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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사/카툰

"지난 세월 窓이자 벗이었던 그대여" 신동아 창간 81주년 특별기고 2012년 11월호

2017. 12. 1. by 현강

뜨거웠던 내 40대의 초상

사회적 고뇌와 희망 함께하는 열린 광장 되길

 

 

 

나와 신동아의 인연은 각별하다. 우선 나는 아마도 신동아에 글을 가장 많이 쓴 필자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데 필요해서 신동아에 내가 그동안 쓴 글의 목록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살펴보니 1976년 이래 최근까지 신동아에 40편의 글을 썼다. 그런데 그 중 23편이 한국 정치가 오랜 권위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향해 숨 가쁘게 질주하던 1980년대에 집중되어 있었고, 특히 민주화의 불꽃이 가장 높게 치솟았던 1985년 초부터 1987년 6월 항쟁 직전까지 9편의 글을 썼다. 글은 대부분 신군부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민주화의 당위와 그 나아갈 길을 설파하는 정치평론이었는데, 글 목록 속에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내가 느꼈던 분노와 절박감, 열망과 감동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1980년대는 내 40대와 그대로 겹치는 시기다. 이 때문에 나는 그 목록을 보며 1980년대의 신동아 속에서 가슴 뜨거웠던 내 40대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동아의 편집위원으로 장기간 일했다. 편집회의에서는 그 시대에 걸 맞은 공공의제를 찾아내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열띠게 논의했다. 가끔 주요한 편집기획에도 참여했다. 편집위원 중에 나보다 스무 살 많은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계셨는데, 가끔 달관한 경지의 말씀을 툭툭 던지시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1991년, 신동아가 환갑이 되는 60년을 기념해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4차례의 연속기획 토론의 장을 열었는데 공전의 성황을 이뤘다. 첫 번째 주제인 ‘제3의 길은 있는가’에서 내가 사회를 보았고, 세 번째 주제 ‘복지국가의 길’에서 내가 발제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부터 21년 전에 신동아가 복지국가 담론을 펼쳤으니, 당시 신동아는 분명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내 뇌리에 가장 인상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1980년대의 신동아는 지식인 계층이 읽는 지성지와 대중이 읽는 종합지의 중간 성격을 띠었다. 어느 정도 상업성을 추구하고 있었으나, 사회와 시대에 대한 ‘의제 설정(agenda setting)’기능을 성실히 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시대적 고뇌를 같이하며 우리 사회가 무엇을 아파하는지, 우리 사회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성찰적 자세를 잃지 않았다.

 

 당시 편집위원들도 당대를 향해 비판적, 창조적 지성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타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진입한 후 신동아는 지성지의 성격이 약화되고, 교양 있는 일반 대중이 읽는 종합지로 변모했다. 그러면서 지성지의 핵심인 의제 설정 기능을 잃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나 프랑스의 ‘렉스프레스’도 시대와 더불어 지성지에서 종합지로 바뀌었으나, 아직도 의제 설정 기능이 엄연히 살아 있는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그래서 내 마음이 아프다. 시대와 매체 상황이 크게 달라진 오늘 ‘아! 옛날이여’를 외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고언(苦言)이 허락된다면, 신동아가 현재의 백화점식 편집에서 얼마간 탈피해 우리 시대의 관심 주제를 한발 앞서 제시하고, 시대의 아픔과 희망에 대해 토론하는 열린 광장의 구실을 해줄 것을 감히 청하고 싶다. 신동아가 너무 무겁지 않게, 흥미를 돋우면서,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방식으로 의제 설정 기능을 왕년의 반쯤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얘기다. 오늘 이 땅의 주요 언론매체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어 실제로 이런 공간이 비어 있다. 이 때문에 신동아가 이 빈틈을 슬기롭게 파고든다면 그러한 시도가 무모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랜 연륜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과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는 신동아가 창간 81주년인 올해를 의미 있는 변화와 발전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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