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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노트

한국교육의 성찰: 성과와 과제

2021. 7. 6. by 현강

이 글은 2021년 6월 30일, 프레스 센터에서 개최된 금강대학교 주최의 국제회의 "인공지능시대의 공공정책과 인성교육'에서 필자가 발표한 기조연설 내용이다. 

 

한국교육의 성찰: 성과와 과제

 

                                                       안병영(연세대 명예교수, 전 교육부총리)

 

1. 머리말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교육은 늘 상찬과 비판의 대상이었다. 한국교육은 특히 한국 밖에서 많은 찬사를 받아왔다. 그 대표적 관점은 우리나라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경이적인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었는데, 그 추동력은 교육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세계교육포럼에서도 각국 대표들이 한결같이 한국교육의 수월성을 크게 조명했다. 그러나 한국교육은 특히 국내에서 마치 동네북처럼 온갖 경제적, 사회적 난국을 초래한 주범으로 신랄한 공격의 표적이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인 것은, 많은 이가 우리 교육의 실패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도, 바로 그 교육이 우리 사회가 오늘의 질곡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미래 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창조의 샘이자 희망의 푯대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나나 없이 한국 국민은 교육에 나라에 명운을 걸고 있다.

올해로 가히 한국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1995‘5.31 교육개혁이 발표된 지 사반세기가 넘었다. 필자는 문민정부에서 5.31 교육개혁이 가장 세차게 진행되던 시기, 199512월에서 1월까지, 그리고 그 후 한참 뒤 참여정부 시절인 200312월부터 20051월까지 두 번 교육부 수장으로 재직했다. 필자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기서 보다 성찰적 관점에서 한국교육의 어제를 뒤돌아보고,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교육현실을 살펴본 후, 앞으로 한국교육이 추구해야 할 큰 방향을 논의하고자 한다.

구체적 논의에 앞서 교육과 교육정책에 관하여 필자의 기본 생각을 미리 피력하고자 한다. 교육은 정신적 영역을 포함하는 인간의 총체적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오래 걸리고 그 상호작용이 내면적이고 질적이다. 그 때문에 교육에서 이루어지는 투자는 투입된 자본의 회임기간이 길고, 그 결과를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교육개혁은 일관성있게 정권의 수명을 뛰어넘어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지나친 정치논리나 이념적 가치의 투입은 피해야 한다.

 

2. 5. 31 교육개혁 그리고 사반세기

20세기 말, 우리가 경험했던 변화의 격랑은 그 진폭이나 심도에 있어 실로 미증유의 것이었다. 세계화, 정보화, 지식사회화라는 이른바 문명사적 전환이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특히 우리의 경우 최초의 문민정부 탄생으로 체제 민주화의 열망이 무척 높았다.

주지하듯이, 5.31 교육개혁은 기존의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의 권위관계에 기초한 위계적, 공급자 위주의 교육체계를 자율과 경쟁, 다양화와 특성화에 기초한 수요자 중심의 열린 교육체계로 바꾸는 역사적 작업이었다. 한마디로 한국교육은 바로 이 5.31 교육개혁으로 새 판이 짜여 졌다.

5.31 교육개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적지 않은 이가 이를 시대적 변화와 도전에 대응한 성공적인 교육개혁이라고 상찬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를 신자유주의의 정화로 한국교육의 큰 흐름을 그르치게 만든 패착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5.31 교육개혁이 이후, 오늘까지의 한국교육의 큰 물줄기를 마련했다는 면에서, 그 줄기찬 생명력과 영향력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권은 미시적 차원의 수많은 교육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분절적, 대증요법적 대응이었고, 대체로 5.31 교육개혁의 큰 틀이 그대로 유지되어왔다.

5.31 교육개혁의 창안자들은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한국이 생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는 데 대체로 합의했고, 그 때문에 5.31 교육개혁의 정책지형이 시장기제의 활성화를 위한 환경조성과 이를 위한 교육의 수월성 제고에 얼마간 편향되어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5.31 교육개혁이 지닌 강점이자 그 한계이기도 하다.

5.31 교육개혁에서 비롯된 한국교육의 개혁은 적지 않은 교육적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학교환경 등 교육여건의 획기적 개선과 교육정보화의 진척, 학교민주화의 진전,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의 제고, 대학경쟁력의 강화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업적은 한국교육을 질적으로 크게 개선해서, 적어도 경쟁력의 측면에서 우리 교육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선진국에 반열에 오른 게 틀림없다.

그러나 5.31 교육개혁이 추구했던 자율과 경쟁도 이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다양화와 특성화를 통해 대학 서열구조가 완화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 역시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문민정부의 교육개혁 과제 중 성안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던 교육자치제도 개혁도 여전히 미완의 문제로 남아있다.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의 성과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식교육, 입시교육의 강고한 틀도 그대로 잔존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한국교육은 5.31 교육개혁 이후 사반세기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응어리진 뿌리 깊은 교육난제 중 어느 하나 속 시원하게 풀린 게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학벌주의와 승자독식과 같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요인과 집단의식이 크게 작용했고, 교육자치의 매개가 되어야 할 중간조직의 부재 등 외적 요인에 기인한 바도 큰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우리 교육이 그동안 과도하게 지식교육, 경쟁교육에 치중하다 보니, 학교에서 학습의 즐거움은 사라진지 오래고, 인성교육은 한갓 수사에 머물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교육의 첫 번째 목표인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데 크게 실패했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육이 오늘의 초라한 모습으로는 21세기 새 한국을 건설하는데 명분이나 역량 모두가 크게 부족하다.

그런 가운데, 크게 우려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이념적, 정치적 양극화는 계속 심화되었고, 그것이 계속 우리 교육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간 교육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못하고 계속 교착되었던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 바가 크다.

거시적 교육개혁은 주요 정치세력 간의 역사적 대타협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데 치열한 이념적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현재의 시점에서 과연 주요 교육쟁점에 관한 대타협이 가능할지 회의적인 생각이 앞선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래에서 언급하게 될 다수의 시대적 도전에 직면하면서, 이미 문제해결을 상실한 지난 시대의 제도적 유산에 그대로 매달릴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3. 한국교육에 대한 새로운 도전들

1) ‘학생절벽의 충격

인구감소와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 교육에 큰 충격을 가하고 있다. 그 직접적인 영향은 학령인구의 감소, 한마디로 학생절벽으로 나타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초. . 고에 그치지 않고 대학 입학자원의 고갈로 이어져, 신입생 모집이 어려운 대학이 급증하고 있다. 때문에 대학의 정원감축과 한계대학의 퇴출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인구증가와 지속적 경제성장에 익숙했고, 교육시스템도 인구와 경제의 성장을 전제로 하여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 교육의 작동원리(modus vivendi)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팽창지향의 교육체제로부터 감축 관리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줄어드는 인적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인적자원 관리체제를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들과 퇴출의 운명을 맞는 한계대학의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도 함께 기억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2) 4차 산업혁명의 도전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으로 표상되는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증유의 격랑과 만나고 있다. 그것이 비록 지식정보사회의 연장이라고 하나, 그 충격, 규모와 범위, 그리고 복합성에 있어 미증유의 혁명적 변화, 이른바 기하급수적 (exponential)’ 변화를 내포하고 있어, 우리가 살고, 일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 기술은 단지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단계를 넘어 인간의 삶의 일부로 편입되는 포스트 휴먼(post-human)’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그런 맥락에서 어떤 이는 아예 인간-기계 복합체인 로보 사피엔스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의식적 주체로서의 인간존재 내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자아내게 할 것이다. 20세기 초, 인간소외가 크게 이슈화 되었으나, 이제 인류는 보다 본질적으로 인간성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파괴적 쇄신(disruptive innovation)을 수반하는 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의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많은 미래 조망과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워낙 불가측한 측면이 많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고, 바로 그러한 점이 우리에게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더 키우고 있다.

포스트 휴먼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불가피하게 로봇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부여하는 일을 수행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들을 인간의 수행능력 보다 월등한 AI, 기계 내지 장치에게 위임하려는 욕구와 필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로봇에게 위임하고, 무엇을 대체할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다 도덕적책임에 부합되는 것이냐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의 역할이 증가하게 되면 생산성과 효율성의 차원에서 놀라운 성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인간의 능력을 크게 확장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에 의한 노동자의 대체, 이른바 테크놀로지의 덫때문에 자동화가 용이한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크게 위협할 것이다. 이에 따라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은 더 심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함께 다짐해야 할 것은, 미래의 충격과 도전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보다 능동적(proactive)으로 그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4차 산업혁명의 담론이 기술결정론의 틀에서 맴돌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과 사회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진행되는 일대 사회혁명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변화과정을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기능적, 규범적, 분배적, 제도적 맥락에서 면밀하게 설계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가장 앞자리에 서는그런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칫 기계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대체하고 세상에 휴머니즘이 사라지는 디스토피아(dystopia)’로 전락될 수 있는 심대한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바야흐로 인공지능시대에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할가. 또 그들이 그들이 갖춰야 할 역량을 무엇인가.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한 최상의 학습형태와 핵심 커리큐럼은 무엇인가. 아울러 4차 산업혁명과 연관하여, 학교, 그리고 교사의 역할과 교사양성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요즈음 창의적 융복합 인재양성이라는 인재상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융합의 최적화, STEAM(Science, Technologyy, Engineering, Art, Mathamatics) 학습을 통한 교과 간 융합, 그리고 정보통신기술과 교육의 융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대체로 시대적 흐름에 잘 부합되는 것이나, 교육을 지나치게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수단화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 덧붙여 우리 사회의 인간화라는 보다 본질적 목표에 대한 성찰과 지향을 교육과정에 투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그동안 교육정보화의 초기 과정에서 발 빠른 대응으로 선도적 위치를 선점하여 많은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IT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대학은 AI 교육에서 뒤져있어 우리의 선구적 위치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다른 주요 선진국들이 한결같이 AI 교육의 새 판을 짜는데 올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의적 융복합’ + ‘인간화교육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3) ‘코로나 이후’ ‘뉴노멀시대의 도래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팬데믹은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학습기회를 상실했고, 그 와중에서 학생들 간의 학력격차가 더 벌어지는가 하면, 사회적 관계가 소원해지는 등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상 처음으로 개학연기와 온라인 위주의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교 교육의 본질과 그 변화양상을 보다 되고 성찰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최근 팬데믹 이후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에 대한 논의가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코로나 19가 역설적으로 미래 교육을 크게 앞당겼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교사중심 지식전달 위주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머물렀던 교육현장에서 몇 가지 두드러진 변화가 태동하고 있다.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이 혼합된 블랜디드(blended) 수업이 일상화되고, 교사의 역할이 종래의 ‘ teaching’ 위주에서 ‘coaching’으로 바뀌며,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학습이 주류가 조짐이 보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학습자 중심 자기주도 교육이 정착될 것이 전망되고 있다.

무엇보다 팬데믹으로 인한 가시적인 변화의 하나는 학교현장에 IT 기술 등을 접목한 교육이 확산되면서 에듀테크(Education+Technology)’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디지털의 고도화, 가속화 과정에서 학교가 기술의존적 장치로 전락하지 않고, 학습자 중심의 자기주도 교육의 요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사는 학생 개개인에 내재하는 자유의지와 창조적 자아를 최대한으로 발양할 수 있도록 전인교육의 관점에서 보다 주체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4. 한국교육의 미래 과제

1) ‘이념화’, ‘정치화의 지양

이미 위에서 지적했듯이, 한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념적 대결이 심화되면, 진보와 보수는 교조주의의 수렁에 빠져 흑백논리진리독점을 꾀하게 되고, ‘진영화가 깊숙이 진행되어 양측은 적과 동지로 갈라져 주요 이슈마다 격돌하고 정국은 교착되어 문제해결 능력이 실종된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교육 이슈의 경우 이념화’,‘정치화의 정도가 특히 두드러진다.

한국은 1987년 이후 정치적 민주화의 진척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아래서 정치가 행정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현상이 이미 상례화 되었다, 관료제의 과도한 정치화는 관료제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해치고, 이는 필경 그 정책역량 자체를 약화시킨다. 거시적 교육개혁의 틀이 마련된다 해도, 이를 책임지고 공정하게 집행할 관료제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실효성있는 교육개혁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거시적 차원의 교육개혁을 시도하는 경우, 그 성공의 가장 주요한 열쇠는 정치권이 교육의 정치화’,‘이념화를 자제하고, 국리민복을 위해 교육을 정치의 도구로 삼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다.

2)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와 균형

교육개혁의 규범적, 정책적 기조를 논의할 때, 늘 등장하는 개념이 수월성과 형평성이다. 보수 정권은 수월성 위주의 교육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며, 보수정권은 상대적으로 형평성을 중시하는 정책을 표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념적 성향이 짙은 정권일수록 그 편향의 정도가 강하다.

수월성과 형평성의 이러한 대조적 특성 때문에 많은 이가 양자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양자택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수월성과 형평성은 본질적으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교육적 가치다. 따라서 둘의 관계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과 조화의 관계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교육레짐은 어차피 정책조합(policy mix)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3) ‘공존상생의 가치의 재인식

지난 세기말, 많은 이들은 시장기제의 활성화와 경쟁력 제고를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는데 크게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7IMF 구제금융과 2008년 세계적 규모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점차 많은 이들이 협력’, ‘나눔경제’ ‘협력적 공유체계(Jeremy Lifkin)’, 깨어있는 자본주의(John Machey), ‘공유의 비극을 넘어’(E. Ostrom) 같은 학자도 한결같이 공동체의 회복을 통한 자본주의의 한계 극복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근 제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로 미래사회에 대한 불확실성과 더불어 사회적 불평등과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의 심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 교육의 큰 방향도 시장기제의 활성화라는 기존의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영역에서 시장화와 테크놀로지의 심화가 가져올 어두운 그림자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쪽을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우리 사회의 양극화, 학력의 세습화, 사회계층의 낮은 이동성 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4) 인성교육의 강화

세계경제포럼이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를 통해 발표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주요한 10대 역량(복합문제 해결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력, 인적자원 관리능력, 협업능력, 감성능력, 판단 및 의사결정능력, 서비스 지향성, 협상능력, 인지적 유연력)을 살펴보면, 그 모든 것이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과 연관된다. 특히 인성교육은 디지털 문명이 우리의 삶터를 디스토피아로 전락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 구실을 할 것으로 본다.

필자는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의 본질은 공감능력의 제고하고 생각한다.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배려, 협력, 돌봄, 상생의 정신을 실천하고, 우리사회를 공동체화, 인간화하는 데 기여한다. 공감능력은 또한 모든 상상력의 원천이며, 창조의 샘이다. 그러므로 공감능력의 배양을 통해 인성과 창의성이 바르게 만나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꾸는 미래교육은 그간 소홀히 했던 상생가치와 공감능력의 제고에 더 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미래사회에서 추구해야 할 최상의 기능으로 정서적 지능(emotional intelligence)’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제4차 산업혁명이 수반하는 주요 문제점들, 즉 로봇에게 윤리적 기준을 부여하는 일, 로봇에게 위임할 것과 대체할 것을 결정하는 일, 그와 연관된 도덕적 책임을 따지는 일, 그리고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보다 본질적으로 논의하고, 그에 대해 적절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에듀테크로 무장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이에 더하여 인성교육이 필수적으로 큰 몫을 보태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가 몰고 올 사회적 불평등 문제와 학생절벽문제를 보다 인간답게 해결하는데도 인성교육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주요한 인성교육이 왜 그동안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성교육은 그때그때 시대가 절박하게 요구하는 개혁과제들에게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렸다. 5.31 교육개혁 방안 중에도 인성교육과 연관되는 개혁과제들이 적지 않았다. . 중등교육에서 학교공동체를 강조했던 것도 그 예이다. 그러나 그 과제는 학교 교육현장에서 교육정보화라는 보다 절박하고, 기능적으로 접근 가능한 개혁과제에 크게 밀렸다. 4차 산업혁명에서도 인성교육 강화는 필경 에듀테크의 거센 파고를 넘기 힘들 것이다.

또한 인성교육은 실제로 학교현장에서 지식교육, 입시교육, 그리고 지위경쟁이라는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그 필요성과 인식수준에 비해 실천수준이 낮고, 수사(修辭)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 인성교육이 그 실천과정에서 크게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오랜 투자와 회임기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정책 성공을 위해서는 정권의 수명을 넘어 지속되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그 밖에도 인성교육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적 프로그램으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인성교육은 대체로 지(知)ㆍ정(情)ㆍ의(意)가 조화롭게 도야된 전인(全人)을 추구하는데, 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적절히 추출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성과를 측정하기는 더 어렵다. 따라서 인성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도있는 이론연구와 더불어 실효성 있는 사례 분석이 필요하다. 아울러 직접 인성교육에 나서기보다는 교육복지 등을 통한 우회로를 통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도 정책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인성교육은 이처럼 공공정책화, 프로그램화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그것이 보다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이 이슈가 사회적 담론에 그치지 말고,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5. 결론

우리가 한국교육의 오랜 숙제들, 즉 지식교육, 입시교육, ‘지위경쟁등과 더불어 새로이 대두되는 주요 도전들, 즉 제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이후’ ‘뉴노멀’, ‘학생절벽등에 바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차원의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새 거시적 교육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이념화’, ‘정치화의 지양,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 ‘공존상생가치의 재인식, 그리고 인성교육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여기서는 특히 제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 사회가 디스토피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효성있는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아들러(A. Adler)는 인성교육의 요체로 공동체 감정(Gemeinschaftsgefuehl)’을 강조하면서, 이의 발현을 위해서는 적절한 지도와 훈련을 통한 의식적인 개발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성교육은 비단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 사회구성원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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