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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4 비움의 미학 <성숙한 불씨> / 2009.10.6 (1)
  2. 2010.04.03 종강록(終講錄) 2006.12

  전에 대학에 나갈 때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으레 교수 휴게실에 들려 우편함에서 각종 우편물을 한아름 안고 연구실로 향했다. 가끔 반가운 편지나 주문한 책, 유익한 자료도 있지만, 대체로 별 쓸모없는 자료들이 대부분이고,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선전물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배달된다. 그때부터 내가 연구실에서 하는 첫 번째 작업은 필요한 자료를 고르는 일이다. 한 마디로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기는 작업인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버릴 것을 제때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우선 잡다한 선전물이나 한 눈에 불필요한 자료나 문건은 그냥 휴지통에 넣는다. 그리고 나면 내게 크게 도움이 됨직한 것부터 그런대로 쓸모가 있는 것, 그리고 당장엔 별 필요가 없지만 언젠가 참고가 될 수 있어 보이는 것 까지 다양한 종류가 남는다. 욕심 같아서는 많은 것들을 거두고 싶지만 실제 내 연구실 공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잡다한 자료가 훗날 오히려 짐이 된다는 그간의 경험 때문에 자료 선별과정에서 나름대로 신중을 기하게 된다.


  
곧 제법 큰 휴지통에 버려진 자료들이 수북이 쌓인다. 그리고 나머지는 일단 필요한 정도에 따라 두어 뭉텅이로 나눠놓고 하나하나 다시 살펴본다. 조교에게 “혹시 자네 이것 필요한가” 물어 건네주기도 하고, 어떤 것은 휴지통 가까이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끔 의외의 수확에 쾌재를 부를 때도 없지 않다.


  
그런데 당장 버리기 아까워 여기저기 꾸겨 넣었다가 나중에 책상부터 서가, 연구실 바닥까지 잡동사니 천국을 만들기 일쑤다. 그렇게 되면 산더미처럼 쌓인 별 쓸모없는 자료의 숲, 그 미로 속에서 제대로 된 것 하나를 찾아내려면 온갖 고생과 시간낭비를 해야 한다. 결국 이들 자료들 대부분은 내손 한번 닿지 않은 채 몇 년 만에 한번 하는 연구실 총정리 때 한몫에 버려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자료를 고르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되뇌던 말이 “버리자, 과감히 버리자”다


  
돌이켜보면 젊은 나이에는 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챙겼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정년 가까워지면서 보다 많은 것을 제법 과감히, 그리고 별 망설임 없이 버렸던 기억이다. 적은 것을 더 채우려고 애쓰는 것보다 크게 버려 스스로를 비우는 것이 더 슬기롭다는 것을 몸소 체득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버릴 것이 많아진다. 여년이 길지 않으니 일을 더 벌리기 보다는 줄여야 하고, 거기에 맞춰 욕심도, 집착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훨훨 털고 한껏 비워 삶을 더 단순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만드는 것이 노년의 자연철학이 아닐까 한다. 거기에는 순리대로 사는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노욕이 아닌가 한다. 노인이 <제 일>을 찾아 그 일을 열심히, 보람 있게 하는 것은 노욕이 아니다. 문제는 온갖 세속에 대한 늙은이의 헛된 욕심과 추한 집착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욕되게 하고 주위를 어지럽게 만든다. 때문에 노년의 아름다움은 노욕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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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eap nfl jerseys 2012.10.17 12:2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어느정도 무감각해진답니다~


이미 학기도 저물고 내 경우 종강도 했다. 이번 학기가 정년을 앞둔 마지막 학기이니 대학강단 에서의 내 역할은 사실상 끝난 것이다. 처음 시간강사로 대학 강단에 선지 42년, 전임교수 생활 35년의 긴 여정이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얼마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 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앞선다. 이제 정말 자유로운 영혼으로 얼마 남지 않은 <내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에 교수 초년병일 때처럼 가슴이 부푼다.

이 지면을 통해 행정학과 학생들에게 마지막 강의삼아 학창생활을 하는데 유의해야 할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제목도 종강록이라 정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데 다섯 가지로 줄였다.

첫 번째 부탁은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처음처럼> 살라는 얘기다. 큰 맘 먹고 처음 시작했을 때의 꿈, 목표, 희망, 열정, 의욕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엇보다 긴장과 결의가 있다. 그것은 새벽 창문을 열고 처음 느끼는 신선한 찬 공기처럼, 우리를 무섭게 흔들어 새로 깨우는 힘이 있다. 초심에서 멀어져 가는 자신을 다그치며, 초심으로 회귀하는 노력을 줄기차게 계속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우리는 일상의 늪에 빠져 <그날이 그날>인 삶을 살게 된다.

두 번째 부탁은 <deep play를 하라>는 것이다. 매사에서 피상적인 것, 겉치레하는 것, 상투적인 것을 피하고, 가능하면 본질에 접근하는 노력과 진지함, 의미 찾기, 파고들기를 얼마간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요새 많이 쓰는 말로 진정성이 배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회는 <deep player>들에게 사회적 신뢰로 보상한다.

세 번째 부탁은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바로 내 주위에 행복의 값진 실마리들이 곳곳에 있다. 내 가족과 이웃들, 집근처, 통학 길, 친구들이 모두 내 행복의 보금자리들이다. 그것들을 그냥 스쳐가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연세대학교가 제공하는 수많은 기회들을 고르게 <착취>하자. 자과(自科)중심의 강의나 교육과정에 파묻히기 보다는 폭넓은 강의선택을 하고, 교내에서 일년 내내 진행되는 각종 국제회의, 세미나, 특강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서관의 각종 프로그램, 서클활동, 연구모임에도 선택적으로 참여하자. 아직도 꽤 남아있는 연세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산책로를 개척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네 번째 부탁은 <시간을 관리하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기 시간의 관리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어차피 <시간싸움>이다. 지나치게 촘촘한 미시적 시간계획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가끔 시간의 여백을 마련하고 정신적 이완을 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큰 줄거리의 시간계획은 꼭 필요하다. 중장기, 그리고 하루의 시간의 배열, 우선순위의 설정,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참고로 나는 전형적인 <새벽형>이다. 대체로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 반까지는 공부를 한다. 그 시간에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절대 시간>이다. 그러면 그 날 다른 일로 쫓겨 다시 책상 앞에 앉지 않아도 네트(net)로 최소한 몇 시간은 챙길 수 있다. <틈새 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가 정부에 있을 때, 항상 잠이 부족했다. 그래서 차로 이동할 때는 언제나 잠시나마 <조각잠>을 잤다. 그게 얼마나 달콤했던지. 내 제자 한 사람은 먼 곳에서 통학을 했는데, 붐비는 버스 간에서 항상 리시버를 귀에 꽂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어학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는 지금 유엔 차석대사를 일 하고 있다.

다섯 번째의 당부는 <미래를 낙관하라>는 것이다. 비관적 미래조망, 자포자기, 쉬운 포기는 금물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은 일의 성취를 위해서도 필수적이지만, 우리의 정신건장을 위해서도 최상의 묘약이다.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지만, 미리 지나치게 걱정하고, 안되거니 생각하면 정말 될 일도 안 된다. 만사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빛을 최대한으로 키우고, 그림자를 줄이는 노력을 열심히 하면 점차 성취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인간은 엄청난 발전잠재력을 갖고 있다. 정체절명의 위기를 인생최대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할 때, 여러분은 모두가 <성공사례>가 될 수 있다.

쓰다보니 할 얘기가 너무 많다. 한 가지만 더 보태자. 행정학이 실용적 학문이라, 좋은 점도 많지만, 걱정도 많이 된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여정에서 지나치게 <이(利), 불리(不利)>를 따지기 보다는 <의(義), 불의(不義)>를 가리는 노력도 함께 했으면 한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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