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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종강록(終講錄) 2006.12

2010. 4. 3. by 현강

이미 학기도 저물고 내 경우 종강도 했다. 이번 학기가 정년을 앞둔 마지막 학기이니 대학강단 에서의 내 역할은 사실상 끝난 것이다. 처음 시간강사로 대학 강단에 선지 42년, 전임교수 생활 35년의 긴 여정이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얼마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 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앞선다. 이제 정말 자유로운 영혼으로 얼마 남지 않은 <내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에 교수 초년병일 때처럼 가슴이 부푼다.

이 지면을 통해 행정학과 학생들에게 마지막 강의삼아 학창생활을 하는데 유의해야 할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제목도 종강록이라 정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데 다섯 가지로 줄였다.

첫 번째 부탁은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처음처럼> 살라는 얘기다. 큰 맘 먹고 처음 시작했을 때의 꿈, 목표, 희망, 열정, 의욕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엇보다 긴장과 결의가 있다. 그것은 새벽 창문을 열고 처음 느끼는 신선한 찬 공기처럼, 우리를 무섭게 흔들어 새로 깨우는 힘이 있다. 초심에서 멀어져 가는 자신을 다그치며, 초심으로 회귀하는 노력을 줄기차게 계속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우리는 일상의 늪에 빠져 <그날이 그날>인 삶을 살게 된다.

두 번째 부탁은 <deep play를 하라>는 것이다. 매사에서 피상적인 것, 겉치레하는 것, 상투적인 것을 피하고, 가능하면 본질에 접근하는 노력과 진지함, 의미 찾기, 파고들기를 얼마간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요새 많이 쓰는 말로 진정성이 배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회는 <deep player>들에게 사회적 신뢰로 보상한다.

세 번째 부탁은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바로 내 주위에 행복의 값진 실마리들이 곳곳에 있다. 내 가족과 이웃들, 집근처, 통학 길, 친구들이 모두 내 행복의 보금자리들이다. 그것들을 그냥 스쳐가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연세대학교가 제공하는 수많은 기회들을 고르게 <착취>하자. 자과(自科)중심의 강의나 교육과정에 파묻히기 보다는 폭넓은 강의선택을 하고, 교내에서 일년 내내 진행되는 각종 국제회의, 세미나, 특강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서관의 각종 프로그램, 서클활동, 연구모임에도 선택적으로 참여하자. 아직도 꽤 남아있는 연세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산책로를 개척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네 번째 부탁은 <시간을 관리하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기 시간의 관리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어차피 <시간싸움>이다. 지나치게 촘촘한 미시적 시간계획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가끔 시간의 여백을 마련하고 정신적 이완을 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큰 줄거리의 시간계획은 꼭 필요하다. 중장기, 그리고 하루의 시간의 배열, 우선순위의 설정,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참고로 나는 전형적인 <새벽형>이다. 대체로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 반까지는 공부를 한다. 그 시간에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절대 시간>이다. 그러면 그 날 다른 일로 쫓겨 다시 책상 앞에 앉지 않아도 네트(net)로 최소한 몇 시간은 챙길 수 있다. <틈새 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가 정부에 있을 때, 항상 잠이 부족했다. 그래서 차로 이동할 때는 언제나 잠시나마 <조각잠>을 잤다. 그게 얼마나 달콤했던지. 내 제자 한 사람은 먼 곳에서 통학을 했는데, 붐비는 버스 간에서 항상 리시버를 귀에 꽂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어학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는 지금 유엔 차석대사를 일 하고 있다.

다섯 번째의 당부는 <미래를 낙관하라>는 것이다. 비관적 미래조망, 자포자기, 쉬운 포기는 금물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은 일의 성취를 위해서도 필수적이지만, 우리의 정신건장을 위해서도 최상의 묘약이다.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지만, 미리 지나치게 걱정하고, 안되거니 생각하면 정말 될 일도 안 된다. 만사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빛을 최대한으로 키우고, 그림자를 줄이는 노력을 열심히 하면 점차 성취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인간은 엄청난 발전잠재력을 갖고 있다. 정체절명의 위기를 인생최대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할 때, 여러분은 모두가 <성공사례>가 될 수 있다.

쓰다보니 할 얘기가 너무 많다. 한 가지만 더 보태자. 행정학이 실용적 학문이라, 좋은 점도 많지만, 걱정도 많이 된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여정에서 지나치게 <이(利), 불리(不利)>를 따지기 보다는 <의(義), 불의(不義)>를 가리는 노력도 함께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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