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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사/카툰

서평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

2018. 12. 5. by 현강

<한국행정학회보>(2018, 제52권 제3호)에 실린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서평을 옮긴다.

 

 

서평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 안병영·정무권·신동면·양재진 저.

서울: 다산출판사. 2018. 648쪽. 34,000원. ISBN: 978-89-7110-557-3.

김태일(고려대 교수)

 

복지정책을 가르치는 학자들은 좋은 우리말 교과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물론 좋은 우리말 교과서가 필요한 것은 다른 사회과학 분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복지정책은 특히 필요성이 큰 몇몇 분야 중 하나다. ‘정책’을 다루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경우 ‘맨큐의 경제학’이 거의 전 세계 대학의 경제원론을 평정했다. 자연과학이나 공학만큼은 아니라도 주류 경제 이론은 자본주의 국가라면 전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기 때문이며, 경제원론은 90% 이상은 범용 이론을 다루고 극히 일부만 현실을 다루기 때문이다.

 

정책학은 다르다. 정책에는 개별 국가·사회의 특성이 깊이 배어있다. 그래서 이론을 논의할 때도 개별 국가·사회의 맥락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에 더하여 각 국가·사회의 사례가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정책학’ 자체가 아닌 분야별 정책에 대한 원론이라면 더욱 그렇다(그런 면에서는 행정학도 마찬가지다).

복지정책은 학제적인(interdisciplinary) 분야다. ‘복지’라는 영역 자체도 학제적인데 여기에 정책이 덧붙여져서 더욱 학제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래서 복지정책 교과서 집필에는 특정 분과학문만을 공부한 학자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학자가 좀 더 적합할 수 있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행정학과에는 복지 관련해서 딱 두 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복지국가론’과 ‘복지정책론’이다. 행정학과에서 복지를 논의한다면 이 둘이 기본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복지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특히 행정·정책학에 뿌리를 두고 복지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20세기 이후 자본주의 국가는 복지국가다. 복지는 정부 지출항목 중 압도적인 1위이며, 행정학의 핵심 이슈인 ‘큰 국가 vs, 작은 국가’도 근본적으로 복지 정책을 두고 벌이는 논쟁이다.

 

신간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은 이상에서 내가 말한 특성들을 모두 갖춘 복지정책의 원론서이다. 복지국가 논의로 시작해서 복지정책으로 마무리하는데, 일반 이론과 함께 ‘한국’의 특성과 사례를 충실히 소개하고 있는데다가, 사회복지학, 정치학, 정책학 등 각 학문의 장점들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이 책은 총 4부로 이뤄져 있다. 2개 챕터로 이뤄진 1부는 복지정책이란 무엇인가, 즉 복지정책의 개념과 철학을 다루고 있다. 어느 분야든 원론이라면 해당 학문의 개념 정의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 복지 정책은 다른 분야보다 특히 개념 정의와 밑바탕에 깔린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선별인가 보편인가, 시장이냐 정부(복지)냐 등 복지 정책의 방향에 대한 논쟁이 팽배한데, 이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갖는 데는 복지정책의 개념과 철학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4개 챕터로 이뤄진 2부는 복지국가의 이론과 역사를 다루고 있다. 먼저 서구 복지국가의 형성 과정을 설명한 후, 이를 바탕으로 복지국가의 핵심 이론인 복지국가 유형론과 복지자본주의의 정치경제를 논의한다. 그다음에 한국 복지국가의 형성 과정과 현재 모습을 설명한다. 이러한 2부의 내용은 ‘복지국가’ 원론이 담아야 할 핵심내용들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복지정책의 개념과 철학을 알고 복지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을 갖췄으면, 이제 복지정책을 배울 준비가 된 셈이다. 이어지는 3부와 4부는 복지정책을 설명한다. 복지정책을 배우는 데도 순서가 있다. 복지정책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이해한 후에 개별 복지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5개 챕터로 이뤄진 3부는 복지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일반 이론을 다루고 역시 5개 챕터로 이뤄진 4부는 개별 복지정책의 실제를 다룬다.

전술했듯 1부에서 이미 복지정책의 개념과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3부에서 다루는 ‘복지정책이 무엇인가’는 1부에서 쌓은 지식의 바탕 위에 구체적인 복지정책의 체계, 과정, 구성요소를 설명한다. 3부의 시작인 7장은 복지정책의 체계와 과정을 설명한다. 정책 형성 및 정책 과정에 관한 정책이론을 복지라는 특성에 맞춰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책에 대한 일반지식을 갖추도록 한 다음, 이어지는 챕터들에서는 복지정책의 구성요소를 하나씩 설명한다. 복지정책은 정부 ‘재정’을 재원으로 정책 ‘대상자’에게 현금 또는 서비스 ‘급여’를 ‘전달’하는 것이다. 즉 복지정책은 대상자, 급여, 전달체계, 재정으로 이뤄진다. 각 구성요소 중 대상자는 8장, 급여는 9장, 전달체계는 10장, 재정은 11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복지국가부터 복지정책 이론까지의 여정을 지나오면 마침내 4부에서 한국의 개별 복지정책과 맞닥뜨리게 된다. 4부의 12장과 13장은 각각 핵심적인 사회보험인 건강보험과 연금을 설명한다. 이어지는 14장에서는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아울러 이와 밀접히 관련된 적극적 노동정책을 설명한다. 15장은 사회서비스를 다룬다. 대표적인 사회서비스인 보육 및 장기요양과 함께, 오늘날 점점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평생학습을 설명한다. 가장 오래된 복지정책인 공공부조는 마지막 장인 16장에서 다뤄진다. 이 책은 16장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 5쪽에 걸친 에필로그로서 한국 복지국가의 현실을 평가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면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내용을 소개했으니, 이제는 이 책의 장점을 얘기할 차례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원론 역할에 충실하면서 각 챕터의 내용이 매우 단단하다는 점이다. 원론은 개론과 다르고 각론과도 구별된다. 개론은 입문자에게 해당 학문이 무엇인가를 소개하는 것이고 각론은 세부 분야의 내용을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이에 비해 원론의 역할은 해당 학문의 내용을 폭넓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역할에 충실하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특정 학문의 세세한 분야를 모두 꿰고 있기는 힘들다. 그래서 단독으로 원론을 집필하 아무래도 다소는 약한 챕터가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다르다. 각자가 단독 집필해도 모자람이 없는 쟁쟁한 학자들이, 특히 자신 있는 분야들을 나눠서 집필했다. 그런 만큼 모든 챕터의 내용이 충실하다. 다른 원론 책에서는 찾기 힘든 미덕이다. 이 책의 출간사에서 저자들은 “독자들이 곁에 두고 복지 문제가 궁금해질 때마다 맨 먼저 들춰보는 책”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러한 저자들의 의도가 십분 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이 책의 아쉬운 점을 얘기해 보자. 모든 챕터의 내용이 충실하다는 것은 공동저술이기에 가능한 장점이다. 하지만 공동저술은 아무래도 일관성 측면에서는 약점이 되기 마련이다. 저자들과 긴 시간 교류해온 나로서는 각 챕터를 읽을 때마다 누가 썼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챕터마다 글쓴이의 개성이 분명히 드러났다. 각자의 개성이 담겼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며, 서로를 비교하며 음미하는 것은 나름의 책 읽는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복지정책 원론을 배우는 학생에게는 어려움이 될 수 있다. 어떤 챕터들은 논문처럼 저자의 주장이 또렷이 담겨있다. 또 어떤 챕터들은 짧은 지면 속에 많은 이론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미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글쓴이의 논의를 충실히 따라가기에 버거운 경우가 있다.

아울러 각자가 분담해서 쓴 것을 모아놓다 보니 챕터들의 연결에 미진한 부분이 다소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번에 보완하기를 바라는 것 두 가지를 언급하자. 하나는 4부에서 개별 복지정책을 하나씩 설명하기 전에 개별 사회복지 정책이 무엇이며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고 또 다른 정책들과는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에 대한 개괄적인 모습을 그려주는 것이다. 통상 한국의 사회복지정책은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공공부조로 이뤄진 것으로 이해한다. 이들이 바로 4부에서 다루는 개별 정책들이다. 이 정책들은 각각 배경, 목적, 특성이 다르다. 그래서 3부에서 다루는 대상자, 급여, 전달체계, 재정이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4부의 개별 정책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각 정책이 왜 어떻게 다른지를 종합적으로 논의한다면 한층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다. 혹은 3부의 대상자, 급여, 전달체계, 재정 챕터에서 각 정책영역별(사회보험, 사회서비스, 공공부조) 차이를 설명하고 있으므로 아예 3부의

앞부분에서 사회복지정책을 구성하는 개별 복지정책들을 개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보다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이다. 복지정책은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으로 나왔다. 산업사회의 구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보험과 공공부조가 나왔고, 탈산업사회의 신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서비스가 나왔다. 따라서 복지정책을 이해하려면 ‘사회적 위험’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이 책에서도 전반에 걸쳐 사회적 위험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위험’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1장에서 아주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가 좀 더 길게 그리고 친절하게 이뤄진다면 한결 이 책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음으로 아쉬운 점은 아니나 희망 사항을 하나 덧붙이고 싶다. 에필로그의 확장이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저자들 스스로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인데, 복지국가 한국의 진단과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복지국가와 복지정책을 다루는 교과서라면 마땅히 마무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 간략하다. 이 책이 겨냥하는 독자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야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이니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듣는다. 그러나 대학생이나 일반인 독자들은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저자들이 복지국가 한국에 대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면, 이해하기 쉽도록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2판에서는 에필로그의 분량이 길어지길 희망한다.

 

이제 이 책의 저자들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마무리하자. 이 책은 안병영, 정무권, 신동면, 양재진 교수가 집필했다. 정무권, 신동면, 양재진 교수는 행정학 분야에서, 아니 분야를 한정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가장 진지하게 복지국가와 복지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를 꼽으라면 모두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분들이다(이 분야 전공자라면 틀림없이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학자는 모두 안병영 교수님의 제자다. 행정·정책학 분야에서 복지를 연구하는 40대 이상 학자들의 태반은 직간접으로 안병영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교편을 잡기까지 안병영 교수님과 아무런 인연이 없던 나조차도, 그 이후 지금까지 복지정책을 연구하면서 안 교수님과 제자들이 만든 연구모임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다(정무권, 신동면, 양재진 교수는 모두 이 연구모임의 회장직을 맡았거나 맡고 있다). ‘복지국가와 복지정책’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와 중진 학자 넷이 뜻을 모아서 한 권의 원론을 저술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학계의 기쁜 일이고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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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심분야는 복지, 재정, 그리고 양적 정책분석 방법론이다. 최근 저서로는 사회과학을 위한 통계학(2018), 한국경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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