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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타자의 눈으로 보기 I 나는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 차창에 비친 도시 풍경이나 한국인의 생활상을 보며, “만약 외국인이 저 모습을 보면 무어라고 말할까”라는 상상을 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 내가 잠시 외국 관광객이 되어 그들의 눈을 빌려 차창에 스쳐가는 정경을 유심히 관찰하고 가능한 한 그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애써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이나 모습들이 간혹 자랑스럽고, 흐뭇할 때도 있으나, 적지 않은 경우 부끄럽고 안쓰러워 얼굴이 붉어질 때가 없지 않다. 이처럼 타인의 눈을 빌려 내 자신을 비쳐보는 일은 자신을 보다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깊이 있게 내적 성찰을 하는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요즘처럼 ’글로벌 관점‘(global perspective)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에는 .. 2012. 10. 4.
감동하는 능력에 대하여 I 아주 오래전 우리 집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 얘기다. 두 살 터울인 남매와 동네에서 함께 산보를 나갔다. 마침 서편 하늘을 보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이 무척 아름다웠다. 장엄하고 신비로웠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저걸 봐라 얼마나 아름답니, 놀랍잖니‘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그 쪽을 흘깃 처다 보더니, 그냥 눈을 돌렸다. 별로 감흥이 없어 보였다. 나는 재차 ”정말 멋있지“하고 다그치듯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마지못해, ”응, 근사해“라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눈길은 이미 거기서 떠나 있었다. 감동한 눈빛이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화가 났다. 아니 한창 감수성이 뛰어나야 할 그 나이에 저 자연의 신비, 오묘한 절경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다니. 도시아이들이라.. 2012. 9. 13.
대화 2 * 이 글은 대화 1의 후속편입니다. A군: 많은 국민들이 실제로 이념적으로 중도적인 입장인데, 일정한 쟁점이 부상하면 그에 대해 양극으로 갈라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나: 우리 나라의 유교전통 속에 옳고 그른 것을 칼로 자르듯이 분명하게 가르는 이른바 (闢異論)적 요소가 매우 두드러지는데, 우리들 심성 속에도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할 때는 무언가 맺고 끊는 식이어야 한다는 심리적 성향이 크게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싶네. 그러다 보니 당초 마음의 상태보다 결정의 순간에 더 양극으로 치닫는 경향이 엿보이네. 그 외에도 양당 정당체제, 그리고 전부를 쟁취하거나 전부를 잃어버리는 대통령 중심제 정치제도도 이 경향을 부추기고 있지 않나 싶네. 그런가 하면, 특히 우리의 경우 사회적 책임을 .. 2012. 8. 28.
대화 I I. 세월이 화살처럼 흘러 1970년대 초 내게 배운 제자들도 이미 60줄에 들어섰다. 그러니 그들과 같이 늙어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얼마 전 그 중 한 친구인 A군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길게 나눴다. 아래의 대화는 기억을 더듬어 그때 그와 나눈 얘기를 옮겨 본 것이다. II. A군: 제가 지난 40년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선생님의 글과 삶을 추적했는데, 그동안 많이 보수화되신 것 같아요. 70년대에는 이념적으로 분명 라고 느꼈는데, 80년대 중반 이후는 , 그리고 최근에는 오히려 가 아니신가 싶어요. 제가 잘못 본 것일까요. 그런데 선생님 자신은 언제나 를 자처하셨어요.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죠. 나: 글쎄. 나는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인데, 세상이 바뀌니 그렇게 비춰지는 게 아닐까. 물론 .. 2012. 7. 27.
잡초와의 전쟁 I. 작은 규모이지만 농사를 시작한 후 가장 큰 어려움이 잡초라는 희대의 난적(難敵)과의 싸움이다. 잡초가 제일 맹위를 떨치는 요즈음 여름 한철에는 적어도 하루 대여섯 시간은 잡초 뽑는데 시간을 보낸다. 오랜 가뭄 뒤에 비가 오면 반갑기 그지없으나, 비 온 후에 더 기승을 부릴 잡초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땡볕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와 씨름하다 보면, 내가 이 짓을 하려고 이곳에 왔나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다. 그런데 2, 3일만 소홀히 해도 농토가 온통 잡초 천지이니 어쩔 수 없이 그들과의 힘겨루기가 일상사가 되었다. II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잡초를 ‘아직 그 가치가 발견되지 않은 식물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잡초는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무 쓸모없는, 그러면서도 그 강인한.. 2012. 7. 11.
수면 이야기 몇 가지 더 I. 지난 글에서 내 유일한 재주인 머릿속에 미리 입력한 시간에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나는 '머릿속 자명종' 얘기를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이왕 시작한 김에 오늘 내 수면 습관에 관련해 몇 가지 에피소드를 더 펼쳐 보려고 한다. 쓰려하니 마치 무용담을 떠버리는 것 같아 낯이 간지러우나, 거짓 없는 얘기이니 그냥 재미로 읽어 주시기 바란다. 특히 수면장애로 고생하는 분들의 깊은 양해를 구하다. II. 내 모습이 ‘후덕하게’ (?) 생겨서 잠이 많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잠이 적은 편이다. 20대 후반이후에는 대체로 5시간 내외의 수면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그 정도 자면 대체로 일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 바쁠 때는 수면시간을 조금 줄이고, 낮에 틈틈이 자는데, 내가 자주 애용했던 것이 차안에서의 단잠.. 2012. 6. 19.
머릿속 자명종 I. 나는 스무 살 무렵, 일 년 이상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런데 한번 그 고비를 극복한 뒤에는 잠자는 데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잠을 잘 자는 것은 내 인생에서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눕기만 하면 쉽게 잠이 들고, 대체로 숙면을 한다. 그리고 깨고 싶을 때 눈을 뜬다. 그런가 하면 잠이 부족하면, 틈새 시간에 잠시 눈을 붙여 어렵지 않게 모자란 잠을 벌충한다. 그런데 수면 습관과 관련해, 나는 한 가지 재주라면 재주, 능력이라면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잠자리에 들면서 일어날 시간을 미리 머리에 입력하면 한 치의 어김도 없이 그 시간에 눈을 뜬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명종이 따로 필요치 않다. 이러한 머리에 입력된 은 컴퓨터처럼 정확해서 내가 기억하는 한 20대 후반이.. 2012.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