제 성장의 핵심 메커니즘은 개개 국가들의 역사적 형성과정에서 독특한 자본주의양식과 민주주의 발전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헤클로가 복지국가의 성장을 함축적으로 관료제의 사회문제의 퍼즐풀기로 정의한다. 이는 복지국가의 성장에 정치적 이념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의 전문관료제가 잘 성장했을 때, 관료제의 전문가적 규범과 윤리(professional norms and ethics)가 실질적으로 합리적인 복지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원인이라는 것이다(Heclo, 1983).
여기서는 세 가지 복지자본주의 유형, 즉 스칸디나비아형 사회민주주의 국가, 유럽대륙형 보수주의국가, 그리고 영미계통의 자유주의국가를 비교함으로써 시민들의 복지와 평등문제에 관료제의 역할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다(Esping-Andersen, 1990). 사민주의, 조합주의, 자유주의 국가는 무엇보다 좌파정당의 정책영향력과 정책결정과정에서 조합주의의 제도화 정도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즉, 좌파정당이 의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그리고 임금협상 등 주요 사회정책에 관한 노사정간의 합의 정도, 즉 조합주의의 지수가 높을수록, 국가정책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평등주의를 추구하고 정부는 적극적인 서비스 생산자와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경우 정부관료제의 규모는 당연히 커진다(안병영, 정무권, 한상일, 2007).
사민주의 국가들은 대체로 복지국가의 기본이념으로 사민주의 이데올로기인 평등과 연대를 강조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복지 정책이 보편주의에 입각하여 폭넓게 펼쳐지며, 상대적으로 소득보장의 급여수준이 높고, 특히 보건, 교육, 탁아,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주요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제공한다. 그런가 하면 조세와 복지제도를 통해 재분배에도 열심이다. 따라서 국가관료제의 인력규모도 다른 국가유형에 비해 월등히 크고, 복지지출 또한 가장 높은 국가군이다(안병영, 정무권, 한상일, 2007). 이들 나라들은 세계화 시대에도 여전히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으며, 때로는 시장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제한적이며, 정부구조와 운영메커니즘의 재조정 즉, 현대화방식을 통한 정부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남궁근 외, 2006). 흥미로운 것은 한 국가가 평등과 연대의 가치가 정치이념 및 문화적으로 강조되어 제도화 되면, 관료제의 정책결정과정에서도 관료 개인이나 조직문화의 규범도 평등과 연대의 가치에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Bostein, 1996; 이도형, 1993). 따라서 관료제 문화도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치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이는 그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민주주의로 발전하느냐에 따라 공공부문의 특징, 행정민주주의의 성격, 행정의 평등개념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전통적으로 기독교 민주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럽대륙의 보수주의국가들은 사회적 위험들을 사회보험제도 중심으로 대처하면서, 복지제도의 수급권이 남성가장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사회보험제도가 계급 및 지위에 따라 분절적으로 운영되며, 복지의 재분배 효과도 제한적이다. 산업구조적 특징과 가족주의의 영향으로 여성의 사회참여가 낮기 때문에 국가가 직접 제공하는 사회서비스제도가 상대적으로 덜 발전되어 있다. 이들 보수주의 국가들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사회적 계층(hierarchy)를 인정하지만, 갈등보다는 화합을 강조한다. 따라서 정책결정의 원리로서 평등보다는 보족성의 원리(subsidiary principle)를 강조한다. 복지제도의 특징에서도 나타나듯이, 일단은 각자의 노력과 수준에 의해서 해결을 하게하고, 이에 부족한 계층이나 집단에게 보충적으로 지원을 해줌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갈등을 줄이고 계층 간, 집단 간의 조화와 통합을 이루도록 한다. 따라서 사민주의와 같이 공공부문이 크다. 지출의 측면에서도 평균적으로 사민주의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적지만,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표 2> Esping-Andersen 의 세 가지 복지자본주의와 공공부문의 특징
유형 내용 |
앵글로색슨(자유주의) |
대륙 유럽(보수주의) |
스칸디나비아(사민주의) |
급여대상 |
빈자(요구호자) 중심 |
피용자 중심 |
모든 시민 |
급여종류 |
극소화 공공부조 중심 |
중간적 사회보험중심 |
극대화 사회적서비스 중심 |
급여수준 |
최저생계비 |
계급과 지위에 따라 차이(보험원칙) |
중간계급의 생활수준지향 |
국가역할 /공공부문 |
미약 |
강력 |
최강(最强) |
공공사회보장체계 |
미발달 |
분절적 |
통합적(보편적) |
본인부담 |
많음(시장구매) |
많음(보험료) |
적음(사용자-국가부담) |
가족역할 |
강력(개인책임의최소단위로서 가족; 지원적음) |
강력(전통적 가족; 가장을 통한 지원) |
미약(개인적 사회권) |
인적자원관리 |
시장중심(형식적 공교육) |
공공역할 강조(무상교육) |
포괄적 인적자본관리(무상교육+ALMP+여성해방) |
노동연계 |
억압적(workfare) |
전통적 |
생산적(activation) |
복지의 재분배적 기능 |
매우 미약 |
제한적 |
강력 |
평등에 대한 강조 |
매우 약함/자유와 경쟁을 강조 |
중간수준/평등 보다는 보족성의원리(subsidiary principle)강조 |
매우 강함. 연대를 강조 |
속하는 국가 |
미국, 카나다, 호주 등 |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
영미계통의 자유주의유형의 국가들은 이념적으로 개인주의와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국가보다는 시장 중심으로 경제성장과 분배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들 나라들은 빈곤층 중심의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중심으로 제공하는 다양한 공적부조제도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사회보험제도를 갖추고 있다. 국가 관료제의 재정적 규모나 인력이 공히 적은 편이다. 이들 자유주의 국가들은 평등에 앞서서 자유를 강조한다. 평등은 결과의 평등, 즉 결과적인 격차를 줄이는 것 보다는 과정상의 평등, 즉 누구나 격차에 관계없이 자유로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권 차원에서의 기본권의 평등적 보장에 더욱 초점을 둔다. 이상을 간략히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이에 비해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의 발전국가 유형은 공히 후발산업화 국가들로서 뒤늦게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거쳤고, 민주화, 복지화의 도정도 늦었다. <선성장ㆍ후분배>라는 발전주의의 제도적 유산 때문에 서구 선진 국가에 비해 아직 복지부문에 대한 재정지출이 높지 않고, 인력규모나 재정구조의 맥락에서 볼 때 공공부문의 규모가 현저히 작다(안병영, 정무권, 한상일, 2007). 이들 발전주의 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덜 성숙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와 보호적 차원의 평등보다는 국가적 집단주의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물론 민주주의의 도입에 따라 개인의 기본 권리를 강조하지만, 국가적 목표, 집단적 목표를 위해 개인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 밀리는 경향을 보인다.
평등과 행정의 관계를 논의할 때, 단순히 공공부문의 크기와 큰 틀에서의 특징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 평등의 가치가 행정에 적용될 영역은 너무나 많다. 평등과 행정에 관한 다른 논문에서 권혁주 교수가 주장했듯이, 롤즈의 정의론에서 제기되었듯이, 과연 우선순위로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일차적 재화(primary goods)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기본적 소득의 보장(최저생활보장)에서부터 시작하여, 보건의료, 여성의 사회참여와 모성보호, 교육에서의 기회의 균등,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 장애인, 노인, 아동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와 보호, 다양한 영역에서의 인권보호와 차별의 금지, 다양한 행정서비스 공급과 절차상에서의 평등, 사회적 약자들의 법률구조권 등등, 행정의 영역에서 평등의 문제를 다루어야 할 영역은 사실 무궁무진 하다. 사실 평등의 측면에서의 행정학 분야에서의 연구는 매우 취약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행정철학이나 행정윤리적 차원에서 행정과 평등의 연계가 일차적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정책영역과 행정과정에서의 연구들로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복지 및 공공부문의 레짐적 특징 때문에, 공공부문과 행정의 영역을 축소시키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대한 대응 또한 다르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이 크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공공서비스와 복지를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국가일수록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은 점진적이다. 반면에, 공공부문이 작고, 이미 시장의 영역이 컸던 영미계통의 자유주의 복지레짐 일수록 더욱 급진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5. 소결: 한국적 맥락에서의 함의
이와 같은 민주주의, 평등, 행정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한국행정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의 이슈를 이해하려고 할 때,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는가? 비교역사방법론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보편성과 특수성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한편으로는 서구 선진국가들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의 보편성을 찾아내면서 그 특수성을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특수성을 이해하면서 그 보편성을 우리에게 적용해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서구의 경우 체제형성, 산업화, 민주화, 복지화가 순차적으로 전개되었고, 그것들이 얼마간 바탕을 다진 후에 세계화와 후산업주의 등이 도래되었으므로 국가관료제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비축할 수 있었는데, 한국 등 발전국가 들은 그렇지 못해 더 힘들고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베버리안 관료제는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면서, 그 위협이 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서구 역사를 개관할 때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불가결의 요소였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아직 미성숙한 나라(이행기 혹은 공고화 과정에 있는 나라)의 경우, 전문적이고 유능, 합리적인 관료제의 창설, 정착은 필수적이다.
서구 관료제의 경우, 초기 베버리안 관료제가 정착하는 시기에, 정치적 위임자로부터의 이탈을 관료권의 이탈과 전횡을 막기 위해 이에 대한 통제기제를 마련했고, 아울러 관료제에 대한 지나친 정치개입과 관료제의 전문성과 능률,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제고하기 위해 또 한 차례의 개혁을 거쳤다. 따라서 정치권력과 전문 관료제간의 갈등조정을 위한 바탕이 마련되었다. 이에 비해 발전국가들은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에 행정이 예속되거나, 혹은 그 비호와 정치부재 상황에서 관료권의 지나친 팽대만을 경험했을 뿐, 통제나 정체성을 갖추기 위한 역사적 갈등조정 기간이 없었다. 한국의 관료제는 발전주의 국가를 통해 베버리안 관료제가 형성되어 산업화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료제 통제의 해법으로 관료제의 전문성과 내부적 민주성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관료제를 불신하고 축소 및 약화시키려는 NPM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자유주의가 전통적으로 강했던, 영미계통의 자유주의 국가들이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비교해 매우 흥미롭다. 권위주의적 발전주의 국가 하에서 정치적 권력에 대한 행정의 예속화와 정경유착에 의한 관료제의 부패, 관료제의 권위주의적 속성 등과 같은 관료제의 부정적 측면이 우리 사회에 역사적 경험으로 깊게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국민적 정서를 떠나, 우리 관료제의 성장과 특성, 그리고 우리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과정에서 관료제 역할의 공적과 과실, 그리고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관계에 있어서 장단점을 객관적이고 학문적으로 평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나 NPM은 그 시장주의와 관리주의의 속성 때문에 공적 공간과 공익이 존재할 여지를 좁히고, 시민을 고객화 하며, 무엇보다 베버리안 관료제의 해체를 겨냥해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최근 크게 대두되는 ‘탈전문화와 정치화’ 현상도 같은 궤적이다. 민주주의가 이미 확립된 서구 여러 나라의 경우, 신자유주의나 NPM의 위협은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또 나라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권위주의적 발전주의 국가의 경험으로 정치권력에 대한 통제장치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서구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이었던 베버리안 관료제의 기반마저 무분별한 손보기는 자칫 민주주의의 기반을 해칠 수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행정개혁의 장점을 무조건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NPM이 추구하는 개혁노력 중 분권화(decentralization)는 관료제의 민주화와 유연화를 위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특히 행정적 민주화를 위해 더욱 그렇다고 본다.
정치적 민주화는 행정적 민주화를 위한 기본 장치라고 본다.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은 행정을 예속하거나, 그를 과대 성장시켜 민주화에 대한 이반의 바탕을 마련한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가 반드시 행정적 민주화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행정적 민주화를 위해서는 별도의 제도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때문에 행정적 민주화에서 정치권력과 전문관료제가 만나는 지점은 매우 중요하며, 여기서 양자간의 협업이 가능해야 행정적 민주화의 단초가 열린다. 행정적 민주화는 조직내적 민주화와 환경과의 교섭(외연)의 민주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평등의 경우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립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을 기본 조건으로 하는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가 충실히 실행되고 제도화 된 후 참여민주주의가 확보될 때, 평등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부상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에, 모든 시민에게 고루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해갈등을 타협하고 조정함으로써 다양한 집단들의 이해관계들이 두루 만족될 수 있는 보편적 평등의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선진 복지국가들, 특히 스칸디나비아 사민주의 국가들과 유럽대륙의 국가들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확고한 확립위해, 이해 당사자 간의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조합주의와 지방자치 등 다양한 수준의 참여민주주의 장치가 발전되고, 이를 바탕으로 평등을 지향하는 복지제도가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으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부재한 가운데 실질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면 전체주의화 될 수 있고,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평등가치를 더욱 지향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을 높여, 보다 성숙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정치 담론에서 평등의 가치가 제기되고 보편화 되는 동시에 노사정 위원회, 분권화, 지방자치와 같은 주요 사회적 의제와 정책결정에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사회적 협약과 합의주의적 제도를 공고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에 대한 충분한 담론의 형성과 사회적 합의가 아직 약하다.
IV. 한국행정의 역사적 맥락에서 본 민주주의와 평등
여기에서는 한국행정 및 한국행정학 발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의 이슈가 어떻게 나타났고, 행정 및 정책, 그리고 행정학 연구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거시적 맥락에서 간략한 해석을 시도한다. 이를 통하여, 앞으로의 우리가 다루어야 할 문제제기와 연구과제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한국행정의 발전단계를 다음과 같이 크게 네 단계로 나누어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국가형성기(1948-1961)
이 시기는 미소 양극체제 아래서 분단국 대한민국이 건국하고 얼마안가 3년간에 걸친 한국전쟁(1950-53)을 치룬 후, 전후 복구와 국가체제 형성에 주력하던 기간이다. 이 시대의 국가기구는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과대성장한 억압적 관료기구를 중심으로 짜여졌고, 의회, 정당, 선거 등 대의제적 정치과정을 대체로 허구화된 가운데, 반공보수주의적 권위주의 체제성격이 두드러졌다.
대체로 정치와 행정은 미분화된 상황에 있었다. 이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과 일제 관료출신의 자유당 관료들은 과두(寡頭)지배체제를 형성하고, 관료제에 대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구사했다. 제1공화국 관료제는 일제식민지 시대의 관료제의 유산으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베버리안 관료제의 기본 틀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 기능은 전형적인 과두제적 체제유지형 관료제로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한 채 국가체제의 기초형성과 체제안정을 추구하는데 주력하였다. 따라서 민주적 가치와 평등의 문제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당시 정치 엘리트나 관료 엘리트 그 누구도 역사의 발전이나 사회변동에 대하여 뚜렷한 관점을 형성하지 못했고, 따라서 스스로를 발전의 주역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은 지주계급의 몰락과 자작농의 대두를 통하여 계급구조의 변화 내지 사회적 평등에 기여했고, 훗날 경제개발의 토대를 세웠다. 불붙는 교육열도 이와 밀접히 연맥 된다. 1950년대 후반에 들면서 국가관료제는 서서히 경제개발이라는 국가과제에 눈을 돌리게 된다. 1958년, 부흥부 산하 산업개발연구원(KID)를 중심으로 외국의 자문을 받아 장기경제개발계획을 준비하는 등, 관료제 내부에서 발전주의 국가의 싹이 움튼다.
초기 국가형성 당시의 행정학에 대한 인식은 주로 일본식민지경험의 영향을 받아 대륙의 법학체계 내에서 행정과 행정법 중심의 행정학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미국 행정학이 도입되고, 한국 행정학의 주류로 자리 잡는다. 초기 한국 행정학은 행정의 능률에 역점을 두고 연구를 관리기술적 차원에 한정함으로써, 한국행정의 문제를 이론적, 본질적으로 설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 정부의 본질적 가치를 행정현상의 일부분으로 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한국 행정학 연구의 태두인 정인흥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정치학>(1954) 및 <행정학>(1956)에서 한국은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학의 주요 과제는 ‘국가권력의 문제와 기능적 문제를 종합하는 것’임을 강조했다(안병영, 2006).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정치적 민주화의 선행을 통해 정치권력 내지 관료제로부터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개인의 행복이 극대화 하는 것이었으며, 행정학도 마땅히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선구적 고민은 그의 제자인 박동서 교수에 의해 이어진다. 이처럼 이들 한국행정학의 선각자들은 오늘날 민주화 시대에 한국 행정연구에서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를 명백한 메시지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관점은 이후 권위주의적 발전국가가 대두되면서 빛을 보지 못하고 발전행정을 중심으로 기능적 학문으로서의 행정학의 부흥기를 맞이한다.
2. 권위주의적 발전국가 시기(1961-1987)
이 시기는 5.16 군사구테타 이후 군정 및 제3공화국(1961-1972), 제4공화국(1972-1980), 그리고 제5공화국(1980-1988)을 포괄하는 18년간의 권위주의 정권의 시기이다. 동시에 후발 산업화국가들이 선진국 따라잡기(catch-up)의 역사적 과정에서 추구하는 전형적인 모형인 <발전주의 국가> 내지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형성이 그 정점에 이르고, 다시 해체의 길을 밟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발전국가를 이념형으로 볼 때, 크게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Johnson, 1972; Woo, 1998; Evans, 1995; Chung, 2002, 양재진, 2005). 첫째로, 발전국가는 주로 후발산업화 국가에 나타나는 국가형태로서 초기 국가형성과정에서 베버리안 관료제의 형성이 그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베버리안 관료제를 기초로 장기적으로 경제계획을 세우고 조정하는 선도기구(pilot/super agency)가 만들어지고, 이를 중심으로 국가가 장기적 경제발전이라는 국가목표 추진하는 가운데 그 사회의 주도적 사회계급이나 세력으로부터 자율적인 정책목표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국가가 의도한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제도, 정책수단 및 다양한 사회조직과의 네트워크를 갖추어야 한다. 즉 발전국가의 중요한 제도적 조건은 베버리안 관료제를 기초로 한 ‘연계된 국가자율성(embedded state autonomy)'과 이에 상응하는 ’국가능력(state capacity)'을 함께 갖추어서 장기적 경제발전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1960년대 초에 5.16 군사구테타 이후 군정시기를 거쳐 경제발전을 위해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조정하는 선도기구로 경제기획원이 설립된다. 그리고 일련의 행정개혁을 통해 베버리안 관료제가 형성됨으로써 발전국가 형성의 초석을 쌓는다. 그리고 국가는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벌 및 산업자본가의 역할을 중시하고, 금융지원, 세제개혁 등을 통하여 이들을 정책적으로 강력히 지원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권위주의적 정치 하에서 국가와 재벌이 긴밀하게 연계되고 노동과 시민사회를 억압ㆍ배제하는 보수주의 지배연합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추진되었다는 것이 한국의 발전국가의 중요한 정치적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이 시기의 국정이념은 민주주의의 주요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이념보다는 경제발전과 안보였다. 이에 따라 발전관료제는 철저하게 ‘성장-분배’ 2분법에 의하여 총량적 경제발전에 주력하였기 때문에 분배와 복지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따라서 경제총량이라는 점에서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으나, 산업부문간, 계층간, 지역간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되었으며, 정경유착과 재벌경제, ‘민중부문’의 소외와 박탈, 크로니즘(cronysm)의 팽배, 도덕적 해이와 부패 등이 발전위기 내지 억압적 발전주의의 부정적인 제도적 유산을 낳았다. 즉 한국의 발전국가는 <억압>에서 기인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결손과 <발전주의>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형평성의 결손 때문에 줄곧 체제 정당성에 도전을 받는다.
발전주의 국가시대에 한국의 행정학은 정치적 민주주의 결손과 행정의 민주화라는 문제의식보다는 발전을 위한 기획과 제도형성, 그리고 정책적 자문역으로서 기여를 하게 된다. 이른바 발전행정이 그 전성기를 맞는 가운데 권위주의적 정권의 자문, 용역 등에 대거 참여하여 <관변학문>적 성격을 강화하며, 이른바 <근대화의 도구>로서 기능을 수행한다(백완기, 2005).
이러한 한국행정학의 모습은 아직 한국에서 행정학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학문적 규율과 패러다임을 성립하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탈정치화를 강조하는 기능주의적 미국행정학이 한국행정학의 주류를 점하고 있는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행정학의 도입은 한편으로는 한국행정의 근대화와 행정의 관리능력의 증진을 가져오는데 기여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행정학의 중요한 학문적 특성인 가치중립성과 기능주의적 특성 때문에 한국 행정연구에 있어서 정치와 행정 간의 관계, 그리고 민주주의의 주요 가치인 자유, 평등과 행정과의 연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소홀하게 만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빚었다.
주지하듯이 미국행정학은 이미 제도화된 미국식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전제하고, 그 틀 위에서 기능적이며 관리적인 측면에 연구에 초점을 맞추어 발전한 학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행정학의 특징을 한국학자들이 수용하고 한국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한국 행정학계는 가치중립성을 방패삼아 애써 정치권력의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를 외면하면서, 권위주의체제 내에 안주하며 그와 제휴, 연립해 왔던 것이다. 그동안 한국 행정학계는 미국행정학을 한국적 맥락에 수용, 이식하는 과정에서 <토착화>, <한국화>에 대한 자성적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한국의 정치적 맥락에 대한 깊은 성찰은 거의 없었다(이종범, 1977; 안병영, 1987; 백완기, 2005).
한국의 발전주의 국가는 유신체제에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면서 그 절정을 이루다가, 유신체제의 붕괴와 함께 서서히 해체의 길로 들어선다. 잠시 민주화 시기가 있었지만, 광주사태로 이어지면서 전두환 정권이 등장으로 다시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면서 제5공화국이 세워진. 제5공화국은 유신체제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긴축 구조조정(산업구조조정, 긴축재정 및 임금억제)과 경제자유화 정책(무역개방 및 금융자유화)을 실시하면서, 당시에 이미 서구 선진복지국가들 사이에 제기되었던 신보수주의 내지 신자유주의 사조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Choi, 1987; 하연섭, 2006; Chung, 2002). 그러나 억압적 정치 하에 섣부른 긴축적 구조조정은 사회적 약자인 농민과 노동자의 저항을 불러왔고, 끝내 그간 산업화의 수혜자이기도 했던 중산층이 민주화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라는 중요한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다.
한국에서 억압적 발전국가의 형성과 이후 민주화 과정은 민주주의와 관료제와의 관계설정에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우선 베버리안 관료제를 기초로 한 발전국가적 특징은 한국의 산업화 성공의 중요한 제도적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발전국가의 억압적 성격과 병리적 현상은 일반적인 국민정서 안에 관료제 및 행정에 대한 강한 불신을 심었다. 이러한 발전국가의 '성공의 위기'는 한국 사회에 지배적 이념 수준에서 국가와 공공부문의 축소를 강조하며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과 신자유주의적 행정개혁이 쉽게 수용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낳는다.
3. 민주국가 이행기(1987-1998)
1987년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역사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도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으나, 이제 적어도 경쟁적 자유선거가 정착되었고, 군이 문민통제 하에 들어갔는가 하면, 일정수준의 정치적 자유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미 공고화에 이르렀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민주화 이행이 시작된 이후, 시민사회가 그 정치적 공간을 크게 확장하였고, 의회 또한 얼마간 활성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정치의 동력인 정당정치는 아직도 취약하기 짝이 없고, 핵심 정치적 영역에서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정착은 아직 요원하다. 행정제도의 운영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중요한 행위자들의 행태에서 민주주의의 에토스 대신 권위주의적 발전국가 시대의 부정적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러한 특징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한국의 민주화의 초기 이행기적 특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의 민주화의 개막은 ‘아래로부터의 충격’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러나 민주화의 실제적 이행과정은 귄위주의 시대의 지배엘리트와 야(野)측 정치엘리트간의 보수주의적 정치협약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비교론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민주화는 ‘거래에 의한 (민주화)이행“(transition by transaction)의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Maiwaring, 1992). 이러한 민주화 전이는 전환과정에서 오는 격돌과 희생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반면,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권위주의체제의 척결과 민주개혁에 있어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권위주의체제의 청산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그 성과는 대체로 미완(未完)에 그쳤고, 그 수준도 미흡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제6공화국의 시작을 ’완화된 군부정권‘ 혹은 기껏 ’의사 민주주의체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안병영, 2002).
이와 같은 한국의 민주화 초기 이행기의 특성은 신자유주의 아이디어를 더욱 한국사회에 공고화시키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노태우 정권은 기존의 보수주의 지배연합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억압적 발전국가 이후에 성장과 복지와의 관계와 국가와 시장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창조적 반성이 없이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던 단순한 경제개방과 자유화의 길을 재촉했다. 그런가 하면, 민주화 세력에게도 민주화는 정치적 억압의 본산이었던 발전주의 국가의 해체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민주화를 통해 국가의 억압적 기능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정경유착, 부패, 대기업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과 같은 발전주의국가의 병리현상은 지속되고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따라서 집권한 제도권 내에서 발전주의 국가의 공과에 대한 창조적 반성과 발전주의 이후에 대한 대안적 모델에 대한 아이디어와 담론이 형성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키고 민주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성장과 복지의 조화, 자유와 평등에 대한 변증법적인 인식에 따라 국가와 시장, 국가와 시민관계의 재정립에 대한 아이디어와 담론형성의 장이 크게 부족하였던 것이다. 어쨌든 민주화는 나름대로 평등에 대한 정책적 관심을 만들어냈다. 복지제도의 측면에서 민주화는 사회보험제도의 확대를 가져왔다. 의료보험제도가 전국민제도로 확대가 되었고, 연금제도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복지제도의 확대방식은 질적 전환 없이 이전의 국가재정의 최소부담과 최소한의 사회적 위험 보장을 강조하는 발전주의적 사회보험체제의 연속이었다.
김영삼 ‘문민정부’는 출범직후 ‘신한국’건설의 기치아래 군부의 탈(脫)정치화, 고강도의 사정, 공직자의 재산공개, 금융실명제의 도입,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의 개정 등 일련의 개력조치를 강도 높게 수행하였다. 김영삼 정부의 개혁정치는 군을 확고하게 문민통치하에 둠으로써 권력의 ‘유보적 영역’을 없앴고, 정치적 자유와 다원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정치개혁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절차적 합리성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당시의 대세였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를 추종하였다.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정책적 역점이 시장주의와 경제적 효율성에 주어졌고, 그 결과 복지나 분배문제 등 실질적 민주화를 위한 개혁의제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김영삼 정부의 개혁정치는 정치적 내지 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에는 긍정적으로 기여하였으나, 그것이 정경유착, 부정부패, 지역주의, 연고주의 등을 타파하는 정치경제적, 문화적 차원의 민주화로 심화되지 못했고, 특히 사회경제적 내지 실질적 민주화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은 행정의 영역에서도 ‘작은 정부론’, 또는 ‘작고 강한 정부’라는 영국의 대처주의식의 신자유주의적 행정개혁이 도입된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전략은 국가구조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발전주의 국가의 해체를 재촉했다. 우선 한국 경제발전과정에서 기획과 조정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경제기획원을 폐지한다. 이어 그동안의 한국의 경제성과를 토대로 선진국 클럽인 OECD의 가입하고, 그 가입 조건에 따라 더욱 급격한 경제자유화와 금유규제완화를 실시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IMF 외환위기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한다.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는 자율적이며 합리적인 시장의 작동기제가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를 감독하고 규제해야하는 국가의 역할을 급격히 무장해제 시켜 버린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경제자유화와 시장의 확대를 함에 있어서, 다시 시장을 규율하고 조정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념적 담론의 수준에서는 한국의 외환위기는 발전주의 국가의 폐해인 과도한 규제와 부패, 그리고 관료제의 무능으로 인식되는데 그쳤다.
민주화 이후 한국행정학계는 적어도 외관상 전성기를 맞는다. 학자 및 학회회원수의 증가와 더불어 주제와 방법론에서도 매우 다양해진다. 특히 지방자치 실시와 연관하여, 지방정부, NGO, 새로운 거버넌스(new governance) 등 이슈 또한 매우 다원화 된다. 그런 가운데 세계적 신자유주의 사조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특히 미국과 영국의 영향으로 신공공관리론이 급속도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반면 거시적 차원에서 세계화와 국가역할에 대한 논의는 본격화되지 않았고, 학계의 관심 수위도 낮았다. 발전국가의 부분적 해체과정에 대한 구조적 설명이나, 그에 대한 거시정책적 대응에 대해서 논란이 별로 없었다. 그런가 하면, 민주화의 이슈는 자유를 강조하는데 그쳤고, 그동안 억압되어 왔던 인권 및 기본권의 보장, 그리고 평등의 이슈는 없었다. 정치적 민주화에 있어서 참여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정권차원의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 정치적 민주화의 성숙에 따라 증가하는 시민참여의 욕구와 다양한 행정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관료제 내부적 차원에서 행정적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4. 국가재편기(1998-)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최근의 시기는 민주화 이행기에 이어 국가, 시장, 시민사회 관계에서 새로운 관계정립과 그런 가운데 국가역할을 재설정해야 하는 중요한 재편기(restructuring)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김대중 ‘국민의 정부’의 출범은 한국 정치사에서 여야간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점에서, 그리고 기존의 다른 정권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그리고 미증유의 경제위기와 IMF 차관 조건아래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불가항력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조정은 한국경제체제와 국가의 역할 변화에 대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북화해와 북핵위기,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상이라는 대외적인 측면에서도 국가의 역량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IMF라는 외부적 압력도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의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김대중 정부 역시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한국에서의 발전주의의 위기에 따른 신자유주의 수용의 큰 흐름에 한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의 경우, 이전의 정부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진보적 세력과 민중적 지지가 그 주요한 정치적 토대였기 때문에, 평등이라는 맥락에서 이전의 정권과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연관하여 김대중 정부의 국정관리에서 두드러진 것은 경제정책과 산업정책, 그리고 노동시장정책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적 접근을 하면서도, 사회복지정책에 있어서는 국가개입의 증대와 복지확대를 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적 접근은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개혁을 보상적(補償的) 복지개혁과 조합하는 방식으로, 신자유주의정책이 결과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복지개혁의 가시적 성과는 4대 국가사회보험(고용, 연금, 산재, 의료 보험)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확대적용하고, 기존의 공공부조제도를 쇄신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시한 것, 그리고 사회협약기구로 ‘노사정위원회’를 창설하여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복지개혁의 기본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나선 것 등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간 민주화의 진척으로 시민사회가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개혁과정에서 ‘참여연대’ 등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가 활발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참여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유의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에 의해 여성정책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여성부의 신설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양성평등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볼 때, 김대중 정부는 복지개혁 등을 통하여 사회경제적 내지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에 얼마간 기여하였으나, 실질적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는데 필요한 정치개혁 차원에서는 별로 기여한 바가 없다. 후자의 실패와 연관하여 간과하기 어려운 것은 김대중 정부의 정치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진보주의와 연고주의>의 이중주(二重奏)이다. 그가 추구했던 개혁정치는 이념을 실용주의적으로 발현시켜 줄 수 있는 합리주의와 결합되지 못하고 구래(舊來)의 연고주의와 접목됨으로서 소기의 결실을 맺기 어렵게 만들었다. 연고주의는 합리성의 결여로 ‘거버넌스’의 일관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개혁정치에 저항하는 수구세력 및 부정부패와 연계되어 개혁정치의 명분과 실질을 두루 훼손하게 된다.
한국의 민주화는 아직까지도 참여민주주의를 거쳐 사회민주주의로 가기에는 아직 그 여정이 멀다. 김대중 정부의 불안정 지배연합과 연고주의 속성 때문에, 사실상 성숙된 민주주의와 평등의 가치가 시민사회에 주요 어젠더로서 헤제모니를 갖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지역주의와 고질적인 후견인-고객 중심의 정치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정치개혁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제도권 내에서 참여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동력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는 진보적 성격은 쇠퇴하고 보수주의-기득권 세력의 부활을 가져온다.
그러나 보수주의-기득권세력의 부활은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가 등장함에 따라 좌절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역시, 불안정 지배연합의 연속이었고 견고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가지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의 지지세력은 이념적으로나 계급적 이해관계에서 이질적인 다양한 집단의 혼합이었다. 어떻게 보면, 노무현 정부의 집권은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지속되어온 보수주의적 지배연합의 산물인 우리 사회 전반적인 기득권층에 대한 도전의 승리였다. 그것이 노무현이라는 인물적 특성과 결합되면서 지지세력이 모아지고 보수세력의 부활을 저지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환경변화에 대한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면서 참여민주주의, 국가균형발전, 정부혁신, 동반성장론 등 새로운 국정과제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집권 직후에는 한국의 특수한 맥락에서 이념적으로 더 첨예한 한미관계, 북핵위기, 이라크 파병 등 외교, 안보적 이슈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한 정책적 이슈들은 정권 후반부로 밀려나게 된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보안법, 과거사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 등 이른바 ‘4대 입법’의 성취를 위해 전력투구를 하였다. 그들은 이들 이슈들이 실질적 민주화와 평등추구의 진보적 체제개혁을 위해 앞서서 해결해야 할 가장 절실한 과제로 여겼다. 그러나 여야간의 격돌과 국회파행 등을 거치는 등 엄청난 정치적 소모전을 치렀으나, 끝내는 소기에 목적의 일부만을 달성하는데 그쳤다. 실제로 이들 입법안들이 국정개혁을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의제였던가에 대해 이론이 있을 수 있다. 또 이들 이슈들이 처음부터 정치적, 이념적으로 갈등의 여지가 큰 예민한 의제들이었는데, 참여정부는 사회적 합의 형성을 위한 보다 정밀한 노력 없이 의식만 앞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접근하는 정치적 미숙을 연출했다.
참여정부는 저출산ㆍ고령화사회의 도래와 양극화문제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했다. 성장과 복지의 조화를 표방한 장기 계획인 <비전 2030>도 그 노력의 산물이다. 아울러 참여정부는 과거 발전주의 유산인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을 극복하기 위하여 복지를 사회적 투자(social investment)의 개념으로 제시한다. 그런 가운데, 지금까지 축소지향으로 경도된 국가역할의 재정립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양극화문제, 저출산ㆍ고령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국가재정의 증대 필요성과 국가역할을 다시 조정한다는 것이다. 전체적 균형과 현실성이 떨어지고, 정교하게 다듬어 지지 않았다는 문제점은 있으나, 참여정부는 국가재편이라는 거시적 국정과제를 가지고 힘겨운 씨름을 한 게 사실이다.
반면에 행정개혁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신공공관리론에 매우 집착한다. 특히 관리적 측면에서 성과평가와 팀제도의 도입, 인사제도의 개혁 등을 시도하면서, 다양한 관리적 측면의 신공공관리적 개혁을 통해 베버리안 관료제를 성과주의적 관리주의 관료제로 전환시키려 한다. 그리나 이러한 신공공관리론은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들을 낳고 있다. 개혁의 형식화와 베버리안 관료제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훼손시킴으로써 관료제를 정치화 시키는 것이다. 이미 신자유주의적 행정개혁을 실시하였던 선진국가들의 경험적 연구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으로 드러났다(Suleiman, 2003; ch. 10). 평등성을 강조하면서 투명하고 유능한 관료제를 가진 국가일수록 정부 및 관료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오히려 더 강하다는 점을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진보성향의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신자유주의적 행정개혁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관료제는 여전히 강한 불신의 대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관료제와 행정의 탓으로 돌리려는 정치엘리트들의 비난회피정치(blame avoidance politics) 현상이 그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 있어서도 관료제를 품에 안고 개혁을 유도하면서 그들의 전문성과 합리성을 극대화하여 활용하기 보다는, 비난회피의 대상으로 또는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사문제에 있어서도 관료제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일정수준의 정치적 임용(소위 코드인사)은 필요하나 지나친 남용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많은 개혁과제들 중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실패사례들을 통하여 우리는 개혁의 성공을 위해 정치적 영역과 행정적 영역이 만나는 접점을 슬기롭게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준다. 아울러 실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합리적 관료제와의 협조와 그들의 자발적 혁신이 성공의 전제가 된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된다. 이는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행정적 민주화’에 대한 바른 인식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현실세계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연구하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우리 행정학계의 책임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박동서 교수는 현 한국행정의 문제는 “영미의 감축관리가 급선무가 아니고, 우리의 당면과제, 국정이념에 비추어 볼 때, 법치, 권력기구의 중립화, 정책결정의 민주화를 통한 합리화 및 부패의 감축이 현 단계의 처방”이라고 제시하고 있다(박동서, 1999: 34). 한국 관료제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 그 미해결의 숙제를 외면한 채, 영미학계가 제시하는 관리기술적 처방에만 매달린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는 1950년대 정인흥 교수가 제시한 한국행정의 좌표로 제시했던 관료제의 민주화의 화두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V. 결론: 한국행정의 진로와 미래연구과제
지금까지 한국행정연구에 있어서 민주주의와 평등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이론적 논의들을 정리하고 한국행정의 경험적 차원에서 시대적 변화에 따라 민주주의와 평등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져 왔고, 어떤 문제와 한계들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검토해 보았다.
한국행정연구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한 관심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소홀히 다루어 진 게 사실이다. 그 연원을 따져 볼 때, 한편으로는 우리의 행정학이 기능주의적 관리적 차원에 초점을 더욱 둔 미국행정학을 도입한 것에도 기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적 맥락에서 발전주의 국가의 성공의 위기라는 역사적 현실에 기인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발전주의 국가 형성과정을 통해 산업화의 성공과 민주화의 초석인 베버리안 관료제의 발전을 가져온 반면, 바로 우리의 억압적 발전주의 국가의 특성 때문에 행정의 정치적 종속과 정경유착, 그리고 부패라는 부정적 현상도 함께 낳았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민주주의의 성숙과 평등의 가치와 역행하는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국가형성과정에서,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관료제와 행정의 역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이해하는데 소홀했다. 서구 유럽국가들의 경우, 역사적으로 산업화 초기에 민주화가 실현되고, 민주주의가 참여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로 성숙하면서, 민주복지국가를 만들어 냈다. 그런 가운데, 전문적이며 합리적인 베베러리안 관료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최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압력에도 점진적인 대응을 하면서, 그 근본 틀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급진적으로 도입했던 영미계통의 국가들이 초기에는 성공사례로 인식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주의와 평등의 문제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해법과 행정개혁이 지배적 담론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신자유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신화를 깰 필요가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 성숙과 평등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 더 확대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보다 더 절실한 것은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투철한 유능한 관료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주의 성숙과 행정적 민주주의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주요 행위자들의 끊임없는 문제의식과 투쟁의 결과로서 가능하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참여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로 성숙되어야 행정적 민주주의도 가능하며, 정책과 행정의 영역에서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적 적용인 민주복지국가로의 진화가 가능하다. 현재 신자유주의 세례는 하나의 신화일 뿐이며, 슬기로운 극복이 요구되며, 또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우리 행정학계에 절실한 연구과제는 한국적 맥락에서 민주주의와 행정과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연구이다. 그것 없이 민주주의의 다양한 수준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국가와 시장, 국가와 시민관계의 재정립은 가능하지 않다. 아울러 민주주의와 평등의 가치를 행정현상에 도입하기 위한 행정철학에 대한 좀 더 깊은 연구도 필요하다. 이러한 지적 노력은 한국행정 특유의 새로운 거버넌스 모형정립에 견고한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다양한 방법론과 수준, 그리고 영역에서 파편화되면서 진행되고 있는 행정학자들의 귀중한 연구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민주주의, 평등, 행정이라는 문제의식과 대안들에 대하여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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