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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45

내가 20대에 지향했던 세 가지 직업 I. 나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과를 다녔다. 왜 딱히 그 전공을 택했는지는 조금 불분명하다. 그래도 내가 어려서부터 정치현상에 대해 관심이 컸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중학교 1 학년부터 동아일보의 게재되었던 백광하의 명 정치단평 에 빠져 밥은 걸러도 그 칼럼은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라는 영역은 내 공부 대상이었을 뿐, 내가 직접 정치를 해 보겠다는 생각은 그 때나, 그 이후나 추호도 없었다. 내성적 성격이고 권력추구나 승부사 기질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내 스스로 정치라는 거칠고 혹독한 바닥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일찍부터 정치가 우리의 삶에서 무척 중요한 영역이라는 점을 절감했고, 그것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예측하는 일이 그리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대학 2학년.. 2017. 1. 11.
전병재 교수 팔순에 부쳐 ‘영원한 장년’ 전병재 교수님 I. 전병재 교수님은 나와 30년 가까이 같은 대학교에서 함께 교수로 재직했던 분이다. 입학으로 따져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세 해 선배로 여러 해 여의도에서 이웃으로 지냈고 전공도 전 교수님이 사회학, 내가 행정학이니 비교적 가까운 이웃 학문이어서 학문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눠왔다. 국제회의에도 함께 참석했던 인연도 있다. 이런 저런 연고로 전 선배와는 이른바 ‘절친’은 아니지만, 실로 오랜 포도주처럼 곰삭은 사이이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전 교수님의 영상은 아직도 30년 전 함께 자카르타 행 비행기에 오르던 장년의 모습 그대로인데, 그가 벌써 8순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많은 이가 세월 따라 변했지만 그는 정말 한결같은 분이다.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이 작년 가을쯤이.. 2016. 6. 14.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 I. 나는 학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유학을 가서 정치학과 행정학을 함께 했다. 평생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지만, 연구 내용으로 따지면, 내지 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정치학과 행정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많은 경우 양자를 연계융합해서 공부하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고집스럽게 정치학이나 행정학 중 한 영역을 고수하려고 필요이상 애쓰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 정치학은 보다 본질학문에 가깝고 이론적 성격이 강하다. 반면 행정학은 보다 실용학문의 속성이 뚜렷하며 실천적 측면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정치학과 행정학은 학문체계상 분류이지, 살아있는 정치와 행정의 세계는 서로 이어지며, 상호교호하며 보완한다. 따라서 행정을 외면한 정치나, 정치와 무관한 행정은 생.. 2016. 3. 24.
고 이문영 교수님 2주기에 부쳐 이 글은 2016년 1월 16일, 평택대학교에서 열렸던 추도식에서의 행한 나의 추도사이다. 우리 모두가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소정(小丁) 이문영 선생님께서 하나님 곁으로 가신지 벌써 두해가 되었습니다. 이에 오늘 우리는 그를 추억하고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특히 오늘 여기서 이 교수님의 주저(主著) 중 하나인 의 영문 번역 출간을 함께 축하할 수 있게 되어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함께 해 주신 가족 여러분,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는데 수고가 크신 평택대학교와 김문기 목사님, 그리고 책 (Man. Religion. State) 번역에 고생이 컸던 고창훈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소정 이문영 선생님을 정말 .. 2016. 1. 22.
하늘색 도자기 항아리의 추억 I. 1980년대 10년은 내 나이 40대였다. 한창 바쁘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경제적으로는 항상 쪼들렸다. 80년대 중반은 슬하의 남매가 각각 고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였다. 그런데 아파트를 조금 늘리려고 은행 융자를 받았는데, 그게 힘에 부쳐 매달 적자를 면하기 어려웠다. 생활비를 줄여 보려고 애를 썼지만 적자행진은 그치질 않았다. 궁리 끝에 나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고안했다. 일종의 가족 전체가 참여하는 강제 긴축 방안이었는데, 내용인 즉, 거실에 있는 아가리가 조금 큰 항아리 안에 내 월급에서 매달 지불해야 할 공과금, 학자금, 대출상환금, 이자 등을 미리 차감한 나머지 잔액을 넣어두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게 가족 생계비의 흐름을 고려하면서 각자 알아서 (양심껏) 꺼내 가.. 2015. 10. 3.
걱정마라, 분명 길이있다 I. 1965년 가을 나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해 봄에 이미 장학기관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했고, 초 여름에 당시 외국 유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과했던 문교부 유학시험을 거쳤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시험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오스트리아에 도착해서 빈(Wien)대학에 입학하려 하니, 입학 조건으로 독일어 구두시험을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척 당황했다. 당시 내 독일어 실력은 책을 읽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으나, 말하기로 따지면 실제로 입도 때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더욱이 일주일 후로 구두시험 날짜까지 정해지자, 하늘이 깜깜해 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장학시험에 합격해서 같이 유학 온 K형은, 이미 한국에서 몇 해 동안 독일인 신부님에게 독일어 회화를 .. 2015. 4. 15.
'지애학교' 학부모의 눈물 I. 서울시 교육청은 이미 1995년 2월부터 특수교육 환경개선을 위해 3만 2천여평 경기고등학교 안 공터 2천 4백여평에 정신지체 장애아를 위한 ‘지애학교(후에 정애학교) 건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남구청이 삼성동 일대의 주민들의 반대와 환경훼손을 이유로 서울시 교육청과의 사업시행계획협의 요청에 계속 불응하는 바람에, 공사 시작의 삽도 들지 못한 채 갈등은 첨예화, 장기화되고 장애아 부모들의 가슴은 타들어갔다. 1997년 6월 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 나는 고심 끝에 K 강남구청장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K 구청장은 나의 경기고등학교 후배였다. K 구청장님 그간 안녕하십니까. 무척 바쁘시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번 전화통화 이후 소식을 기다리다가 몇 자 글월을 보냅니다. 경기고등학교 부지 내 .. 2015.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