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으로 기억한다. 60세로 넘어가는 초겨울에 내 처가 뜬금없이 “당신 10년 젊어질 수 있다면, 그때로 되돌아가겠어?”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곧장 “싫어, 그 모진 세월을 왜 되풀이 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내 처가 “되풀이가 아니고, 10년이 그냥 열려 있는데도”라며 재차 물었다. 나는 “그래도 싫어”라고 한 마디로 답했다. 그랬더니 내 처도, “실은 나도 그래”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서로 “왜냐”고 더 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가까운 친구 몇 명과 만난 자리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 웬걸 대부분의 친구들이 “무슨 얘기야, 10년이 젊어지는데, 당장 돌아가야지”라는 입장이었다. 어떤 친구는 “무슨 소리야. 50대가 황금기인데 다시 산다면 정말 멋지게 해낼 텐데…”라며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내가 왜 세월을 되돌리기를 원치 않았을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마디로 잘라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마도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 중 하나는 지나간 50대, 10년의 세월이 내 편에서는 무척 힘겹고 고단한 시간으로 기억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 시절, 학교의 주요 보직, 학회장도 지냈고 언론에 글도 많이 썼고 2년 가까이 장관직도 수행했으니 남 보기에는 그럴싸해보였을지 몰라도 내 마음의 거울에는 질곡으로 각인될 때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내 딴에는 지난 10년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그 비슷한 세월을 왜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곁들였던 것 같다. 다른 주요한 이유인 즉,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60대에 내가 할 일을 어린아이처럼 꿈꾸며 새로운 10년에 진입하는 내 처지가 무척 다행스럽고 고맙게 느껴져 언감생심 다른 욕심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밖에 아마도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 속절없다는 생각도 얼마간 보태졌지 않았을까 싶었다.

  만 65세 정년을 맞았을 때, 다시 내 처가 세월을 몇 년 되돌리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펄쩍 뛰었다. “무슨 얘기야. 이제 아무런 사회적 책임도 없이 정말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는데.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데.” 그 때 내 대답은 명료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 이제 나이 70으로 진입하는 겨울에 섰다.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난 10년 세월을 되돌리고 싶으냐고. 이번에도 대답은 “아니오”였다. 아직 그런대로 건강한 편이고 70대에도 나를 속으로 살찌게 할 일들이 남아 있어 가슴이 뛰는데, 왜 인생을 복습할 것이냐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스산한 기운이 맴도는 것은 숨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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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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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속초/고성에 와 살기 시작한지 이제 3년이 가까워 온다. 아무 연고도 없던 곳이라 처음에는 이곳 사정에 어두웠고 실제로 지역사회에 대한 세세한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 자연에 취해 산과 바다, 호수와 계곡을 자주 찾았지만 이곳 주민들의 생활세계와는 얼마간 거리를 두며 살았다.


  
‘탈 서울’을 하면서 가능하면 서울과 중앙에 대한 관심은 줄이고 이곳의 일상에 충실하자고 다짐을 했는데도 부지불식간에 내 주된 관심은 여전히 서울 중심, 나라 전체에 가있었고 정작 내 구체적 삶이 펼쳐지는 이 지방과 이곳 주민들의 사는 모습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관심밖에 없었다. 그래서 TV뉴스를 볼 때에도 전국 뉴스가 끝나고 지방 뉴스가 시작될 때면 으레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곤 하였다. 몸만 여기 있지 마음은 그냥 서울에 머물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처음 한해를 넘기면서 내가 차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감지하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농사가 잘 안되면 그 걱정을 하게 되고, 피서철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 비가 올라치면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되었다. 피폐한 지역경제를 실감하면서 아내에게 이제 이마트에 그만가고 재래시장과 양양 5일장을 가자고 종용하게 된 것이나, 어쩌다 서울에 가면 가까운 이들에게 속초/고성 자랑에 열을 올리는 것도 그런 변화의 모습이었다. 아내는 오래된 <강원도 짝사랑>이 발동했다며, 자칭 <속초/고성 홍보대사>라고 놀린다.

 
 
무엇보다 TV 뉴스를 보면서 이제는 전국 뉴스를 대충 듣고, 이곳 지방 뉴스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서울과 중앙, 전국은 점차 멀리 느껴지고 그에 대한 관심도 엷어졌다. 그러면서 이곳, 이 지역의 구체적 삶의 세계에 차츰 빠져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것이 전혀 애써 노력하지 않은 채, 또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 사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게 얼마간 신기하고 흥미롭다. 아니 스스로 놀랄 때도 없지 않다.

 
 
의식의 <지방화>가 진행되면서 걱정도 함께 는다. 요즈음 내 심기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곳 고성의 가장 큰 자랑인 명품 소나무들이 끊임없이 바깥으로 반출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명목으로 허가를 맡아 합법적으로 소나무 반출을 진행하는 모양인데, 식목의 달이라는 지난 4월 이후 내 집 앞 먼 길로 줄지어 실어 나른 아름드리 소나무만 해도 수백 그루는 족히 될 것이다. 소나무를 무리로 패간 뻘건 산등성이는 을씨년스럽게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데 장마철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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