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2017년 12월 2일 영남대학교에서 열린 교육정치학회 연차 학술대회에서 필자가 행한 기조강연 내용이다.

 

 

필자는 정치학 및 행정학을 전공한 학자이며, 두 번 (1995.12-1997.8, 2003.12-2005.1) 교육부 수장으로 국정에 참여한 바 있다. 첫 번째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김영삼 문민정부 때였고, 두 번째는 진보적인 노무현 참여정부 때이었다. 여기서는 필자의 학문적 바탕과 두 번의 장관직 경험을 중심으로 이 주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I. 정치와 행정의 상호관계

 

1. 정치와 행정

정치는 권력과 영향력의 행사와 연관되는 영역으로 주로 거시적 목표를 설정하거나 주요한 가치배분을 결정하는 가치개입적 행위를 일컫는다. 또한 정치는 흔히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민주성을 확보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정치는 주로 정치인의 행동영역에 속하며, 정치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 행정은 설정된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집행과정 내지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가치중립적 행위로 이해된다. 행정은 주로 관료들에 의해 수행되며, 사실판단과 관리기능을 중시하고 능률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관점에서 행정은 기술적 합리성 내지 경제적 합리성 혹은 관료제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시간개념과 정책수준, 그리고 정책과정과 연관하여 볼 때, 정치는 대체로 장기적 조망에서 국민전체의 이해관계 내지 국가의 총체적 목표 설정과 연관되는 거시적 정책을 다루며, 정책과정에서 의제형성과 정책결정에 크게 관여한다. 이에 반해 행정은 보다 중단기적 조망에서 정책수단과 관계되는 중범위 정책이나 이들 수단들의 구체적 설정에 관계되는 미시적 정책형성에 주로 개입하며, 정책과정에 두루 관여하나, 정책집행을 본령으로 하는 것으로 좁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정치와 행정은 논리적으로 서로 구분되며, 양자는 각기 독자적 역할과 고유의 기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와 행정은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누어지기 보다는 연속관계 내지 중첩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실적으로 고위관료는 가치선택 등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며, 실제로 거시적 정책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행정 내지 관료제는 정치가 결정한 목적을 수행하는 중립적, 몰가치적 수단으로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따른다. 같은 맥락에서 행정은 단순히 경제적 관점이 부각되는 기술적 합리성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이나 형평성, 공정성과 같은 정치사회적 합리성도 함께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며(변기용외, 2017), 이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수용된다. 그러므로 실제로 행정과정은 정치과정과 중복되며, 행정계층제의 위로 올라 갈수록 양자의 관계는 밀착되며, 상호 포용적이다.

 

정치와 행정은 시대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그 관계가 변화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양자가 얼마간 서로의 독자적 역할과 기능을 인정하며, 국익의 관점에서 상호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 행정을 과도하게 압도하여 합리적 정책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율성과 중립성이 훼손되어서는 안 되며, 반대로 행정의 독자성, 주도성이 지나쳐서 민주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의 역할을 크게 잠식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와 행정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양자 간, 그리고 정치적 합리성과 (광의의) 기술적 합리성 간의 조화와 균형이다.

현대정치는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행정은 관료제를 통하여 구현된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정치와 행정의 문제를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문제로 환원하여 양자 간의 관계를 이론적, 역사적 관점에서 재론하고자 한다.

 

2. 민주주의와 관료제

관료제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기위해 필요 불가결한 존재이면서, 아울러 위협적인 존재이다. 관료제는 마땅히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들의 통제하에 있어야 하나, 다른 한편 얼마간 그 통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관료제는 정책형성과정에 깊숙이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비정치적이어야 한다. 이는 관료제가 정치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항용 정치. 행정 일원론을 주장하면서도 관료제의 정치적 중립성을 외면할 수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Etzioni-Halevy, 1983). 이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료제에 대한 적절한 정치적 통제와 더불어 관료제의 정체성 확립과 정책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지속적 노력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베버에 있어 관료제는 근대화와 더불어 진행되는 ‘합리화 과정’의 사회적 표현이다. 베버는 관료제의 ‘합리성’에 크게 천착하였으나, 그에 못지않게 관료제의 팽대와 여기서 비롯되는 ‘관료제의 자율성(autonomy of bureaucracy)'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서구 여러 나라들은 초기 베버리언 관료제가 정착되는 시기에 정치적 위임자로부터 관료제의 이탈과 전횡을 막기 위해 통제기제를 마련했다. 영국은 일찍이 의회를 통해, 미국은 잭소니언(Jacksonian) 민주주의를 통해, 그리고 독일은 엄격한 법치행정을 통해 관료제를 통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효율적인 정책집행을 할 수 있는 관료제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관료제에 대한 지나친 정치개입을 막고 관료제의 전문성과 능률,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제고하기 위해 또 한 차례 개혁을 단행했다. 영국은 1850년대 Fulton Report를 통해 실적주의를 정착시켰고, 미국은 1883년 Pendleton Act의 제정을 통해 엽관주의의 폐해를 극복했다. 한편 독일은 비교적 일찍 프러시아 전통을 바탕으로 법치주의적 베버리언 관료제가 확립되었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정치권력과 관료제 간의 갈등조정과 적절한 관계설정을 위한 제도적 틀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오랜 기간 동안 반민주적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국가 주도로 산업화를 이룩한 발전국가의 경우, 행정은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에 예속된 가운데, 그 비호와 정치부재(政治不在)의 상황아래서 지나친 팽대를 경험했을 뿐, 민주적 통제나 관료제의 정체성을 갖추기 위한 역사적 갈등조정의 계기가 없었다. 따라서 한국형 베버리언 관료제는 경이적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보면 치유하기 어려운 결손을 남겼다. 한국 관료제에 각인된 권위주의적 특성, 정경유착, 후견주의, 부정과 부패 등도 다 이 시대의 역사적 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형성 및 산업화과정에서 형성된 한국의 강력하고 유능한 베버리언 관료제는 훗날 안정된 민주화의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해법과 행정개혁이 지배적 담론으로 등장했다. 이 새로운 흐름의 표상인 ‘신행정관리’(New Public Management, NPS)의 핵심개념은 ‘관리주의’(management)다. 이는 구조적 유연성, 과정과 성과, 경쟁과 능률, 고객정향 등 일견 가치중립적이고 기술관리적인 접근의 인상을 준다. 그러나 모든 정부혁신이 그렇듯이 NPM은 정치적 함의가 짙어서, 공익을 추구하는 집합적 규범을 시장의 규범으로 대체하고, 공적 영역의 지속적 감축과 공적기능의 사적기능으로의 이관을 꾀하며, 시민들의 고객화, 원자화를 지향한다. NPM이 집요하게 베버리언 관료제에 맹공을 퍼붓는 것도 이러한 ‘관료제 부수기(dismantling bueaucracy)'를 위한 것이며, 이는 자칫 ‘민주주의 부수기(dismantling democracy)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피력되고 있다(Suleiman, 2003).

 

관료제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감안할 때, 관료제의 쇄신의 필요성과 NPM의 지향이 일치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화시대에 신자유주의적 처방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신화는 깰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라에 따라 그 적실성에 대한 보다 치밀한 검토와 검증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경우, 오랜 발전국가의 유산 때문에 정치권력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장치도 마련되지 못한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무비판적 수용은, 국가능력의 요람인 베버리언 관료제마저 흔들어 민주주의의 기반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비슷한 시기에 서구에서는 관료제의 ‘탈(脫)전문화와 정치화(deprofessionalization and politicization)’ 현상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영국을 예로 할 때, 전통적으로 관료의 헌법적 지위는 ‘자문’하는 것이고, 정치인인 장관은 ‘결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책결정과정에서 장관의 전문관료제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79-1997년간 보수당 정부하에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특히 대처수상은 부처의 세세한 정책까지 관여하였고, 관료들은 점차 그들의 역할을 정책분석가로부터 단순한 집행자로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을 비롯한 많은 유럽국가로 확산되어 전문관료제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관료제의 탈전문화와 정치화 현상은 얼핏 국민이 위임한 정치기구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관료제의 지나친 정치화는 관료제가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적, 중립적 능력을 약화시키고, 행정을 일방적으로 정치에 예속시킨다는 점에서 킨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바가 크다. 엽관주의와 실적주의의 역사를 두루 거치고, 관료제의 중립과 ‘정치로부터 해방’의 시대까지 고르게 호홉한 서구의 경우에는 정상(頂上) 관료제의 정치화가 체제위협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권의 절대권력 아래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 뿌리가 취약한 한국과 같은 후발 민주주의의 경우, 관료제의 정치화는 자칫 행정의 민주화에 앞서, 행정의 권력 예속으로 유도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우리의 경우, 1987년 이후 민주주의의 길목에 들어섰다. 이후 정치적 민주화의 진척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정치가 행정을 압도하는 양상은 지속되었다. 대체로 최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를 얼마간 예외로 하면, 역대 정부의 관료제에 대한 정치화 시도는 계속 강화되었다. “청와대만 보이고 내각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세평이 바로 이를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 관료제의 정체성 확립과 민주화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정치와 행정 간의 상호관계는 태생적으로 보완과 갈등의 측면을 함축한다.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예속화하기 보다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양자 간의 협력과 보완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표출되는 갈등은 조정을 통해서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양자 간에는 적정수준의 창조적 긴장 내지 생산적 긴장이 바람직하다.

 

II. 장관과 정책환경

한국의 장관은 정치와 행정이 만나는 접점에 있다. 장관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대통령의 대리인으로서 대통령의 정치적 비전과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그를 보좌하며, 국정 전반에 걸친, 그리고 소관 영역의 정책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아울러 장관은 국회, 정당, 이익집단 및 시민사회 등을 상대로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조정과 중재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해당 부처의 수장으로서 부처내의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을 주도하며, 조직, 인사 및 예산을 총괄 관리하는 등 민간기업체의 CEO 와 유사한 행정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장관은 이렇듯, 이중역할, 즉 정치가의 역할과 행정가로서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장관은 실제로 행정부처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에 더 역점을 두며, 그런 맥락에서 부처 관료제를 대표해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에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장관마다 차이가 있으나, 필자는 정치적 역할보다, 관료제의 정상으로서의 구실에 더 역점을 두었다.

 

장관의 역할을 일응 정책과 연관하여 이해할 때, 그의 정책환경은 복잡하고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우선 그의 일차적 관심사는 자신의 소관부처, 즉 자신 휘하의 관료제이며, 그 구성원이다. 그런가 하면 핵심집행부(core executive) 내의 대통령-청와대, 국무총리와 유관 부처 및 그 장관들이 그의 중요한 상대역이다. 이밖에 국회, 정당을 비롯하여 각종 이익집단, 언론 및 시민사회 및 국민으로 이어지는 무수한 정책참여 주체들이 있다. 주요 정책은 이들 주요 행위자들 간의 구조화된 네트워크와 그들 간의 상호작용를 통해 형성되고 집행된다.

 

정부 부처의 장관이 주도하는 대부분의 중범위 수준의 정책들은 흔히 이러한 정책네트워크를 통해 발굴되고 검토된 정책 아이디어가 주관 부서의 정책수단 검토를 거쳐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이 결합된 정책방안의 형태로 다듬어져 입안되고 공청회 등을 통해 장관의 주도로 공식적인 정책으로 추진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정기오는 이를 방안주도적(Option-driven) 정책과정이라고 명명한다(정기오, 2011).

 

1987년 6월 민주항쟁이후 민주주의 이행이 시작된 이후, 한국의 정책과정은 크게 변화했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별로 구실을 못하던, 국회와 정당, 이익집단 및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운신의 폭이 크게 확대되었다. 또한 민주화가 진척됨에 따라 정책과정은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에 비해, 장기화, 복잡화, 동태화되었고, 사회전체적으로 민의수렴 내지 사회적 합의과정이 크게 확장되고 있다. 관료정치(bureaucratic politics) 양상이 두드러지는가 하면, 이른바 ‘철의 삼각(Iron Triangle)로 불리는 행정부처-국회상임위원회-이익집단 간 삼각축, 행정부처-이익집단 간의 2각축이 부각되며, 정책과정에서 이익집단 및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한편 장관은 정책과정 내에서 이들 다수의 정책참여자들의 정책성향을 면밀히 분석하여, 가능한 한 다수의 ’우군(友軍)‘을 모아,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의 입지를 견고하게 만드는데 최선을 다한다.

 

필자가 그 동안 국장급 이상 고위관료들과 많은 면담들 해 본 결과, 장관의 정책환경 속에서 다양한 상대역 중, 부처의 정책결정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대통령/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언론이었다. 국회는 정책의 입법화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며, 정치의 표상으로서 민의를 대변하며 행정을 감시, 견제한다. 국회는 민주화의 진척과 더불어 그 위상이 크게 제고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정당의 이념적, 정책적 정체성이 뚜렷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회의 정책논의는 지리멸렬한 경향이 두드러지며, 의원들이 사적 이익에 집착하거나 이익집단의 로비에 포획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언론은 정책의 이슈화 단계에서 그 구실이 두드러지나, 실제로 오늘과 같은 열린사회에서 정책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정책네트워크 중에서 정부 내의 정책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적 참여자는 대통령/청와대, 장관, 그리고 부처내의 고위관료이다. 이른바 핵심집행부인 이들 3자 간의 동태적 관계는 정책과정, 특히 그 가장 중요한 단계인 의제설정단계와 대안모색단계의 중심고리이다. 따라서 정책과정에서 정치와 행정 간의 상호관계의 조명을 위해 아래에서 이들 간의 역학관계를 보다 깊숙이 논의하고자 한다.

 

III. 핵심집행부의 역학관계

우선 대통령은 행정수반으로 정부안에 최고 의사결정자다. 한국의 정책과정에서 현직 대통령은 실로 어떤 참여자와도 비견할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구사한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최근 자주 ‘제왕적’ 대통령제가 쟁점화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부처수준의 장관영역에 자주, 그리고 깊이 관여하는 경우, 장관의 정책자율성은 크게 제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통령도 모든 정책과정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수반인 그도 시간과 정보의 한계, 인적, 물적 그리고 제도적 제약 속에서 선택적 개입을 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은 또한 일의 수행과정에서 그 비서실의 보좌를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의 보좌진은 대통령의 인격적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장관은 독립행정관청으로서 소관 업무에 연관되는 정책결정과정에서 핵심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통령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국무회의, 크고 작은 청와대행사나 관계장관회의 등을 통하여 장관이 대통령과 대면하는 기회는 잦은 편이나, 실제로 ‘독대’(獨對) 등을 통하여 대통령과 자유로운 쌍방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므로 장관은 대개의 경우, 청와대의 관계 수석의 매개를 통하여 대통령의 뜻을 전해 듣고, 또 그를 통해 자신의 정책의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 때문에 장관과 수석간의 정책적, 인간적 친화성, 그리고 일에 대한 교감의 정도는 무척 중요하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하기는 장관과 수석이 규범적 동지가 되는 것이다. 반면, 장관과 수석 간에 긴장과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 정책결정자로서 장관의 입장은 곤혹스러워진다.

 

부처 차원의 정책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존재는 장관과 고위관료이다. 장관은 보다 큰 목표를 지향하고, 변화추구적 성향이 강한데 비해, 고위관료들은 그들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점진적, 현상유지적 성향이 강하며 부처의 이해관계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양자 간에는 잠재적 갈등요인은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장관은 부처수장으로서의 권위와 정당성, 정치적 연립능력, 미디어에의 접근 용이성, 대안적(代案的) 자문과 조언 가능성 등의 자원을 바탕으로 위계적 권위를 구사하는 데 반해, 고위관료들은 전문성, 지식 및 경험 등의 자원을 지렛대로 하여 게임의 룰과 정치적 중립성에 준거하여 활동한다. 대체로 장관은 정책과정에서 관료들의 전문성과 경험을, 그리고 관료는 장관의 정당성과 정치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양자 간의 관계는 갈등관계라기 보다 공생(共生)관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Smith, 1999, Chapt. 5).

 

필자는 이들 핵심집행부의 중심축들 간의 역학관계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i)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ii) 이념적, 정책적, 인간적 공감대 iii) 당사자의 자질과 보좌 시스템을 선정하였다(안병영, 2003)..

우선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가 대통령비서실 중심의 중앙집권적 국정운영 방식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내각중심의 국정운영방식을 택할 것인가에 따라 위의 중심축들 간의 역학관계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비서실 중심의 국정운영방식을 취하는 경우, 정책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내각과 장관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데 반해, 내각중심의 체제를 구축하는 경우, 장관은 국정의 중심에 서게 된다. 박정희는 비서실조직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대통령직을 수행한 최초의 ‘현대적’ 대통령이다. 박정희는 초기에는 강력한 청와대 중심의 중앙집권적 국정운영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적 기반이 공고화된 이후에는 청와대를 전략기지로 계속 힘을 실어주면서, 국정의 중심축을 일 중심으로 서서히 장관으로 옮겼다. 이후 역대 대통령은 그때그때 친정체제로, 혹은 내각중심체제로, 또 어떤 때는 ‘이중 축(軸)’ 체제를 구축하였으나, 적지 않은 경우 청와대 비서실은 ‘소(小)’ 내각화’ 내지 ‘권부화(權府化)’하는 추세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만약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친정체제로 선회하고, 그 과정에서 장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 장관과 고위관료간의 역학관계에도 영향이 미친다. 고위관료들이 ‘권부’인 청와대를 바라보게 되고 이에 상응해서 장관의 권위는 더 실추되며 그 영향력은 가파르게 감소한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대통령 비서실은 주요 정책에 대한 기획, 조정기능과 대통령의 우선 국정사항 및 대통령 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보좌만을 주로 하고, 실제 국정은 내각의 각부 장관들이 챙기도록 하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개의 경우 국무회의의 주재를 국무총리에게 맡겼고, 큰 국사만 챙기는 편이었다.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했고, 개개 부처의 정책사업에 대해서도 비교적 많이 관여했다. 따라서 장관의 상대적 정책자율성은 김영삼 정부 때에 더 높았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그 경우도 장관과 수석간의 정책조율 문제는 남는다.

 

핵심집행부의 주요 행위자간의 역학관계를 결정하는 두 번째 변수는 당사자 상호간의 이념적, 정책적, 인간적 공감대다. 특히 여기서 대통령과의 공감대가 중요하다. 대통령이 특정 수석이나 특정 장관을 이념적, 정책적, 인간적으로 신임하고 그에게 힘을 실어 주면, 정책과정에서 그의 영향력은 크게 신장된다. 대통령이 이른바 ‘코드 인사’를 통해 과거 자신의 ‘동지’를 핵심집행부의 요직에 임명하고 그를 계속 지원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 상호간의 공감대와 신뢰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수석들은 대통령과 지근(至近)거리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신임을 얻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전두환 대통령의 김재익 수석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유명한 얘기이다. 김영삼 정부 때, 이른바 다수의 가신(家臣)들이 장관으로 중용됐고,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과거 운동권이 청와대에 다수 포진했던 것도 그런 경우이다. 흔히 이들은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 이른바 실세(實勢)로서 그 공식적 역할을 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통령의 분신(分身)들이 청와대를 장악하는 경우, 정치가 행정을 압도하여 관료제를 정치화하게 될 개연성이 무척 크다.

장관과 수석간의 이념적, 정책적, 인간적 신뢰관계도 매우 주요한 고리이다. 개혁과정에서 장관과 수석이 공감대가 형성되고 손이 맞으면 실제로 ‘윈-윈’게임이 된다. 이 경우는 개혁의 두 축(軸)이 규범적 정책공동체를 구축한 셈이다. <5.31 교육개혁>과정에서 안병영과 박세일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러나 양자가 서로 갈등을 빚으면서 대통령의 총애를 경쟁하게 되면 정책과정은 크게 혼선을 빚게 된다.

 

장관과 고위관료간의 공감대도 정책과정과 부처수준의 국정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장관과 관료와의 관계는 정서적 차원과 정책적 차원으로 나뉘는 데, 이 두 차원은 실제로 상호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 예컨대 장관이 관료와 친화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경우, 관료들은 보다 수월하게 장관과 정책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신의 정책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된다(안병영, 2002).

 

다음 대통령/비서실, 장관 및 고위관료의 역학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는 당사자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보좌시스템이다. 전문성이나 정치력의 차원에서 자질과 능력이 뛰어난 장관은 정책기획이나 정책관리 등 정책과정에서도 범용한 장관 보다 한수 위의 능력을 발휘하며, 수석과 고위관료를 압도한다. 특히 장관 자신이 뚜렷한 정책 아젠다를 갖고 있고, 업무 및 정책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췄을 때, 그는 부처 내외에서 정책과정을 주도하기 유리한 위치에 선다. 그러나 워낙 자질이 뒤지는 장관은 청와대로부터는 물론, 자신의 홈 그라운드인 부처 내의 고위관료들로부터도 존경과 신뢰를 받기 어렵다. 장관으로서의 출중한 자질과 능력은 당사자에게 공식적 권한에 더하여 전문적 권위와 카리스마를 선사한다. 더욱이 장관이 우수한 자질과 더불어 뛰어난 인품을 갖고 있는 경우 관료들과의 정서적 공감대가 높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장관은 자질과 정책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정한 기간의 경험과 경륜이 필요하다. 따라서 장관의 잦은 교체는 삼가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보좌시스템이다. 대통령의 경우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 비서관, 행정관들이 보좌시스템의 중핵이거니와, 장관 또한 자신의 정책보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유능한 보좌시스템은 당사자의 능력의 결손을 매울 뿐 아니라, 능력 자체를 배가(倍加)할 수 있다. 따라서 보좌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 하는 문제는 정책영향력을 높이는 데 있어 매우 주요한 요소이다. 청와대에서 정책기획 및 조정에 관여하는 비서관, 행정관들 중 다수가 정통관료출신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정책실무에 밝고 부처와의 정책조율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정책쇄신의 기폭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일정 구성분을 변동역군(change agent)의 자질을 갖춘 참신한 외부인사로 충원할 필요가 있다. 장관들 또한 부처 내에 우수한 관료군(群)들을 거느리고 있고, 대체로 하나 이상의 산하 정책연구소의 도움을 받으며, 외부로부터 정책조언을 받는다. 따라서 이들의 전문능력과 창의성을 십분 활용하는 경우, 정책과정에서 장관의 입지는 크게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i)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장관 중심으로, 또 장관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때, ii) 대통령(및 그 인격적 연장인 청와대 수석)과 장관 간의 이념적, 정책적 공감대가 강하고, 인간적 신뢰관계가 두터운 경우, iii) 장관의 능력과 자질이 뛰어나고, 뚜렷한 정책아젠다와 보좌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때, iv) 특히 고위관료들과의 정책적 정서적 공감대가 높을 때, 그리고 v) 장관이 비교적 장기 재임하여 경륜이 쌓일 때 장관의 정책영향력은 극대화된다.

그러나 대통령과 장관과의 이념적, 정책적 갈등이 존재하는 경우, 혹은 대통령이 장관의 정책영역에 과도하게, 또 빈번하게 개입하는 경우, 대통령과 장관 간에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IV. 교육정책 결정과정에서 장관이 지켜야 할 규준(規準)

장관은 정치와 행정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책무를 지닌다. 그러나 장관은 현실적으로 정치와 행정의 접점에 있기 때문에 때로는 정치에 편에 서서 행정을 주도하거나 압박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행정의 편에 서서 정치에 맞서 과도한 정치적 압력에 저항하기도 한다. 이때 장관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준이 무엇인가. 여기서는 교육부장관의 관점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데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교육영역에 대한 과도한 정치 및 이념의 투하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논의의 초점을 교육부장관이 정치화의 압력에 대항해서 교육의 본질과 그 고유 영역을 지키기 위해 취해야 할 규준이 무엇인가에 맞추고자 한다.

 

1. 교육본질에 대한 바른 인식

교육은 내면과 정신의 질적 변화를 포함한 인간의 심층적. 총체적 변화를 추구한다. 또한 ‘미래시민’의 바르게 양성하는 데 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을 통해 일어나는 변화는 장기적이고 복합적이다. 또한 교육에서 이루어지는 투자는 투입된 자본의 회임기간이 길고, 그 결과를 측정하기도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교육개혁이나 정책변개는 마땅히 장기적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하며, 그 성과 또한 지속적으로 발효되고 축적되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정책은 정권이나 이념적 관점에서, 혹은 단기적 조망에서 추진되어서는 안 되고, 더욱이 너무 쉽게 변화해서는 안 된다. 많은 이가 교육을 언급할 때, <백년대계>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 본질에 대해 장관은 바른 인식이 있어야 한다.

 

2.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의 준수

교육의 최고책임자로서 장관은 우리 헌법이 규정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보호하데 최선을 다할 의무와 책임을 지닌다. 따라서 과도한 정치화에 의해 이들 가치가 본질적으로 훼손될 때,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교육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주성, 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은 추상적 개념일 뿐 아니라, 그 의미도 시대나 상황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 이들 가치의 훼손 여부를 쉽게 판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3.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와 균형

대체로 보수정권은 수월성 위주의 교육정책을 표방하는데 비해 진보정권은 형평성을 중시하는 정책을 표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념적 성향이 짙은 정권일수록 그 편향의 정도가 심하다. 그러나 수월성과 형평성은 본질적으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교육적 가치다. 따라서 수월성과 형평성의 관계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양자의 균형과 조화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때, 새 정권은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에 따라 수월성과 형평성의 정책조합(policy mix)에 얼마간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권교체에 따른 적정수준의 정책변화와 새로운 ‘균형잡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하여 한 쪽으로 크게 기울어지는 이른바 ‘대못박기’식 정책변개가 추진될 때, 장관은 마땅히 양자 간의 균형과 조화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거나, 이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

 

4. 사회적 합의의 추구

다원적 민주사회에서 주요한 정책개혁은 마땅히 적정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혹은 ‘자의적(恣意的)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가급적 피해야 할 것이다. 주요 정책결정이나 개혁을 둘러싼 담론은 크게 조정적 담론(coordinative discourse)과 소통적 담론(communicative discourse)로 구분할 수 있다(Schmidt, 2002). 조정적 담론은 정책엘리트 상호 간 혹은 정책엘리트와 사회집단 간의 정책조정을 할 때 이루어지는 담론을 뜻하며, 소통적 담론은 정책엘리트들에 의해 추진되는 정책의 필요성과 적절성을 정당화하기 이하여 일반 국민을 설득하는 담론을 의미한다. 특히 대통령이 관계하는 거시적 정책의 경우 정치집단 간, 이해관계 집단 간, 그리고 국민과의 관계에서 적정수준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실제로 사회적 합의의 수준은 정책개혁의 성패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장관은 특히 거시적 정책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하며, 이를 소홀이 하거나 가로막는 정치적 압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필요한 경우 저항할 필요가 있다.

 

V. 두 가지 정책사례 : 정치와 행정의 보완-균형 그리고 갈등-조정

정치가 주도하는 정책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 져 있을 경우, 장관은 거시적 정책지형의 관점에서 필요한 보완적 조치를 통하여 전체적 균형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또한 정권 내지 정치의 과도한 정책주도로 정치와 행정 간에 갈등이 빚어질 때, 장관은 장관이 지켜야 할 규준의 관점에서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정책내용의 변화를 위해 저항을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 대통령의 정책비전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이 마땅한 일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관이 정권의 편향된 정책에 대해 묵종하기 보다는 불가피한 경우,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상호 논박을 통해 새로운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서는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보완-균형>의 예와 <갈등-조정>의 예를 제시하고자 한다.

 

1. <5.31 교육개혁>과 <교육복지정책>(1995-1997): 보완-균형

‘문민정부’의 대통령자문기관인 ‘교육개혁위원회’가 내놓은 5.31 교육개혁방안들은 대체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민주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정권적 특성과도 깊이 연관된다. 따라서 기존의 획일주의적이고 규제위주의 그리고 공급자 위주의 교육을 보다 자율적이며 수요자 위주의 교육으로 바꾸고, 교육과정도 보다 민주화하자는 내용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들 교육개혁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때, 경쟁력 강화 내지 수월성 지향의 방안들이 그 주류를 이루었고, 협력과 공존 능력의 제고 내지 교육소외의 극복과 인간화를 위한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즉, 거시적 정책지형은 형평성에 비해 수월성에 편향되어 있었다. 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 필자는 거시적 교육정책 틀의 전체적 균형과 조화를 위해 형평성의 제고가 필요하다고 평가하고, 이를 위해 ‘교육복지’라는 불루오션을 찾아 나섰다. 그는 고심 끝에 교육부 정책관료들을 독려하여 합동연구팀을 구성,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소외된 자와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자”를 대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복지종합대책(1997-2000)을 수립했다.

 

오늘날 ‘교육복지’라는 개념이 보편화되었으나, 당시로서는 교육부 정책 아젠다로 역사상 처음 등장한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당시 필자는 교육부 회의나 정책토론을 할 때 의도적으로 ‘교육복지’라는 개념을 자주 쓰고 교육복지에 대한 정책적 관심을 촉구했다. ‘교육복지종합대책(1997-2000)’에는 교육소외집단인 학교중도탈락자, 학습부진아, 특수교육과 유아교육 대상자, 그리고 귀국자녀 등에 대한 다양한 정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필자는 재임기간 안에 이들 교육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문민정부’의 거시적 정책지형을 보정하고 전체적 균형을 잡아보려고 애썼다. 위의 대책 가운데 중도탈락자대책은 “대안학교 설립 및 운영지원대책(1997. 3)”으로 발전하면서 후에 대안학교의 제도권 진입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필자는 1997년 8월 EBS 위성수능방송을 출범시켰다. 국가가 나서서 과외를 한다는 데 대해 적잖은 사회적 비판이 따랐으나, 그는 정부가 무상으로 양질의 수능방송을 하는 것이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의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도 교육복지 차원의 고려가 크게 작용했다. EBS의 열악한 재정형편으로는 생각 할 수 없는 사업이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교육광고 허가를 얻으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했다. 위의 두 사업은 5.31 교육개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정하기 위해 장관이 창안·주도한 것이므로, 교육부 안에서는 장관 프로젝트로 불리기도 했다.

 

필자는 이러한 노력은 정권과 이념을 넘어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이러한 정책적 조정 작업에 대해 당시 청와대는 묵시적으로 수용했고, 필자의 상대역이었던 박세일 수석은 필자의 노력에 크게 공감했다.

 

2. <2008 대입제도 개선안>(2004) : 갈등-조정

‘참여정부’는 정권의 성격에 걸맞게 교육의 형평성에 큰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필자가 참여정부 재직 중 주진했던 상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인 교육정책이나 형평성이 부각되는 정책들, 예컨대 <2. 17 사교육비경감대책>(2004/2)이나 <EBS 인터넷 강의>(2000/4), <교육복지종합대책>(2004/5) 등의 경우에는 청와대와 이렇다 할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필자가 2004년 2004년 2월 그간 금기시되었던 ‘교원평가제’ 실시 의지를 천명하자 청와대와 교육인적자원부(이후 교육부)간의 긴장관계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청와대와의 갈등이 가장 고조되었던 사례는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의 경우이다.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이후 혁신위)와 교육부(및 필자),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와 교육부(및 필자)간의 갈등은 유례없이 치열했다. 2004년 4월부터 그해 10월까지 약 7개월에 걸쳐 진행된 갈등과정과 갈등의 조정 및 봉합과정을 간략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안병영, 2008).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은 당초 혁신위가 마련하고 교육부가 집행하는 것으로 구도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혁신위가 지나치게 형평성에 기울어진 파격적 입시개혁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부와 필자가 의식적으로 정책과정에 깊이 관여하며 그 물꼬를 바꿔 보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불거졌던 갈등사례이다.

 

혁신위와 청와대는 처음부터 수능등급수를 최소화하고 1등급의 몫(%)를 최대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부(및 필자)는 교육부 내의 정책토론은 물론 교육계와 시민들의 여론을 두루 수렴해서 <9등급, 1등급 4%>을 적정선이라고 주장했다. 등급수를 둘러싼 갈등은 제 53회 국정과제회의(2004/8/19)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교육부의 <9등급>안을 수용하면서 가까스로 조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수능 1등급을 몇 %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7%까지 양보한 청와대 및 당과 4%를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교육부 간의 갈등은 첨예화되었다. 청와대의 압력은 날이 갈수록 가열차고 조직적이었다. 사안이 교착상태에 빠져 전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04년 10월 25일 총리공관에서 총리주재로 청와대, 당, 교육부 간의 마지막 절충을 해 보기로 합의했다. 2시간 여에 걸친 격렬한 토론이 있었으나 회의는 무위로 끝났다. 회의가 끝난 후 필자는 미리 준비했던 장관 사직원을 청와대 수석에게 건네고 총리공관을 나왔다.

다음날 이른 아침 이해찬 총리는 대통령이 1등급 4%를 받아들였다고 전하며 사직원을 내게 돌려주었다. 밤새 이 총리와 교육부안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김병준 정책실장이 거중조정을 해서 그렇게 결론이 난 것 같았다. 결국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을 둘러싼 정치와 행정의 갈등은 사표를 매개로 한 장관의 배수진과 대통령의 대승적 양보와 조율로 마침표를 찍었다.

 

필자는 청와대와의 잦은 갈등을 겪으면서, 나라의 백년대계인 교육정책 논의에서 정치와 이념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사회적 합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주요 이해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주요 쟁점에 대해 심도 있는 협의와 토론을 통하여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사회적 합의를 위한 민주적 조합주의 방식과 숙의민주주의의 이론적, 실천적 대안을 머리에 그렸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진 것이 2004년 12월에 출범한 ‘교육발전협의회’이다. 여기에는 교육자, 학부모, 교육전문가, 시민사회, 정부, 언론이 고르게 참여하도록 구성했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인사는 배제했다. 그러나 필자가 2005년 1월 자리에서 물러나자, 협의회는 유명무실해 졌고, 얼마 후 폐지되는 운명을 맞는다.

 

VI. 결론

필자가 두 번 교육부 수장을 맡으면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교육영역에 과도하게 침투된 정치와 이념과잉이었다. 따라서 중요한 정책쟁점이 부상하면, 여야 정당은 물론 언론, 시민사회나 교육계, 그리고 일반 국민들 까지도 양극으로 갈라져 치열한 이념논쟁을 벌리는 바람에 정작 정책논의는 교착사태에 빠져, 진정한 교육개혁은 물 건너가거나 기회를 잃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따라서 필자는 이미 10여 년 전 부터, 정권의 수명을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중요한 교육정책 및 교육문제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를 구하기 위하여 가칭 <미래한국교육위원회>(가칭)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여 왔다. 여기에는 사회지도자, 교육계, 언론계, 시민사회, 학부모 등이 두루 참여하여, 미래 한국교육의 비전과 거시적 정책방향 및 주요 교육개혁과제를 논의. 합의하는 독립적, 초당파적 사회협의체다. 이 위원회의 임기는 9년, 3년마다 1/3씩 교체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한 주요한 조건은 대통령이 결단과 주요 정당 간의 초당적 합의다.

 

지난 대선 때, 주요 정당들은 앞을 다투어 위에서 필자가 제시한 <미래한국교육위원회>와 유사한 맥락의 <국가교육위원회>의 도입을 주창했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교육회의>는 아직 그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필자가 주장해 온 <미래한국교육위원회>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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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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