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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

고 이문영 교수님 2주기에 부쳐

2016. 1. 22. by 현강

이 글은 2016년 1월 16일, 평택대학교에서 열렸던 < 이문영 교수님 서거 2주기> 추도식에서의 행한 나의 

추도사이다. 

 

 

우리 모두가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소정(小) 이문영 선생님께서 하나님 곁으로 가신지 벌써 두해가 되었습니다. 이에 오늘 우리는 그를 추억하고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특히 오늘 여기서 이 교수님의 주저(主著) 중 하나인 <인간. 종교. 국가>의 영문 번역 출간을 함께 축하할 수 있게 되어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함께 해 주신 가족 여러분,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는데 수고가 크신 평택대학교와 김문기 목사님, 그리고 책 (Man. Religion. State) 번역에 고생이 컸던 고창훈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소정 이문영 선생님을 정말 남다른 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큰 어른으로 기억합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그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이 자리에서 감히 이문영의  선생님의 개성적 특성 몇 가지를 조명해 보며, 그의 삶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소천하신 후, 한국행정학회 소책자에 기고한 추도사에서 선생님을 회고하며 그를 <지사(志士)형의 큰 학자>라고 집약해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함께 자리하신 모든 분들은 소정 선생님은 <지사>로서의 형극의 삶의 궤적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는 1970년대, 80년대에 걸쳐 불퇴전의 용기와 치열한 저항정신으로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세 번에 걸쳐 4년 6개월의 옥고를 치루셨고, 9년 6개월 이란 오랜 세월동안 해직되는 말 못할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정 선생님은 진정한 시대의 양심이자 민주화의 기념비적인 존재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분을 감히 우리 시대의 <마지막 의인(義人)이시다> 라고 서술했습니다.

 

그러나 이문영 선생님의 독특성, 그리고 그 어른의 남다른 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민주투사로서의 그의 생애에 못지 않게, 독창적, 선구적 행정학자로서 평생 추호도 흐트러짐 없이 견실하게 학문적 활동을 함께 하셨습니다. 이 점이 실로 놀랐습니다. 이문영 선생님은 민주화 투쟁기간 중에도 <한국행정론>(1980), <민주사회를 위하여>(1983)등의 저작을 통하여 학자로서의 본분을 지키시며, <행정학의 한국화>를 위해 큰 몫을 하셨습니다. 이문영 교수님의 학자로서의 진면목은 그가 오랜 영어의 생활을 되로 하고 1984년 고려대학교에 복직한 이후의 그의 학자적 삶 속에서 더 역력히 드러납니다. 그는 정계의 숱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권력의 세계와 멀리하고 다시 책상 앞으로 다가가 학문에 전념하면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뛰어난 저작들을 남기셨습니다. <논어 맹자의 행정학>을 필두로 <인간. 종교, 국가>(1991), <협력형 통치>(2006), <겁 많은 자의 용기>(2008), <3.1 운동에서 본 행정학>(2011> 등의 대작을 연이어 출간하셨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조차 행정학적 사유와 탐구를 계속하셨고, 자신의 마지막 불꽃마저 온전히 자신의 학문에 바쳤습니다. 그의 행정학 연구 속에는 언제나 한국행정의 민주화와 한국화,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명화라는 명제가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지사형의 큰 학자>이셨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한결같은 분>, 그리고 <늘 열려있는 분>이셨습니다. 일생 가정과 교회와 학교에 충실하셨고, 평생 동안 오직 한 교회를 나가셨고, 늘 속과 겉,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셨고, 또 언제, 누구에게나 한결같으셨습니다. 그가 <역사적 원점>을 중시하는 것도 바로 이처럼 한결같음을 추구하는 그의 삶의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런가 하면 이문영 선생님은 민주화 투쟁에서나 학문하는 과정에서도 언제나 늘 열려있는 분이셨습니다. 이문영 선생님은 그의 저서에서 ‘협력형 통치’와 ‘민회’를 강조하셨듯이, 민주화 운동에서도 늘 대화와 합의, 그리고 협력을 강조하셨습니다. 저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도 스스럼없이 후배와 제자들에게 조언과 자문을 구하셨고, 글을 쓰신 이후에도 몇몇 제자들과 독회를 거듭하며, 내용을 다듬고 의미전달을 바르게 하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이러한 점은 실제로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풍미하는 당시 우리 학계에서 매우 드믄 일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천성적으로 민주적 인간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소정 이문영 선생님은 매우 <겸손하고, 뒤진 자에 대한 연민>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소정 선생님은 거짓 권위와 불의에 대해서는 정말 추상같은 분이셨습니다만, 천성이 착하고 순수한 선생님은, ‘작은 머슴’을 자처하는 그의 호에서 드러나듯이, 항상 자신을 낮추고, 절제와 배려가 몸에 배인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온 몸을 받쳐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도, “의당 해야 할 최소한의 발언을 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처럼 세상을 향해서는 ‘최소한’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최

소한을 위해 외롭게 온몸을 민주화 재단에 ‘최대한’으로 바쳐, 희생, 봉헌하셨습니다. 그는 특히 소외된 사람, 핍박받는 사람, 뒤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과 연민을 가지셨고, 그들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천성이 종교적 심성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문영 선생님은 좀처럼 우리 주변에서 찾기 어려운 <속깊은 행동인>(deep player)이셨습니다. 그는 언제나 깊이, 본질적으로 사색하고 거듭 성찰하고 또 언제나 명분과 의미있는 행동을 주도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는 눈에 드러난 현상보다 속에 잠겨있는 본질을, 그리고 공식적 제도 보다 그 안에 숨어있는 원리를 탐색하였고, 겉치레와 불필요한 수사(修辭)를 삼가셨습니다. 이렇듯 소정 선생님은 늘 ‘참’을 추구하셨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천성적으로 철학적 심성이 몸에 배인 분이셨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저서 <인간. 종교. 국가> 미국행정. 청교도정신.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출간에 대해 몇 마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책을 번역한 고창훈 교수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선생님의 글이 워낙 예화가 많고 현학적 냄새를 풍기지 않기 때문에 일견 그리 어려운 글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실제로 내용이 심오하고, 그 안에 이른바 사.문.철, 즉 역사, 문학, 철학이 다 들어가 있고, 결국은 행정학 이론과 실천이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에 대단한 몰입과 지적 통찰력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입니다. 우리 글로도 그럴 진 데 그것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실로 대단히 어려고 힘겨운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년 전에 이 책의 번역 얘기가 나오기에 내심 “쉽지 않을 걸”했습니다. 그 후 다른 소식이 없기에 아마도 포기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번역이 완성되어 책으로 출간되었다니 정말 놀랍고 대단합니다. 여기 참여했던 여러분의 그간의 노고와 희생,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 종교. 국가는 소정 선생님이 평생을 걸쳐 탐색하셨던 중심 주제들입니다. 소정 선생님은 특히 이 책에서 미국행정의 바탕이 된 청교도 정신과 마르틴 루터의 75개조를 논의하시면서, 한국 행정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이 책이 영어로 출간되어 외국인들도 이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어, 이제 이 책이 세계인의 책이 되었다는 점,  또 이 책을 통

하여 이제 많은 외국인들도 선생님의 정신적 제자가 된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고, 고무적입니다.

 

소정 이문영 선생님을 생각하면, 저는 두 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선 그의 아내이며 평생 동지셨던 김석중 여사님이 떠오릅니다. 무척 명철하셨고 용기가 대단하셨습니다. 사모님은 전 생애에  걸쳐 선생님의 정신적 버팀목이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 추운 겨울 한기가 감도는 안방에서 90 가까운 연세에 수감학생들의 죄수복에 솜을 넣어 손수 꿰매고 계셨던 선생님의 노모의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깊은 슬픔 속에서도 노모의 얼굴은 언제나 평화스러우셨습니다. 이 두 분 외에도 그의 사상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쳤던 여러 분들, 즉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셨던 소정의 의로운 아버지, 배선표 목사님, 함석헌 선생님, 공자, 맹자, 원효, 율곡, 마르틴 루터, 그리고 그의 정신적 요람이었던 배재학교, 교려대학, 갈릴리 교회가 떠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70년대 초부터 40여 년간 선생님을 가까이 모셨습니다. 언제나 큰 형님 같으셨고, 격의가 없으셨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해직, 옥고를 치루시던 1972년부터 4-5년간, 고려대학교에서 이 선생님의 강의 대부분을 제가 대신 맡아 강의했던 일은 제게 더할 수 없는 자랑이며 영광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선생님과의 모든 추억이 제게는 큰 공부였고, 엄청난 교훈이었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들도 같은  심경이리라 믿습니다. 

 

저희들에게 아직도 선생님을 잃은 엄청난 상실감과 공허감이 너무 큽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추억과 넘치는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선생님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추모하니 더없이 행복합니다.

 

우리의 큰 스승이신 소정 선생님, 당신과의 소중한 인연이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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