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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선생님' <연세동문회보> (2013/2/1) 2013. 3. 17.
"L군, 어디 잘있겠지?" I. 오래된 일이라 시점이 확실치 않다. 내 기억으로는 유신 말기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경과를 따져보면 1980년대 초 이른바 5공 초기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무척 엄혹했던 권위주의 시절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교수로 일하던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학생 한명이 정권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렸다가 경찰에 잡혀갔다. 얼굴이 희고 귀티 나는 귀공자 타입의 3학년 L군이었는데, 평소에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혼자 저지른 일이 었다. 그런데 글 내용이 매우 신랄하고 비판수위가 높아 정보기관에서 크게 다룬다는 얘기가 들렸다. 얌전히 학교에 잘 다니던 외아들이 잡혀 들어가니 집안에서도 난리가 났다. 몇 살 위 시집안 간 누나가 사색이 되어 학교로 쫓아왔던 기억이 난다. 결국 제적이 되고 한 동안.. 2013. 3. 12.
장발의 수난시대 I. 1971년 초 유학에서 돌아 왔다. 공황에 나왔던 친구가 나를 보자 요즈음 장발단속이 심하다며, “머리부터 깎아야겠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미 한국에 장발단속 소문을 들었기에 웃으면서 “그래야지”라고 답했다. 그런데 막상 머리를 깎으려니, 영 내키지 않았다. 우선 반민주적 권위주의 정부가 1945년 제정된 경범죄 처벌법을 근거로 퇴폐풍조를 일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한다는 것 차제가 전형적인 파시스트 수법 같아서 울화가 치밀었다. 뿐만 아니라 단속이 겁나 스스로 머리를 깎는 일이 마치 체제를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 같아 따르기가 싫었다. 1968년 권위주의적인 구질서를 혁파하려고 봉기했던 진보적 학생운동이 유럽을 휩쓸 때 내가 그곳에서 공부했고, 당시도 히피의 반문화 운동이 전.. 2013. 2. 11.
껍데기는 가라 I. 1995-97년 내가 교육부장관으로 있을 때 일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전문대학 명칭에서 ‘전문’ 자(字)를 빼달라고 건의했다. 전문대학 측은 전문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니 그 ‘두자’는 빼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안 되겠다고 하자, 협의회은 물론 많은 개별 전문대학들이 대대적으로 로비에 나섰다. 그리곤 당.정.관에 접근하여 전방위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자 국회 교육위에서도 여야 없이 많은 의원들이 내게 “저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그 이름 두자 빼줘 사기를 올려주면 좋지, 작은 일에 왜 그리 까다롭게 구냐”고 나를 몰아 세웠다. 나는 전문대학은 전문 중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대학인데, 그 핵심개념인 ‘전문’을 빼면 어떻게 되느냐는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 ‘두자’가 .. 2013. 1. 20.
겨울바다 경포대까지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겨울바다는 열정의 여름바다와 대조적으로 얼마간 처연하고, 무언가 깊이 있는, 차가운 아름다움이 있다. 홀로 길 떠난 겨울 나그내의 심경이 그렇지 않을까. 2013. 1. 5.
대통령과 현인(賢人) I. 나는 평소에 대통령 가까운 거리에 현인(賢人)이 한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는 굳이 아는 것이 많고 지혜가 출중한 글자 그대로의 현인일 필요는 없다. 그 보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 그리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면 된다. 굳이 비서실장이나 특보, 수석과 같은 직책을 맡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사람이 언제라도 대통령에게 다가갈 수 있고, 대통령도 그 사람을 크게 신뢰해서 평소에도 그와 고민을 나누고, 중요한 결정에 앞서 그의 의견을 묻는 관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이 그런 사람 하나 옆에 두기가 무어 그리 어렵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게다. 사심 없는 상식인, 그러면서 대통령과 서로 신뢰하고 깊이 교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대통령을 옆에 둔.. 2012. 12. 26.
천직(天職)의 후유증 I. 나는 손수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택시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뒤를 보면서, “제가 손님이 무엇 하시는 분인가 한번 맞춰 볼까요?” 하며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넨 적이 몇 번 있었다. 내가, “그러세요” 라고 대답하면, 대뜸 “학교 선생님이시지요”라고 되묻는다. 내가 그렇다고 말하면, “얼굴에 그렇게 써 있어요”한다. 그럴 때면 내심 무척 기쁘다. 내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직업을 얼굴에 달고 다닌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내가 그간 헛살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닌가. II. 내가 대학 교단에 40년 가까이 섰으니, 가르친다는 일이 몸에 배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그것이 ‘제2의 천성’이 되었는지, 늘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든다는 비판을 자주 듣는다... 2012.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