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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동아시아의 호혜·선린 연대를 지향하며

2025. 6. 26. by 현강

지난 5월 17일 나는 연세대학교 개교 140주년 기념 사회과학대학 학술세미나에서 “자유주의, 그 안에서 새 빛 찾기”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이 강연의 마지막 부분, ‘결론에 대신하여: 동아시아의 호혜·선린 연대를 지향하며’를 조금 보완하여 아래에 싣는다. 이 세미나에는 또 한 명의 기조강연자였던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일본 학자들이 참석해서, 두 나라 사이에 긴밀한 학문적 교류를 했다.

마침 올해가 한·일 국교 60주년이다. 며칠 전에는 캐나다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 보다 성숙한 한·일관계를 다짐했다고 한다. 양국 간에 이런 우호적 분위기가 앞으로 더욱 잘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린다.

 

결론에 대신하여: 동아시아의 호혜·선린 연대를 지향하며

                                            I.

여기서는 결론에 대신하여 오늘 주제인 자유주의와 연관하여 동아시아 세 나라, 즉 한·중·일 관계, 특히 자유주의를 더 많이 공유하고 있는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한·중·일 세 나라는 지리적으로 인접할 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적으로 더 할 수 없이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 역사 기억 속에는 온갖 영욕과 애증이 복합적으로 첩첩이 쌓여있다. 그런데 이웃 나라 간의 관계가 항용 그렇듯이 좋았던 기억보다는 나쁘고, 아팠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따라서 한(恨)맺힌 부정적 기억이 세 나라 간에 건설적 관계 설정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은 역사적으로 이들 두 나라로부터 자주 무도한 간섭과 침탈의 대상이 되었던 나라다. 따라서 피해국의 기억이 넘치도록 많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 3국 간의 호혜·선린 연대를 촉구하는데 다른 나라보다 입장이 떳떳하고, 무엇보다 그간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격상되어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유리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필자는 세 나라는 동아시아의 상생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숙명적으로 호혜(互惠)·선린(善隣)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좋든, 싫든 세 나라는 앞으로 보다 우호적 관계 속에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 안보를 비롯하여 다양한 상호관계의 맥락에서 그것은 역사적 지상명령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볼 때, 현실적으로 이를 실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까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여기서는 새 빛을 찾는 이 험난한 도정에서, 그 실마리를 자유주의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그러자니 논의의 초점이 자유주의의 밀도가 낮은 중국과의 관계보다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관계에 맞춰진다.

                                            II.

필자는 세 나라가 ‘호혜·선린연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i) 자유주의 지향의 포용적 정치지도자, ii) 자유주의의 문화적 침투력이 강한 젊은 미래세대, 그리고 iii) 자유주의적 에토스가 충만한 지식인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나라 간의 관계 개선과 새로운 연대형성을 위해서는 정상급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열린 마음, 관용의 정신으로 충만된 자유주의 지향의 정치지도자의 존재는 여기서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그런 맥락에서 세계인은 1990년 우울한 초겨울 어느 날, 독일 총리 브란트가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의 차디찬 대리석 위에 무릎을 꿇었던 걍렬한 역사적 장면을 잊지 못한다. 아울러 우리는 오늘 이 학술회의에 참여하신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께서 지난 날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순국선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으셨던 셨던 감동적인 모습도 마음 속에 고히 간직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자유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상호 불신을 해소하고 관계 개선에 성공한 사례는 우리에게 하나의 좋은 전범(典範)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 독일의 아데나워 총리는 양국의 화해와 교류·협력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고 양국의 유대강화를 위해 앞장섰다. 당시 권위와 카리스마, 자존감으로 가득한 드골도 대독(對獨) 관계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겸허한 자세를 취했다. 아데나워는 드골의 사저(私邸)로 초대받은 유일한 외국 정상이었다. 양국의 두 거인 정치가는 마침내 1963년 역사적인 ‘엘리제 조약’을 체결하고 두 나라의 영구화해를 다짐했다. 조약에는 매년 양국 수뇌, 외교, 국방장관, 청소년 장관 간의 정기적 회담과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관계가 일상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풍성한 내용이 가득히 담겼다.

이후 양국의 역대 정상들은 양국의 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유럽 문제해결과 유럽 통합을 위해 온 정성을 다했다.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과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는 손을 맞잡고 1970년대에 유럽 경제위기를 돌파했고, 독일의 콜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함께 힘을 모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매개로 유럽연합(EU)을 창설하는 역사적 대업을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독일의 전임 총리 메르켈은 2005년 총리직에 취임한 바로 다음 날, 서둘러 프랑스를 방문하여 시라크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메르켈은 총리로 재직한 16년 동안 무려 70차례나 프랑스를 방문했다.

이렇듯 유럽의 양대 중추 국가인 독·불 양국의 역대 정상들이 함께 연출한 ‘이어가기’, ‘쌓아가기’ 그리고 ‘함께가기’의 역사적 드라마는 비단 두 나라 간의 유대 강화뿐 아니라, 현대 유럽의 평화와 통합의 주춧돌이 되었다. 그리고 두 나라는 이제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로 바뀌었다.

                                                   lll.

불행한 역사 기억을 지닌 나라 간에 유대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검증된 통로는 양국 간의 청·소년 교류이다. 청·소년들은 앞선 세대들의 묵은 감정이나 아픈 기억, 온갖 편견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미래세대이다. 그들은 과거를 되돌아보기 보다는 멀리 트인 앞날은 조망한다. 따라서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의 교류·협력은 동아시아의 ‘호혜적 선린관계’를 구축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여기서 특히 자유주의의 문화적 침투력에 큰 기대를 걸어 본다. 얼마 전 한국 3인조 래퍼 '호미들'(Homies)이 한국 국적 가수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에서 공연을 했다.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의 빗장이 조금 풀린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 K팝과 J팝이 그 간의 경계를 허물고 ‘콜라보’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린다.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청소년 세대의 문화적 교류와 공감대 형성은 구세대의 이끼 낀 묵은 감정을 용해하는 데 최상의 기여를 할 수 있다.

                                                         IV.

다음 지식인의 역할이다. 지식인들, 학자들이 빗나간 역사의식이나 과도한 민족적 정서에서 벗어나 보다 이성적이고 절제된 언어로 동아시아 3국 간의 호혜·선린의 필요 성과 설파하고 그 길을 열고, 닦는 데 앞장을 설 필요가 있다. 돌이켜 보면 여지껏 세 나라의 지식인들은 동아시아의 호혜·선린관계를 고양하는 과정에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립과 갈등이 각인되는 현실 정치의 문법에 밀리고, 치여서 이해와 설득을 바탕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는 지식인 고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본다. 이제 이들은 동아시아의 호혜·선린 연대를 마련하는데 보다 큰 역사적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지식인의 역할과 연관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구미(歐美)의 이른바 ‘냉전자유주의자(cold war liberalist)’들의 활동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 ·소 간의 첨예한 대립 속에 동서냉전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서구세계에서는 강력한 냉전적 반공주의가 부상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 정계를 강타한 것도 이 때였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1945-1950년대 후반)에 서구 및 미국에서는 일단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적나라한 흑백논리 대신에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에 바탕을 둔 온건하고 절제된 언어로 엄습하는 전체주의의 검은 그림자에 맞섰다. ‘전후 자유주의’ 혹은 ‘냉전 자유주의(cold war liberalism)’로 불리는 이 흐름의 대표적 지성들이 바로 벌린(I.Berlin), 아롱(R. Aron), 포퍼(K. Popper), 하이에크(F. Hayek), 니버어(R. Niebuhr), 슈레징거(A.M. Schlesinger jr.) 등이다.

이들은 교조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일차원적 사고가 만연되어 있는 이 엄혹안 냉전시기에, 날선 공격과 대결적 접근보다는 한결같이 온건, 유연한 자유주의 바탕의 기풍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이념에 포획된 경색된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당대의 공적(公敵), 극단주의에 대항했다. 깊은 고뇌와 울림을 수반한 이들 지식인의 노력은 동시대인의 찢긴 마음을 위무하며 정서적 일탈(逸脫)을 막고, 서구 세계의 자유주의 연대 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선사한다.

동아시아의 세 나라에는 아직도 소아적(小我的) 민족주의와 빗나간 역사의식의 포로가 된 극단주의적 세력들이 적지 않다. 한국과 일본에도 뿌리 깊은 반일(反日), 혐한(嫌韓) 감정이 잔존하고, 때때로 적잖은 정치가들이 이에 편승·악용하며, 또 그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훔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에 미래 지향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온건, 절제된 목소리, 합리적 이성과 설득력을 바탕으로 나라 간에 교류·협력에 장애가 되는 반(反) 연대적 논리와 정서의 장벽을 깨는데 앞장을 서는 뜻있는 지성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IV.

필자의 이러한 논의는 자칫 동 아시아 3국 간의 아픈 옛 기억을 모두 다 잊고 새 출발하자는 얘기로 들릴 수 있으나, 그런 얘기는 아니다. 지난 역사는 엄존하며, 미래의 필요 때문에 그것을 잊거나 지울 수는 없다. 다만 과거에 대한  과도한 격정적 재해석이나 지나친 집착이 미래로 향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일본과 한국의 지식인들이 함께 모인 이 자리가 한·일 간의 새 역사를 개창(開創)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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