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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사/카툰

<윤후정 통일포럼> 축사 2017/10/31

2017. 11. 1. by 현강

2017/10/31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이 주최하는 <윤후정 통일포럼>에서 축사를 했다.

 

윤후정 통일포럼 축사

 

 

우선 제가 제4회를 맞는 <윤후정 통일포럼>에서 축사를 하게 된 것을 큰 기쁨이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윤후정 통일포럼>은 한국 최초의 헌법학자로 이화여대의 발전과 한국여성의 인간화와 평등화에 크게 기여하신 윤후정 선생님이 우리나라의 분단극복과 통일성취를 위해 마련하신 뜻 깊고 소중한 담론의 장입니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통일포럼이 부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역량과 지혜를 축적하여 통일로 향하는 길목에서 없어서는 안 될 빛과 거름이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주지하듯이 작금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상황은 첨예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동북아 안보지형이 크게 요동치며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혼돈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 우려부터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 간의 전략적 힘겨루기, 일본의 군사적 부상 등 실로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의 외교. 안보 및 통일의 역량은 실로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있습니다. 이 위중한 시기에 우리는 오늘 <통일포럼>을 열고, 보다 긴 안목에서 통일 지향의 예지를 모우고 있습니다.

 

모처럼의 기회인지라 저도 외람되게 한국의 통일 및 안보 정책과 연관하여 독일을 예로 하여 평소의 소회를 잠시 말씀드릴까 합니다.

 

돌이켜 보면 독일의 통일정책은 1970년 브란트의 동방정책이후 그 기조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총리가 바뀌고 연정의 파트너가 바뀌었습니다만, 통일정책의 기조는 그대로 계승되었고 다만 상황변화에 따라 얼마간의 조율과 보정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독일은 정권이 교체돼도 지난 정권이 이룩한 정책의 기틀과 그 성과를 슬기롭게 승계하고 생산적으로 축적하여 통일로 향하는 대로를 보다 넓게 그리고 견고하게 닦았습니다. 정권이나 정파적 이익을 떠나 오로지 국익의 관점에서, 그리고 장기적 조망에서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주요 정당 간의 협치를 통해 통일의 금자탑을 쌓아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1990년 독일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기민당(CDU)의 콜 총리는 17세 연상이자 한때 정적이었던 사민당(SPD) 브란트 전 총리를 자주 만나 협의하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독일통일의 또 하나의 주역이었던 겐셔 외무장관은 장장 18년간 독일의 외무장관을 역임하며 통일의 꽃을 피우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겐셔는 기민당도 사민당도 아닌 소수당 자민당(FDP)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민당의 슈미트 총리나 기민당의 콜 총리도 겐셔리즘(Genscherism)이란 용어까지 탄생시킨 그의 뛰어난 외교적 경륜과 협상능력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불가결의 요소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일정책과 그 동전의 다른 면인 외교. 안보정책이 크게 바뀝니다. 아니 반전과 반전을 거듭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정책과 성과가 승계되고 축적되는 대신 단절과 불연속이 거듭되고 국론은 분열되며 통일의 길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 그리고 국민은 불안과 좌절을 되씹게 됩니다.

 

1871년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통일을 이룩하고, “역사를 스쳐가는 신의 옷자락을 잽싸게 잡아챘다”고 말했습니다. 1990년 콜 총리가 독일통일을 이룩할 때도 이 말이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습니다. 역사 속에 ‘기회의 창’은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연처럼 다가오고 그나마 잠시 빼꼼히 열렸다가 급히 다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역사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통일이라는 기적을 창출해야 할 막중한 역사적 소명을 안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줄기찬 노력과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정파를 넘어선 국익의 관점, 장기적 조망, 그리고 협치가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그것을 떠 받쳐주는 집중적이고 내실있는 학문적, 전략적 연구가 더 없이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과 <윤후정통일포럼>에게 맡겨진 역사적 책임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또 70여 년 전 혈혈단신 38선을 넘었던 작은 소녀의 절실한 꿈과 필생의 염원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는 다가올 통일세대를 주도할 젊은 신진학자들의 청신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큰 기대와 설렘 속에 다시한번 제4회 윤후정 통일포럼의 개최를 진심로 축하드립니다.

                    

 

                                                                     안병영(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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