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 80년대 대부분 대학의 교수 연구실에는 학교가 제공하는 이렇다 할 냉, 난방시설이 없어 더위와 추위를 교수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교수들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에는 주로 선풍기에 의존해서, 그리고 긴 겨울철에는 기름을 아끼며 석유난로를 피워 견뎠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인가 90년대 초부터 겨울철이면 중앙난방식으로 하루에 두 차례 불을 때 주곤 했는데, 그게 꽤나 인색해서 오후 늦게 되면 연구실에는 한기가 맴돌아 손을 비벼야 했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언제부턴가 냉방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에어컨은 교수 부담으로 스스로 설치하고, 전기료는 학교가 내준다는 조건이었다.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더니 젊은 교수들부터 한 사람, 두 사람 에어컨을 설치했고 그러다보니 90년대 말쯤에는 거의 모든 연구실의 냉방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그냥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버텼다. 30년 넘어 그렇게 지냈는데, 그리고 정년이 내일 모렌데 새삼스레 무슨 에어컨이냐는 생각이었다. 궁핍한 시대를 살아 온 우리 세대에게는 한 여름 연구실에서 땀 흘리는 게 그리 못 견딜 일만은 아니었다. 또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간 자기절제, 인내, 극기와 통한다고 생각해왔기에 스스로 그러는 내 모습을 스스로 그럴싸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중 어떤 여름날 내방 조교가 불쑥 “선생님, 사회과학대학 안에 이제 에어컨 없는 교수 연구실이 두 방밖에 안 남았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아, 그래”라고 답하며 그냥 넘겼다.

  
그리고 얼마 뒤 방 조교 출신의 제자 교수 한명이 내가 혼자 있는 연구실에 찾아 왔다. 원래 주저 없이 직설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친구인데, 그날도 “선생님, 이 더위에 이게 무슨 고행이십니까. 숨이 막히네요.”라고 푸념을 앞세웠다. 그리고는 빙긋 웃더니 “선생님은 그렇다 치고, 조교 인권(人權)도 생각하셔야지요.”라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비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주체하기 어려운 회오(悔悟)의 정이 머리를 쳤다. “아니 이럴 수가. 그동안 내가 제 생각만 해왔구나. 이 방에 둘이 산다는 것, 그리고 나 아닌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삶을 살아 온 신세대 젊은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간과하다니! 그가 선풍기 하나로 견디면서 얼마나 힘겨웠을까.

  다음 날 나는 부랴부랴 에어컨을 설치하고, 조교에게 “그동안 고생이 너무 컸다”고 심심한 위로를 했다. 그러자 영문을 모르는 조교는 “정년을 코앞에 두시고 이제 에어컨을 다시면 어떡해요. 다시려면 아예 일찍 다실게지”라며 어정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상대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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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ndora Charms 2012.11.19 12:5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속에서 이순간을 기다려왔어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정말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특히 최근 들어 이념과 연관하여 그런 느낌을 많이 가진다. 누구나, 특히 배운 사람들이면, 일정한 이념적 지향이 있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얼마간의 이념적 편향성을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사리를 분간하지 못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데 점차 우리사회에서 건강한 토론이 사라지고 있다. 일정 주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논의하기에 앞서 미리 입장을 정하고 제 주장만 앞세운다. 그러니 온통 독백만 난무하고 진정한 대화는 실종한다. 경청, 숙고, 심의, 합의 등의 개념이 무의미해 진지 오래다. 언필칭 중도를 얘기하고 합리를 앞세우는 사람들과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그가 이미 이념의 수렁에 깊숙이 빠져 있음을 절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념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중 하나의 방법은 일정 쟁점이 제기되었을 때, 우선 그것이 던져주는 정치적 상징이나 이념적 함의에 현혹되어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것을 삼가는 일이다. 그 보다는 일단 판단을 유예하고, 사실과 분석에 바탕을 두어 생각을 바탕부터 다시 정리해 보는 노력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사실과 정보를 가능한 한 폭넓게, 다양한 연원에서, 치우치지 않게 수집해야 하며, 실증적 분석과 더불어 질적 분석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쟁점을 역사적으로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일생 한 신문만 본다고 자랑삼거나, 마음에 맞는 무리들과만 교류한다고 내세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 같은 관점만 보강하기 때문에 생각의 판도를 넓이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폐쇄회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결론도 쾌도난마식으로 찬, 반 양 갈래로 내릴 일도 아니다. 문제해결을 획일적으로 할 것이냐 다양하게 할 것이냐, 시기적으로 장, 단기적으로 혹은 몇 단계로 나누어 할 것이냐, 아니면 일거에 할 것이냐, 강도는 어떻게 할 것이냐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대안이 존재한다. 하나하나 따져 보며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합의수준을 높여야 한다.

 

  성숙한 사회는 열린 마음, 합리적 토론,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사회다. 성숙사회를 이루기 위한 지식인들의 성찰과 분발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이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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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holesale jerseys 2012.10.24 16:58 Address Modify/Delete Reply

    뭐 여러가지로 한번 생각해 봐도 되겠죠? ^ ^


 정년퇴직을 하기 훨씬 전부터 마음으로 정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년을 하면’, 이러 저러하게 살겠다는 상상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럴 때면 언제나 ‘서울을 떠나자’라는 생각이 마치 강박관념처럼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정년을 하면, 세상 번잡을 피해 보다 단순하게 살고 싶고, 내키는 일만 하고 싶고,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데 그 모든 것이 서울을 떠나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서울’을 지상과제처럼 생각했다. 다행히 아내도 동의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갈까. 그래도 서울에서 멀리 달아나야지. 실은 아무도 잡는 사람이 없는데 멀리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서귀포가 어떨까. 남해도 좋던데, 이런 저런 궁리 끝에 강원도 속초로 정했다. 전혀 연고가 없지만 눈여겨보아 둔 곳이다. 그래서 작년 2월 대학을 정년하자마자 이곳으로 내려 왔고, 벌써 여기 온지 1년을 훌쩍 넘겼다.  

 

 이곳에서 스스로 가장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 온전치는 않으나 내가 점차 내 생활에 주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서울에서 나는 언제나 사회적 약속의 연쇄 속에서 허덕이며 살았고, 항상 스케줄에 쫓기고, 데드라인에 목매였다. 체면 때문에, 남과 척지지 않으려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인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여기서 비교적 내가 하고 싶은 일, 마음에 내키는 일을 내 의지대로 즐겨서 하고 산다. 알량한 체면이나, 하찮은 명예는 상관할 필요가 없고, 뿌리치기 어려운 연고의 늪에서도 꽤 해방된 느낌이다. 내 시간은 내가 직접 요리한다. 게다가 여기서 내 유일한 취미인 산행이 언제라도 가능하니 그런 것이 좋다. 서울에 산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지인(知人)들이 내게 흔히 던지는 질문은 외롭지 않느냐는 것이다. 밤낮 그 산, 그 바다를 보면 지루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거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잘 지낸다. 현대인들은 명동 한가운데서도 외롭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런 실존적인 얘기가 아니다. 우선 이곳의 일상이 그런대로 바쁘다. 그간 하고 싶은데 못했던 일이 그리 많을 줄 몰랐다. 주변에 가고 싶은 산행 코스만 해도 끝이 없고, 알량한 전공 공부에 쫓겨 못 읽고 밀어 두었던 역사책, 철학책, 소설과 시들도 그리 많을 줄 몰랐다. 어쭙잖은 사색하기, 음악듣기, 자신과 대화하기도 바쁘다. 올해부터는 조금씩 텃밭을 가꾸려 한다. 더 바빠질 것이다. 그래서 이곳 생활이 외로움을 반추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또 가끔 밀려오는 약간의 외로움은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기 때문에 얼마간 감미롭기도 하다. 그런데 바빠도 전혀 쫓기는 기분이 없다. 그리고 산과 바다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특히 산은 계절 따라, 아니 시시각각으로, 또 보는 곳과 각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천의 모습을 연출하는 자연의 신비 속에 빨려 들어가면 쉽게 자신을 잃고 거기에 동화된다.  

 

 어쩔 수 없이 서울을 가끔 간다. 그런데 서울을 가도 가능하면 일만 보고 그냥 돌아오려고 애쓴다. 마치 자칫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것 같아서 괜히 불안하다. 서울의 분답(紛沓) 속에서 다시 나 자신을 잃으면, 그 때는 다시 이 작은 나만의 행복한 시간으로 영영 되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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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의 불씨 2007.12.06

대부분의 공, 사조직에는 일의 분업체계가 있고, 그에 따라 자리와 직책이 있다. 대통령이나 대학총장, 큰 회사 사장이나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의 대표 등은 중요한 자리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막중하다. 그런가 하면 정보기관이나 검찰, 경찰 등 이른바 권력기관의 장은 그 직책 때문에 위협적 느낌을 던져주고, 교육, 봉사기관이나 종교단체의 장은 보다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 주변의 많은 자리는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에 따라 그 실제의 역할체계 이상으로‘권력화’되기도 하고, ‘인간화’되기도 한다. 같은 왕의 자리라도 연산군 같이 희대의 폭군으로 역사에 남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세종처럼 인간적 향기가 넘치는 성군(聖君)도 있다. 종교지도자나 학교장 중에도 권력과 세속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권력기관의 수장 중에도 봉사정신으로 충만한 가운데 수도자의 경건을 느끼게 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우리 주변에는 알량한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는 곧장 그 자리를 관료화, 권력화, 비인간화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마땅히 봉사와 헌신의 자리이어야 할 정부공직이나 대학보직 등도 자칫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 되고 그들과 관계하는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숙한 사회는 인간화된 사회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인간화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공, 사의 모든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권력, 위계, 규제, 차별에 대한 관심 대신에 인간적 배려, 의사소통, 자율, 사회적 통합 등의 ‘인간화’ 가치를 추구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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