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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89

무엇이 좋은 질문인가 I. 1964년 서독의 게르스텐마이어(Eugen Gerstenmaier, 1906-1986) 하원의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게르스텐마이어는 신학자로 히틀러에 항거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던 서독의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의례적인 질의응답이 오갔는데, 갓 대학을 졸업한 듯 앳된 얼굴의 의 L 기자가 유창한 독일어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의장님께서 한독 간의 특별한 관계를 말씀하시며 특히 양국 간의 긴밀한 문화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서독이 국제 문화협력을 위해 세계 곳곳에 세우고 있는 괴테-인스티튜트(독일문화원)가 아직 한국에는 없다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게르스텐마이어 의장은 꽤나 난처한 낯빛으로 깊은 유감을 피력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빠른 기간 내에 독일문화원을.. 2013. 7. 31.
농사 여담(餘談) I. 지난 겨울은 무척 길고 혹독했다. 그 바람에 그간 몇 년간 애써 키웠던 여러 그루의 나무를 잃었다. 집 앞의 5년생 앵두나무는 이제 제법 큰 나무로 자라 작년에는 제법 풍성한 수확도 거뒀는데 두 번 태풍에 밑동이 크게 흔들리더니 끝내 긴 겨울을 견뎌내지 못했다, 재작년 가을 양양 5일장에서 사온 3년생 감나무 두 그루도 끝내 모진 겨울을 건너뛰지 못했다. 나무마다 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그래서 멀쩡하던 나무가 병들거나 죽으면, 그와의 첫 인연까지 복기(復棋)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 가운데 지난 겨우 내내 내 마음을 가장 조리 게 했던 것은, 작년 초 지리산 600m 고지에서 블루베리 농장을 하는 제자 Y군이 내게 보내 온 100 그루의 묘목이었다. 말이 묘목이지 크기가 손가락만한 가녀린 어.. 2013. 6. 28.
50세부터는 인격이 좌우한다 I. 나는 제자들에게 자주 인품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인격이나 사람 됨됨이가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그에게 큰일을 맡기기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다. 젊었을 때는 남보다 능력이나 재주가 월등하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윗사람의 총애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남보다 빨리 승진하거나 중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직의 계층제에서 일정 단계를 넘게 되면,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달라진다. 당사자의 업무능력이나 기능적 우수성 보다 그 사람의 인품과 신뢰성의 비중이 부쩍 높아지게 마련이다. 정부 관료제의 국장급 이상, 대기업의 임원, 혹은 다양한 조직의 핵심적 직책처럼 높은 수준의 공적 책임과 헌신을 요구하는 자리들의 경우, 별 예외 없이 그러하다. 그래서 .. 2013. 6. 7.
염력(念力) I. 진정성이 깃들인 말 한 마디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나는 지인들로부터 아래와 같은 얘기를 들을 때 그런 느낌을 갖는다. "T.V로 일기예보를 시청할 때면, 안 교수 생각을 자주 하게 되네. T.V 화면에 딱히 속초/고성 지역 예보는 나오지 않지만 강릉 일기는 나오지. 강릉 조금 위이니 대충 일기가 비슷할 게 아닐까. 서울보다 추운지, 더운지,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그러면서 저 친구 지금 무얼 할까 상상해 보지.“ “미시령이 눈으로 막혔다거나 그곳에 폭설이 온다면 괜히 걱정이 되지. 안 교수 집이 또 고립되겠구나 싶어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고마운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지인들이 이처럼 나와 교감하며 내 생각을 해 주는 구나. 그들이 무언중에 나.. 2013. 5. 22.
홈커밍(homecoming) I. 연세대학교 졸업생들은 졸업 후 25년과 50년이 되는 해 5월(개교 기념일)에 모교를 찾아 옛 친구들과 은사들을 다시 만나는 이른바 재상봉(홈커밍) 행사를 갖는다. 5월의 신록처럼 한창 푸른 나이에 학교를 떠났다가 머리가 희끗 희끗한 50 문턱의 장년으로, 또 거기에 25주년을 보태 70대 중반 가까이 노년에 이르러 모교를 다시 찾는 것이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1988년에 25주년 홈 커밍을 했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해이다. 그게 실로 어제 같은 데,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다음 주 토요일(5월 11일) 50주년 행사를 앞두고 있다. 25주년 때, 저편에 앉았던 50주년 선배들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선 그 분들이 수 십 명에 불과해서 그 자리가 무척 허전해 보였다. 하나.. 2013. 5. 2.
나의 <대안 찾기> 여행 I.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나는 남들이 하는 식으로 똑 같이 행동하거나 한 가지 해답에 집착하기 보다는 열심히 를 해 온 편이다. 한 길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그 때 그때 선택가능한 다양한 행동경로에 두루 관심을 갖았고, 늘 대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길, 다른 선택지(選擇肢)를 택할 때 크게 망설이지 않았고 그 때마다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도 않았다. 나는 (all or nothing)식의 극단론을 배척하며, 일을 처리하는데 일정한 방식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정석(定石)적 사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정관념이나 상투어 같은 를 무척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내 인생은 줄곧 , 여행이었다. II.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몸이 무척 아팠다. 그래서 5월 이후 학교에 가지 .. 2013. 4. 7.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내가 에 관해 책을 쓰고 있다고 장광설(長廣舌)을 한 것이 재작년 겨울(현강재, 2011/12/21일 ‘미리 적는 발문(跋文)’참조)이었다. 그 후 별 소식이 없으니, 많은 분들이 책이 어떻게 되었느냐가 물으신다. 그래서 오늘은 그 답을 드려야겠다. 초고는 작년 봄에 마쳤으나, 그 후 얼마간 보완작업을 하며 차일피일 늦추다가, 며칠 전에 원고를 출판사(문학과 지성사)에 넘겼다. 그간 산고(産苦)가 만만치 않았다. 아직 책 이름도 확정을 못 짓고 있는 형편인데, 앞으로 편집해서 책이 나오기 까지는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것 같다. 아래에 책의 머리글 를 옮겨 본다.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I. 최근 들어 , , 등 유럽의 모범적 강소국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점차 이 나라들의 제도와 정책.. 2013.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