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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김동길 교수님을 추억하며 I. 김동길 교수님이 서거하셨다. 부음을 접하니, 한국 현대사와 함께한 그의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내가 연세대 2학년 때, 그가 30대 초반 젊은 나이로 같은 대학의 사학과 전임으로 부임하셨고, 내가 연세대 교수로 간 197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 간 같은 대학에 함께 재직하셨으니, 김 교수님과 나와의 개인적 인연도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김 교수님과 나는 어쩌다 만나면 서로 반기는, 말하자면, 그냥 잘 아는 사이였을 뿐,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눈 기억은 많지 않다. 대체로 그는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공적’ 존재였고, 나는 시청자나 독자로 그를 멀리서 바라보며 지냈다. 그러면서 때로는 그의 관점을 공감, 지지했고, 때로는 그렇지 않아 내심 못마땅한 적도 적지 않았다. 나는 단연 .. 2022. 11. 8.
국민배우 안성기 국민배우 안성기가 혈액암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무척 아프다. 아랫글은 내가 11년 전(2011.2.21)에 에 올렸던 글이다. 그의 쾌유를 빌며 같은 이름의 글을 다시 올린다. I 나는 요즈음 평소에 존경했던 경륜 있는 배우가 암이나 실버보험, 상조나 장례보험 광고에 나와 과장스러운 내용의 멘트를 하거나 여기저기 겹치기로 나오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TV 채널을 돌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가 나올 때는 은근이 부아가 나서 아예 TV 를 꺼 버릴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안성기가 생각난다. II 국민배우 안성기를 처음 만난 것은 1959년 내가 대학 1학년 때이다. 그때 안성기는 장난기가 얼굴에 가득한 초등학교 1, 2학년짜리 어린아이였다. 하지.. 2022. 9. 17.
반세기만에 제자 상봉 I. 석 달 쯤 전 일이다. 스승의 날 전후 였던 것 같다. 핸드폰이 울려 받았더니, 낯선 목소리로 누가 “선생님, 저는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70 학번 제자 B 입니다. 대학 다닐 때 농구를 했는데 혹시 기억나시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겸연쩍은 목소리로 “미안하네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라고 답했다. 큰맘 먹고 전화를 했을 터인데, 실상 그렇게 대답하자니 미안하기 짝이 없는 심경이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시겠지요. 워낙 오래됐으니까요. 저는 그간 미국에 이민을 가서 수십 년 그곳에 살다 최근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저를 따듯하게 보살펴 주셨던 일이 자주 생각이 나서 귀국한 김에 꼭 한번 뵙고 싶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시간을 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2022. 8. 8.
'독일의 양심' 헬무트 슈미트 (Helmut Schmidt) I. 1982년 서독의 제5대 총리 헬무트 슈미트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 누구도 그가 “최후의 위대한 독일인”으로 추앙될 것을 예감하지 않았다. 슈미트는 총리로서 뛰어난 위기관리자였으나, 그의 전임자인 브란트의 ‘동방정책’이나 그 후임자인 콜의 ‘독일통일’과 같은 괄목할 만안 역사적 업적을 내세울 것이 없었고, 그 특유의 아집과 오만, 그리고 냉정함이 적지 않은 사람의 눈에 거슬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세월과 더불어 서독의 정치, 경제, 종교, 스포츠 등 모든 영역에서 수많은 ‘한때’의 명사들이 하나, 둘, 그 빛을 잃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오직 한 사람, 슈미트는 날이 갈수록 높게 재평가되어 이제 ‘최고의 총리’, ‘독일인 최상의 도덕적 권위’, ‘최고의 현인’, ‘독일의 양심’.. 2022. 6. 16.
'권력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 널리 알려졌듯이 브란트(1913-1992)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이미 10대 때 급진적 사회주의에 투신하였다가 1933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노르웨이로 망명한다. 이후 노르웨이가 나치독일의 수중에 들어가자 다시 스웨덴으로 건너가 줄기차게 반파시스트 운동에 참여한다. 브란트는 스칸디나비아 망명 시기 동안, 그곳의 비교조적, 실용주의적 사회민주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후 스칸디나비아 사민주의는 그의 이념적 준거틀이 되었다. 브란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로 돌아와 사민당에 재입당했으나 나치 때 조국을 떠났다는 사실 때문에 한때 ‘배신자’로 부당하게 비판을 받는 등 숱한 고초를 겪는다. 이후 브란트는 서독 정계에서 빠르게 부상하였으나, 그의 정치역정은 가시밭길이었다. 브란트는 그의 신선한 개.. 2022. 6. 6.
정치는 인성을 파괴하는가 I. 코로나가 창궐하는 가운데 말도 많고 탓도 많았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별칭이 따랐던 이번 대선에서, 특히 후보자의 인성과 도덕성 문제가 많은 논란을 빚었다. 많은 이가 정치가의 인성이 좋은 정치의 열쇠라고 주장했고, 또 적지 않은 이는 일할 능력만 갖췄으면 얼마간의 도덕성의 흠집은 눈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연관하여 제기되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 ‘정치가 인성을 파괴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내 어정쩡한 대답은 ‘인간이 권력에 가까이 가면 인간성이 파괴될 개연성이 무척 높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이다. 정치권력을 둘러싼 다툼은 언제나 치열하다. 승리가 건져낼 전리품이 막대하고, 패배가 감내해야 할 손실과 아픔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승리를 의해 .. 2022. 6. 6.
교신 (交信) 그간 내가 오랫동안 에 글을 올리지 않아, 많은 이들이 문의를 해 왔다. 걱정을 끼쳐 죄송하기 짝이 없다. 변명 겸, 최근 미국에 사는 가까운 친구와 나눈 이메일 하나를 아래에 옮긴다. 고교 동창인 이 친구는 미국에 오래 살아 영어가 편해 늘 영어로 글을 보낸다. 그러면 나는 한글로 답한다.. HyunGang, It's been a while since I read your essay in your blog. As you were in my thought, I had opened HyunGang.Tistology regularly. However, I was not able to see a new one since "The grim outlook for new year." It made me to wri.. 2022.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