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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영9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성숙한 불씨> / 2009.11 10년 전으로 기억한다. 60세로 넘어가는 초겨울에 내 처가 뜬금없이 “당신 10년 젊어질 수 있다면, 그때로 되돌아가겠어?”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곧장 “싫어, 그 모진 세월을 왜 되풀이 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내 처가 “되풀이가 아니고, 10년이 그냥 열려 있는데도”라며 재차 물었다. 나는 “그래도 싫어”라고 한 마디로 답했다. 그랬더니 내 처도, “실은 나도 그래”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서로 “왜냐”고 더 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가까운 친구 몇 명과 만난 자리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 웬걸 대부분의 친구들이 “무슨 얘기야, 10년이 젊어지는데, 당장 돌아가야지”라는 입장이었다. 어떤 친구는 “무슨 소리야. 50대가 황금기인데 다시 산다면 정말 멋지게 해낼 텐데…”라며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2010. 9. 18.
한 이발사와의 추억 나는 1980년대 초, 중반에 몇 년간 서울 여의도에 살았다. 당시에도 머리는 동네 목욕탕에서 깎았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같은 이가 머리를 만졌는데, 내 나이 또래의 이발사는 매우 유식하고 세상물정에 밝은 이였다. 또 대단한 이야기꾼이어서 조발을 하면서 끊임없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재미있게 엮어갔다. 특히 정치얘기를 많이 했는데, 언제나 정보가 풍성했고 관점도 날카로웠다. 나는 그의 열정적인 얘기에 자주 빨려 들어가곤 했다. 시간과 더불어 그는 점차 얘기하는 쪽이 되었고 나는 대체로 열심히 경청하는 쪽이 되었다. 그는 얘기 도중 가끔 “아시겠어요” 라고 되물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황급히 “아, 그럼요” 라고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다. 내 쪽에서 말수가 .. 2010. 9. 5.
학자로 산 지난 40년 * 이 글은 2009년 12월 5일 에서 발표한 내용의 요약본이다. 학자로 산 내 생애 40년을 성찰적으로 되 돌아 보았다.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 그리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하나로 겹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글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워낙 다른 재주가 없어 그 나마 공부 잘하는 것이 내 딴에는 장기였다. 또 학자로 산다는 것에 항상 의미를 부여했고 자부심을 느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 무척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학자, 특히 사회과학자는 자신의 생활철학이 어쩔 수 없이 공부 속에 녹아 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 기본적 생각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난 40년간 격동의 생활 속에서 학.. 2010. 9. 3.
체험적 교육부장관론 전상인 외,『배움과 한국인의 삶』나남 (2008) 145-167면에 수록 I. 필자는 문민정부 시절 약 20개월(1995/12-1997/8) 동안,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 1년 남짓 (2003/12-2005/1) 두 차례에 걸쳐 도합 약 32개월 동안 교육부장관(두 번째는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같은 부처의 장관을 두 번 지낸 것도 이례적이거니와, 민주화 이후 이기는 하나 이념적 지향에 있어 얼마간 차이가 있는 두 정권에서 장관으로 일했다는 점이 독특하다면 독특한 점이다. 필자가 처음 장관에 임용되던 1995년은 바로 문민정부의 대표적 개혁과제였던 이 마련되어, 역사상 처음으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교육개혁이 추진되던 시기였다. 필자는 교육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던 바로 이 역동적인 시.. 2010. 8. 16.
이념과 정책: 중도개혁의 정치를 위하여 1. 머릿말 한국 사회의 오늘은 이념과잉, 이념갈등으로 충만하다. 정치권도, 시민사회도, 언론계도, 그리고 지식인의 담론구조도 모두 첨예한 이념대립으로 점철된다. 주요한 정책쟁점에 대해, 생각이 양극으로 쏠리고 양자는 날을 세우고 치열하게 부딪힌다. 우리 사회의 경우 이념갈등은 얼마간 세대간의 갈등과 맞물리면서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다툼은 있되,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주지되듯이,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되면, 정치는 교조화, 관념화되며, 정치주역들은 이념의 웅덩이에 빠져 격돌만을 일삼게 되며, 끝내 정치는 교착상태에 빠진다. 이렇게 되면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정책생산에는 소홀하게 되고, 민생정치와 거리가 먼 불임(不姙)정치를 낳는다. 그런 가운데 날이 갈수록,.. 2010. 7. 14.
민주주의, 평등, 그리고 행정 : 한국행정 연구를 위한 이론적ㆍ경험적 함의를 찾아서 『한국행정학보』(한국행정학회, 제 41권 제3호, 2007 가을) 1-40면 수록 안병영, 정무권 I. 머리말 한국은 2차 대전 이후의 신생국가로서 짧은 국가형성기를 가졌다.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압축적이며 역동적인 역사적 경험을 거치면서, 최근에 다시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은 신생국가로서 최빈국의 지위에 있었으나, 급속한 산업화에 성공하여 이제 선진국대열의 다가섰다. 산업화의 성공에 이어,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에 있어서도, 아직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나, 짧은 시간에 거둔 놀라운 성과에 대하여 전 세계가 주목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압축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는 한국사회에 역동적인 변화와 성과와 더불어 동시에 숱한 모순들을 한꺼번에 노정시켰고, 이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미래 비젼에 심각한.. 2010. 7. 14.
비움의 미학 <성숙한 불씨> / 2009.10.6 전에 대학에 나갈 때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으레 교수 휴게실에 들려 우편함에서 각종 우편물을 한아름 안고 연구실로 향했다. 가끔 반가운 편지나 주문한 책, 유익한 자료도 있지만, 대체로 별 쓸모없는 자료들이 대부분이고,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선전물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배달된다. 그때부터 내가 연구실에서 하는 첫 번째 작업은 필요한 자료를 고르는 일이다. 한 마디로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기는 작업인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버릴 것을 제때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우선 잡다한 선전물이나 한 눈에 불필요한 자료나 문건은 그냥 휴지통에 넣는다. 그리고 나면 내게 크게 도움이 됨직한 것부터 그런대로 쓸모가 있는 것, 그리고 당장엔 별 필요가 없지만 언젠가 참고가 될 수.. 2010.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