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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사/카툰

이명현(李明賢) 교수의 세수(歲壽) 85에 붙여

2024. 8. 29. by 현강

지난 823일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세수 85를 맞아 그의 삶과 철학을 기리는 축연(祝筵)이 있었다. 그때 내가 했던 축사를 옮긴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내심 존경하는 현우(玄愚) 이명현 교수님이 85세 생신을 맞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가 뒤로한 지난 85년의 세월은 한국 현대사의 영욕이 교차한 격랑의 세월, 격동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이 교수님의 개인사도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님은 그의 굴곡진 삶의 여정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 철학계의 거목으로, 선구적 교육개혁가로,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 지성지인 <철학과 현실>의 편집인, 발행인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이 교수님의 그간의 기여와 노고에 대해 크게 치하하며, 아울러 85세 세수를 진심으로 경하(慶賀)하는 바입니다.

 

철학자, 사회 개혁가,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 지성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오신 이 교수님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키 워드는 철학과 현실의 접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현실을 외면한 철학은 공허하고, 쓸모가 떨어집니다. 그런가 하면 철학 없는 현실 개혁은 네비게이션 없는 항해처럼 무모하고 좌초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 교수님은 평생에 걸쳐 줄기차게, 그리고 한결같이 철학과 현실의 성공적 접목을 위해 애쓰셨고, 이를 통해 한국 철학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우리의 현실을 바르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개혁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저는 인생의 행로에서 이 교수님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만남은 반세기 전, 1970년대 초, 중반 두 사람의 첫 직장인 한국외국어대학에서였습니다. 그 때  손봉호 교수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은 전임 교수 7, 80명 정도의 비교적 작은 대학이었기에 비교적 자주 뵈었던 기억입니다. 그러나 이 교수님과의 더 가깝고, 보다 운명적인 만남은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과정에서였습니다.

 

‘5.31 교육개혁은 한국 교육 전반에 걸쳐 포괄적으로 작성된 최초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개혁방안으로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대역사(大役事)였습니다. 그 때 짜여진 새 판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국 교육의 기본틀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 교수님은 문민정부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5,31 교육개혁의 기본철학과 비전, 아이디어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기여를 하셨고, 이에 더하여 제 37대 교육부장관으로 이 개혁안의 집행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신한국’, ‘교육혁명’, ‘교육대통령’, ‘문명사적 전환‘5.31 교육개혁의 대표적 상징어들 대부분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이 교수님은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만드는데 주력하셨고, 불초 이 사람은 교육부장관으로서 이 교수님이 마련한 청사진을 현실 세계에 옮기는데 주로 관여하였습니다. ‘5, 31 교육개혁의 주역으로 흔히 이명현, 이미 고인인 된 박세일, 그리고 안병영을 꼽는데, 돌이켜 보아도 당시 세 사람의 케미는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협업(協業) 과정에서, 이 교수님의 미래투시력, 창의적, 조직적 사고, 그리고 건강한 현실감각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늘 사심없는 공인(公人)이었습니다. 교육개혁의 전 과정에서 그의 경세가(經世家)적 면모가 두드러졌습니다.

 

흥미있는 일은, 5,31 교육개혁를 주도한 인사들 중, 많은 이가 교육학자가 아닌, 철학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명현 교수님 이외에도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장이셨던 이석희 전 중앙대 총장님, 그리고 제 35대 박영식 교육부 장관님도 철학자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박세일 수석도 법경제학자이고, 저도 정치· 행정학자입니다. 저는 5.31 교육개혁이 미시적, 중범위적 개혁을 넘어 거시적 사회개혁적 성격을 띤 것도 이러한 인적 구성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교수님을 좋아하고 신뢰하는 이유는, 그가 매우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분이지만, 결코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이념적으로 편향된 분이 아니라, 늘 중도를 지향하는 책임있는 지식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절대허무를 넘어 다원적 사고를 지향하며,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을 추구하고, 변혁보다는 점진적 개혁을 꾀하며, 한국의 미래를 다름 아닌 교육개혁에서 찾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얼마간 마음의 설렘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교수님과 가깝고 그와 생각이나 사는 방식이 유사한 분들일 터이니 아마도 참석자들 중에 저와 가까운 옛 지인들이 꽤 있으시리라는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정년퇴직 후, 제가 올해 19년째, 강원도 고성에 가서 그간 세상과 많이 동떨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와 보니, 제 예상이 적중해서 여기서 평소에 제가 좋아하는 많은 분들과 해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무척 기쁘고, 큰 횡재를 한 기분입니다.

 

다시 한번, 이명현 교수님의 85 세수를 크게,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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