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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그 해 겨울, 벽난로의 낭만 l. 2008년 이곳 원암리에 새집, 현강재를 짓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벽난로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면서 하얗게 눈덮힌 겨울 따스한 벽난로 옆에 비스듬이 누워 한가로이 책을 읽어나 음악을 듣는 정경을 떠올리곤 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집 짓는 과정을 도맡았던 처에게 내가 주문했던 것은 단지 그것 하나였다. 공사가 꽤 진행되었을 때, 내가 벽난로를 잊지 말라고 다시 일깨웠다. 그러자 처는 걱정 말라며 벽난로가 들어앉을 자리와 벽에 연통이 나갈 구멍까지 마련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루는 벽난로를 보러 가자며 서울 강남의 어느 건축자재 전문 백화점으로 데리고 갔다. 다양한 철제 벽난로 중에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놀웨이제 벽난로였다. 무엇보다 요란스럽지 않고 간단해서 좋았다. 가게 주인도 “잘 고르셨습니다.. 2020. 5. 13.
고성산불, 연례행사? I. 5월 1일, 오전까지 날씨가 멀쩡했는데, 오후에 접어들면서 건조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바람이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저녁녘이 되자 흔히 ‘화풍’이라 불리는 ‘양강지풍’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몰아치는 강풍에 이제 막 아름다운 연두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이 허리가 휘도록 흔들리고, 바람소리도 마치 괴기영화에서처럼 공포스런 굉음을 내며 고막을 휘저었다. 봄철 이곳에서는 늘 겪는 현상인데, 그날따라 불안한 마음이 잔물결처럼 일렁였다. 그러면서 작년 4월 4일. 고성 산불의 악몽이 머리를 스쳤다. 밤 9시가 넘어 침대에 편하게 누어 jtbc의 ‘팬덤싱어’를 시청하고 있는데, 서울의 C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TV에서 그곳 토성면에서 또 산불이 났다는데, 알고 있지”라고 내게.. 2020. 5. 4.
현강재의 추억 현강재가 불탄 후, 잊으려 해도 자주 생각이 난다. 10년 반 쯤 그곳에 살았는데, 그 기간이 내 인생에서 매우 소중했던 시절이기에 더 그런듯 싶다. 많은 이들이 현강재를 찾았는데, 아래에 몇몇 신문과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인터뷰 내용은 다 생략하고 현강재를 묘사한 부분만 여기 옮긴다. 마지막 인터뷰는 산불 후, 전화로 인터뷰한 것이다. * 조선일보(2008/09/25) 한삼희의 환경칼럼 “안병영씨네 손수지은 다섯 번째 집” 몇 가지 묻고는 집 지은 현장으로 갔다. 미시령터널을 나와 속초 시내로 들어가기 전 어느 마을 외곽이었다. 안 교수 부인이 설계도 하고 인부도 직접 부려 지었다는 집이다. 1m쯤 쌓은 석축 위에 올린 단층집인데 겉 벽엔 투박한 연갈색 석재를, 지붕은 스페인 양식의 황색 기와를 썼.. 2020. 4. 26.
바로 1년 전 오늘 I. 고성 산불이 난지 벌써 오늘로 만 1년이 되었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집이 전소되고 무엇보다 그간 책을 쓰려고 모았던 온갖 자료들, 특히 애지중지 간직해 온 USB 열 개까지 모두 잃은 후 너무 허망해서 한동안 넋이 나간 느낌이었다. 곧바로 새로 컴퓨터를 사고 다시 글을 쓸 채비를 했으나, 도무지 책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한숨 크게 쉬고 손가락만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일어나기가 일수였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따르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런데 그나마 내 마음을 잡아준 것은 농사일이었다. 산불이 났을 때, 이미 농사철에 접어들었고, 그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터와 알뜰히 가꿨던 대부분의 과수는 다행히 큰 피해 없이 화마를 피했고, 파릇파릇.. 2020. 4. 4.
어느 불자의 보시(布施) 이야기(재록) I 언론계 출신인 내 가까운 친구 S 는 독실한 불자 (佛者 )다 . 천주교 신자인 나도 그를 따라 이곳저곳 전국의 사찰을 자주 찾는다 . 나는 고즈넉한 산사의 법당에서 서양 작은 마을의 오래된 옛 성당이나 공소를 찾았을 때와 흡사한 느낌을 갖을 때가 많다 . 아래 글은 오래 전에 S 로 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인상적으로 뇌리에 남아 여기 옮긴다 . 아래 II 의 화자 (話者 )는 S 다 . II 1993 년 11 월 , 한국 불교계의 큰 별 성철스님이 입적하셨다 . TV 를 통해 성철스님의 다비식을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 그의 다섯 상좌 중 한 분이 눈에 익어 , 자세히 살펴보니 TV 화면에 등장한 W 스님은 나와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재학시설 무척 가깝게 지냈던 죽마고우 K 가 아닌가 . W 스님.. 2019. 3. 6.
리스본행 야간열차 I. 나는 내가 예전에 살았던 곳을 무척 그리는 편이다. 이제 나이가 80 문턱에 이르렀고 그런대로 변화무쌍한 세월을 보냈으니 국내외에서 내가 그간 머물었던 곳도 꽤나 많았다. 따져보니 한 20여 차례 옮겨 살았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 한 곳 한 곳이 다 내 마음의 고향같이 느껴진다. 어쩌다가 옛날에 살았던 도시나 동네 근처에 가는 길이 있으면,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옛집과 옛터를 찾아 나선다. 외국의 경우, 대체로 내가 살던 집과 이웃 동네가 마치 그간 시간이 멈췄던 듯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변화의 폭이 커서 몇 년 후에 찾아가도 완전히 딴 세상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공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옛 시간은 그 언저리에 그대로 남아 맴돌며 나를 반기고 낭만을.. 2019. 3. 1.
마침내 스마트폰? I. 얼마 전 교육부에 같이 있던 분이 나를 찾아와서 함께 담소를 나누던 중, 내 핸드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분이 대뜸, “아니 한때 교육정보혁명에 앞장서던 분이 아직 폴더폰이라니요. 요새 그 폰 쓰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요. 빨리 바꾸세요.” 라며 펄쩍 뛰었다. 나는 무안해서 “하루에 한, 두 번 전화하고 받는 게 고작인데, 무슨....” 하며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가 문명의 이기에 대해 감수성이 무딘 편이라는 것을 자인했다. II. 그런데 보다 근원적으로 따져 보면, 모든 게 내가 기계치(機械癡)라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다. 나는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전기 기구나 전자제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절절맨다. 내 손이 가면 으레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 2019.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