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기사/카툰

2012년 6월 <연세동문회보> 인터뷰

2012. 6. 11. by 현강

2012년 6월 <연세동문회보>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

연세동문회보_안병영 명예교수님.pdf

 

 

미시령고개를 지나 설악산 울산바위가 손에 잡힐 듯 풍광이 아름다운 강원도 고성에서 낙향생활을 즐기고 있는 안병영(정외 59입) 모교 행정학과 명예교수. 한 번도 되기 어려운 교육부 수장을 그것도 다른 정부에서 두 번이나 역임한 안병영 명예교수를 찾아 최근 근황에 대해 들어봤다.

 

퇴임하신 이후

고향이 아닌

강원도에 터전을

마련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산행을 좋아해서 설악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울을 떠나 살고 싶었고, 제가 제 생활에 주인이 되고 싶어 이곳을 찾았습니다”
이외에도 1982년 서울과 지방의 교수 교류를 통해 강원대에서 1년간 생활했으며, 원주캠퍼스 초창기를 비롯해 강의 등으로 원주를 찾았고, 장관 재임 시에 교육부 워크숍을 남설악에서 개최하는 등 강원도와의 남다른 인연들을 설명했다.

 

요즘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가요?
“작은 농사짓고, 산에 가고, 글 읽고 글 쓰고 그렇게 지냅니다. 농사라야 나무 가꾸고 텃밭 일구는 일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하루에 서너 시간 일을 하게 됩니다. 농한기인 겨울에는 공부를 많이 합니다. 아직도 ‘교수에게는 정년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안병영 명예교수는 가끔 일이 있을 때 서울을 찾지만, 곧바로 돌아오고, 아주 드물게 특강을 하기도 하지만 가능한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호 ‘현강(玄岡)’을 따서 만든 블로그 ‘현강재(http://hyungang.tistory.com)’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교육부 수장으로 두 번 취임하시면서 감회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저는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 두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일했습니다. 첫 번째 문민정부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격류 속에 있었고, 두 번째 참여정부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습니다. 저는 어느 경우에나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철학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시대의 흐름이나 정권의 이념적 성향보다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교육 현실을 볼 때, 추진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이며, 반대로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요?
“1995년에 ‘5.31 교육개혁안’을 정책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역사적 작업을 주도했던 일이 크게 보람 있었습니다. e-러닝 활성화 특히 EBS 수능 방송 및 인터넷서비스를 시작한 일, 대안학교를 활성화한 일,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도입한 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제도화한 일이 제가 열심히 했던 일들입니다. 그간 금기시했던 교원평가 문제를 이슈화하고, 그 방안을 강구했던 일도 기억에 납니다.
아쉬운 일은 한둘이 아니지요.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고심을 많이 했고, 정책도 마련했지만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안병영 명예교수님께서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교육 정책을 추진하셨나요?
“1992년 저는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게 제 기본 철학입니다. 자유가 넘칠 때는 평등을 생각해야 하고, 평등이 흐름을 주도할 때는 자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 교육철학은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거세었던 김영삼 정부에서 대안학교 운동 등 ‘교육복지’에 열을 올렸던 것도, 진보성향의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부 최초의 ‘수월성 대책’을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교육개혁은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모색되어야 하며, 극단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개혁은 어느 정권의 정치적 수명을 뛰어넘어야 하며, 그 때문에 교육개혁에 정치논리의 개입은 저지해야 한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모교 재학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만약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대학교 2학년 때 ‘4·19 혁명’을, 그리고 그 이듬해에 ‘5·16’을 경험했던 세대입니다. 질풍노도의 시대였으니 나라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착실한 공부 꾼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세춘추 기자를 1년여 했는데, 연세춘추에 ‘이 주일의 시사’라는 칼럼을 자주 썼습니다.
요즈음 해외봉사를 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면 대견하고 부럽습니다.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저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스승님이 계신다면 어느 분이셨나요?
“직접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물론 이거니와 책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들의 행동을 통해서 많은 분을 마음에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생전에 한 번도 뵙지는 못했으나 장기려 박사님이 제게 큰 스승이었습니다”

 

인생을 삼모작에 비유하신 적이 있으신데, 시작하신 세 번째 못자리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인생 일모작은 한창나이에 열정을 다해 비교적 힘든 일을 하는 시기이고, 이모작은 보람을 찾는다든지 내면으로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단계입니다. 마지막은 자연에 더 가까이하는 삶의 단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둘째와 셋째가 함께할 수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정년까지 학자로 살았으며, 두 번 장관은 본업이 아니라 나라에 봉사한 것입니다. 여기 찾아온 것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과 자연 가까이에서 자연을 닮아가며 살고 싶어 온 것입니다. 지금 자연을 닮아가는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현재 읽고 계신 책이나, 후배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람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책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책을 추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나이가 드니 전공서적보다,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커지고 주로 그 분야 책을 많이 읽습니다.
지난겨울에 책을 하나 썼습니다. 초고를 끝내고 수정작업을 하고 있는데, 가을에 출판될 것 같습니다. 근년에 ‘스웨덴 모델’, ‘네덜란드 모델’ 등을 많이 얘기하는데, 저는 ‘오스트리아 모델’에 관해 썼습니다. 그 나라의 근현대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커서 그 ‘보물 캐기’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연세 동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과 지방 생활에 대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인간이 원래 불완전하고 모순덩어리이지만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인생의 길목에서 가끔 ‘내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기성찰적 맥락에서 자문해 볼 것을 권합니다.
지방 생활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선 건강해야 하고, 부부가 뜻을 같이해야 하며,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욕심을 많이 정리해야 합니다”

 

앞마당 텃밭과 아내가 설계한 집(사진)의 곳곳을 소개하는 안병영 명예교수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과 함께 생활하며 인생의 세 번째 못자리를 즐기는 안병영 명예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강원도 고성에서 박원엽 기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