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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안 찾기> 여행 I.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나는 남들이 하는 식으로 똑 같이 행동하거나 한 가지 해답에 집착하기 보다는 열심히 를 해 온 편이다. 한 길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그 때 그때 선택가능한 다양한 행동경로에 두루 관심을 갖았고, 늘 대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길, 다른 선택지(選擇肢)를 택할 때 크게 망설이지 않았고 그 때마다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도 않았다. 나는 (all or nothing)식의 극단론을 배척하며, 일을 처리하는데 일정한 방식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정석(定石)적 사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정관념이나 상투어 같은 를 무척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내 인생은 줄곧 , 여행이었다. II.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몸이 무척 아팠다. 그래서 5월 이후 학교에 가지 .. 2013. 4. 7.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내가 에 관해 책을 쓰고 있다고 장광설(長廣舌)을 한 것이 재작년 겨울(현강재, 2011/12/21일 ‘미리 적는 발문(跋文)’참조)이었다. 그 후 별 소식이 없으니, 많은 분들이 책이 어떻게 되었느냐가 물으신다. 그래서 오늘은 그 답을 드려야겠다. 초고는 작년 봄에 마쳤으나, 그 후 얼마간 보완작업을 하며 차일피일 늦추다가, 며칠 전에 원고를 출판사(문학과 지성사)에 넘겼다. 그간 산고(産苦)가 만만치 않았다. 아직 책 이름도 확정을 못 짓고 있는 형편인데, 앞으로 편집해서 책이 나오기 까지는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것 같다. 아래에 책의 머리글 를 옮겨 본다.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I. 최근 들어 , , 등 유럽의 모범적 강소국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점차 이 나라들의 제도와 정책.. 2013. 3. 23.
봄눈이 펄펄 폭설에 갇히지 않고 올해 처음 겨울을 나나 했는데, 봄눈이 만만치 않다. 눈발이 점점 거세진다. 글자 그대로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하다. 이 아름다움을 혼자 만끽하다니. 2013. 3. 20.
'잊을 수 없는 선생님' <연세동문회보> (2013/2/1) 2013. 3. 17.
"L군, 어디 잘있겠지?" I. 오래된 일이라 시점이 확실치 않다. 내 기억으로는 유신 말기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경과를 따져보면 1980년대 초 이른바 5공 초기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무척 엄혹했던 권위주의 시절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교수로 일하던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학생 한명이 정권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렸다가 경찰에 잡혀갔다. 얼굴이 희고 귀티 나는 귀공자 타입의 3학년 L군이었는데, 평소에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혼자 저지른 일이 었다. 그런데 글 내용이 매우 신랄하고 비판수위가 높아 정보기관에서 크게 다룬다는 얘기가 들렸다. 얌전히 학교에 잘 다니던 외아들이 잡혀 들어가니 집안에서도 난리가 났다. 몇 살 위 시집안 간 누나가 사색이 되어 학교로 쫓아왔던 기억이 난다. 결국 제적이 되고 한 동안.. 2013. 3. 12.
장발의 수난시대 I. 1971년 초 유학에서 돌아 왔다. 공황에 나왔던 친구가 나를 보자 요즈음 장발단속이 심하다며, “머리부터 깎아야겠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미 한국에 장발단속 소문을 들었기에 웃으면서 “그래야지”라고 답했다. 그런데 막상 머리를 깎으려니, 영 내키지 않았다. 우선 반민주적 권위주의 정부가 1945년 제정된 경범죄 처벌법을 근거로 퇴폐풍조를 일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한다는 것 차제가 전형적인 파시스트 수법 같아서 울화가 치밀었다. 뿐만 아니라 단속이 겁나 스스로 머리를 깎는 일이 마치 체제를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 같아 따르기가 싫었다. 1968년 권위주의적인 구질서를 혁파하려고 봉기했던 진보적 학생운동이 유럽을 휩쓸 때 내가 그곳에서 공부했고, 당시도 히피의 반문화 운동이 전.. 2013. 2. 11.
껍데기는 가라 I. 1995-97년 내가 교육부장관으로 있을 때 일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전문대학 명칭에서 ‘전문’ 자(字)를 빼달라고 건의했다. 전문대학 측은 전문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니 그 ‘두자’는 빼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안 되겠다고 하자, 협의회은 물론 많은 개별 전문대학들이 대대적으로 로비에 나섰다. 그리곤 당.정.관에 접근하여 전방위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자 국회 교육위에서도 여야 없이 많은 의원들이 내게 “저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그 이름 두자 빼줘 사기를 올려주면 좋지, 작은 일에 왜 그리 까다롭게 구냐”고 나를 몰아 세웠다. 나는 전문대학은 전문 중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대학인데, 그 핵심개념인 ‘전문’을 빼면 어떻게 되느냐는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 ‘두자’가 .. 2013.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